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선거 때마다 박근혜 이야기만 했다"

김은지·전혜원·김연희 기자 입력 2016. 10. 27. 09:31 수정 2016. 11. 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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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은 '최순실·차은택 게이트'로 확대되었다. 한국과 독일에 그들이 소유한 유령회사가 등장하고, 여기에 최씨의 지인 고영태씨가 역할을 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박근혜 가방’은 나오자마자 화제였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들었던 회색 타조 가죽 토트백에 관심이 모아졌다. 국내 가죽 브랜드 ‘호미가’ 제품이란 소문이 돌면서 주문이 폭주했다. 당시 조윤선 당선자 대변인이 직접 나서 “국내 한 영세업체가 만든 제품”이라고 해명했다. 업체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이용하던 누비 지갑이나 서류가방의 브랜드명이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일부 언론이 서울 성수동 가방 공장을 찾았다. 보통 이럴 경우 대통령 마케팅으로 제품 홍보를 할 텐데 직원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직원들은 “비밀, 아니 기밀이다. 얘기하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진다”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2014년 1월28일자 <조선일보>는 “디자이너 A씨는 박 대통령 측근에게 의뢰를 받자마자 디자인 스케치를 혼자 했고, 솜씨 좋기로 유명한 성수동 가죽 장인을 따로 수소문해 가방을 완성했다고 한다”라고 보도했다. 제품을 만들고도 신원을 밝히지 않았던 디자이너. 그가 바로 ‘최순실·차은택 게이트’의 한 축으로 꼽히는 고영태씨다. 고씨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딴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시사IN 조남진 딸 정유라씨(왼쪽)에 대한 최순실씨(오른쪽)의 뒷바라지는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뒤 그는 경영자로 변신했다. 최순실씨가 만든 더블루케이 이사다. 더블루케이는 지난 1월12일 설립신고를 했다. 자본금은 1억원이었다. 더블루케이 전 관계자는 10월20일 <시사IN> 기자와 만나 “더블루케이는 최순실 회장과 고영태 이사가 주도했다. 고영태씨가 K스포츠재단이 만들어졌으니 찾아가서 더블루케이를 설명하고 사업을 제안해보라고 했다. 직원들이 K스포츠재단 이사장 등을 만나 사업 설명을 하기도 했다. K스포츠재단이 더블루케이의 고객사가 맞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순실씨가 ‘회장님’으로 불렸으며 업무 지시를 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자였다고 밝혔다. 또 주 1회 사무실에서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며 전·현직 대표이사 모두가 “사실상 바지사장이었다”라고 말했다. 고영태·최순실씨와 함께 일했던 한 인사도 익명을 요구하며 <시사IN>에 둘의 관계를 설명했다. “최순실씨가 지시하면 고영태씨가 일을 했다. 가까웠다는 게 보는 관점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업무로 충돌하면 서로 소리치며 싸우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최순실·차은택 이어 고영태가 또 하나의 축

고씨는 더블루케이와 이름이 똑같은 독일 법인 ‘The Blue K’의 CEO이기도 했다. The Blue K는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100% 지분을 가진 회사다. 독일 기업정보 사이트 콤팔리(Compaly)에 올라와 있는 정보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 6월14일 CEO로 이름을 올렸다. 언론에 그의 신원이 드러나자, 10월20일 사임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고영태씨는 10월20일부터 휴대전화를 꺼놓고 잠적했다. SNS 메시지도 확인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최순실씨가 주로 스포츠 쪽 업무를 담당하고 차은택씨(왼쪽)는 주로 문화예술 쪽 업무를 맡았다.

