[임진모 칼럼]닉슨의 워터게이트와 음악가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2016. 10. 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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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금이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1970년대 미국 닉슨 정부와 존 레넌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과 법정 투쟁이다. 당시 닉슨 정부는 존 레넌이 공화당 전당대회와 같은 시각 예정된 반전 콘서트에 참여할 것이라는 정보를 포착한 후 그를 국외로 내쫓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돌입한다. 진짜는 문화게릴라의 척결이었지만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과거 레넌의 대마초 소지였다.

미국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존 레넌도 가열하게 맞섰다. 법정 공방이 계속되는 중에도 반전, 반정부 집회와 TV 출연을 통해 닉슨 정부의 속 좁은 조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훗날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밥 딜런은 이때 여권국에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이 나라에 살아 숨 쉬게 해주라. 미국 땅은 넓다”며 레넌을 옹호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지만 1973년 미 법원은 존 레넌더러 60일 이내에 미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존 레넌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그들 식의 저항을 계속해 나갔다.

이런 상황이 반전을 맞게 된 계기는 바로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스캔들이었다. 선거에 이기려고 야당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는 획책은 민주주의 가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고 결국 1974년 닉슨은 하원의 탄핵결의를 거쳐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재임 중 사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존 레넌의 추방령은 이 상황에서 의미가 퇴색했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나서인 1975년 추방령은 기각되었고 마침내 존 레넌은 임시영주권을 가리키는 그린카드를 발급받았다.

그 무렵 미국인들에게 닉슨은 어떻게 비쳤을까. 과오를 인정하기는커녕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를 깜냥도 안된다며 무시하고 심지어 사건을 맡은 특별검사를 전격 해임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민심은 실망을 넘어 분노로 치달았다. 닉슨을 규탄하는 노래도 줄을 이었다. 1970년대 들어 사회의식에 눈뜬 스티비 원더는 대놓고 닉슨을 겨냥해 ‘당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을 발표한 지 이틀 후 닉슨은 사임했고, 노래는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 곡을 수록한 앨범도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1973년 닉슨은 한 청문회에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대통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난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천재 뮤지션 프랭크 자파는 기가 막혀 ‘오렌지 카운티의 아들’(닉슨)이란 반박 노래를 만들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을 봐/ 난 사기꾼이 아니라고/ 난 당신이 얼마나 멍청한지 진짜 믿기지가 않아….’

젊은이들의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저 멀리 베트남전에 참여한 젊은 병사들의 허탈감은 증오심으로 번졌다. 1968년 닉슨은 취임하면서 미국은 곧 베트남전을 명예롭게 끝낼 것임을 약속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전쟁은 갈수록 격화되었고 미국은 파병을 늘리는 등 참전을 더욱 노골화했다. 심지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 오하이오주 켄트의 반전 데모에 진압군이 발포해 4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참극이 터졌다.

지금이야 힙합과 전자댄스 음악에 밀리고 있지만 당시 대세 음악이자 젊음의 장르인 록음악이 분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은 오하이오 켄트 사태를 노래한 ‘오하이오’에서 미국이 이런 끔찍한 나라임을 밝힌다. ‘양철 병정들과 닉슨이 온다…/ 오하이오에서 넷이 죽었어…’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는 닉슨이 사임한 지 4일 후 미국에 도착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혼돈과 공황, 이른바 멘털 붕괴를 노래로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1975년 나온 곡과 앨범의 제목은 ‘미국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대통령 닉슨을 기억하시나/ 지불해야 할 돈은 기억하시나/ 아니면 어제는 기억나시나….’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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