더블루케이와 The Blue K 외에도 최씨 모녀의 회사는 또 있다. 독일에 있는 ‘비덱(WIDEC)’은 페이퍼컴퍼니라는 의심을 산다. <경향신문>은 올해 초 K스포츠재단이 국내 한 재벌그룹에 80억원 투자를 제안한 사업(프로젝트)의 주관사가 ‘비덱’이라는 독일 스포츠마케팅 회사라고 보도했다. 비덱은 최씨가 주식 1만7500유로(약 2192만원)를 보유해 1대 주주이고, 2대 주주인 정씨는 주식 7500유로(약 939만원)를 보유했다. 이 회사 직원은 크리스티앙 캄플라데 한 명인데, 그는 정씨의 독일 현지 승마 코치다. K스포츠재단 등의 자금이 비덱이라는 이름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최순실씨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였을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K스포츠재단이 지난해 7월 설립되어 연혁이 1년도 되지 않은, 직원이 1명뿐인 최순실씨 모녀 소유 회사 비덱을 거액 사업의 주관사로 선정한 배경에 의문이 쏠렸다. 비덱은 지난 6월부터 독일 현지 3성급 호텔을 운영 중인 것으로 밝혀져 자금 출처도 논란이 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고영태씨가 차은택 감독을 최순실씨에게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고씨와 차 감독은 지인이 겹친다. 고영태씨의 지인 김 아무개씨는, 차은택 감독과 김성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과 함께 만든 광고기획사 고원기획 이사를 맡았다.

ⓒ연합뉴스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얼굴에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 최순실씨가 병원에 드나들며 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씨와 가까운 차은택 감독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사업을 도맡았다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안에서 파다한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체육관광부 출신 한 고위직 관계자는 “차 감독이 최순실씨와 잘 아는 관계라 대통령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실세로 등장했다”라고 증언했다. 또 다른 문체부 출신 고위 관계자는 문체부 인사를 잘 보면 차은택 감독의 힘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은택 감독은 최순실이라는 든든한 배경에다 실력도 좋다 보니 VIP께 칭찬을 받는 등 빠르게 실세가 되었다. 차 감독 추천으로 그의 스승인 김종덕 교수가 문체부 장관이 되었고 외삼촌인 김상률 교수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되었다. 김상률 교수는 교육문화수석 임명 당시 보수 언론한테 진보적이라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런 공격을 당해도 차 감독 덕에 청와대 들어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차 감독은 최순실씨의 ‘신원보증’에다 개인기가 합쳐져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황태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차은택 감독은 공식 직함 없이 청와대로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하기도 했다(<시사IN> 제475호 ‘차은택이 봐주면 간택되었다는데’ 기사 참조).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들었던 회색 타조 가죽 토트백은 더블루케이 고영택 이사가 디자인한 것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도 차은택 감독과 최순실씨가 역할 분담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문화예술 쪽 업무를 하는 미르재단은 차 감독이, 스포츠 쪽 업무를 하는 K스포츠재단은 최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10월21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성한 전 미르 사무총장과의 대화를 공개했다. “미르재단과 관련해서 최순실씨를 본 적이 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한 사람이 있다. 해임당한 후 안종범 수석과 최순실씨와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이 모든 것이 77개 녹취 파일로 기록되어 있다(이성한 전 사무총장).” 이 전 사무총장은 차은택 감독과의 인연으로 미르재단에 들어갔다. 이후 둘은 사이가 틀어졌다. 그는 10월21일 현재 전화를 꺼둔 상태다.

자신과 관련한 논란이 점점 더 커지자 최순실씨는 지난 9월 말 독일로 출국했다. 딸 정유라씨(개명 전 정유연)는 독일에 머물며 승마 훈련 중이다. 최순실씨 집안과 오래 알고 지낸 한 인사는 <시사IN> 취재진에게 최근 최씨 모녀의 근황을 전했다. “유연이는 올림픽이 목표다. 그런데 2016년 리우 올림픽은 개인 사정으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생각하며 독일에서 훈련 중이었다. 말 3마리를 가져갔는데 그건 다 처분하고 새로 구입한 말로 바꾸었다. 이처럼 말·승마장·코치 등등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다. 올림픽 준비에 50억원 정도 드는데, 삼성그룹이 신경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월20일 현재 정유라씨의 국제승마연맹 선수 소개 프로필에 소속팀이 삼성(Team Samsung:Korea)이라 쓰여 있다. 공식적으로 재활 승마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삼성은 정씨 후원 의혹을 부인했다.

정유라씨는 지난해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1학년 1학기 평균 학점이 0.11이었다. 같은 해 2학기는 휴학했다가 지난 3월 복학했다. 정씨가 계속해서 등교하지 않자 정씨의 지도교수는 ‘학사경고가 누적되면 제적당할 수 있다’고 연락을 했다. 최순실씨가 딸과 함께 학교로 지도교수를 찾아가 고성을 질렀다. 지도교수가 그날로 바뀌었다. 지도교수였던 함 아무개 교수는 최근 TV조선 인터뷰에서 “(최씨가 나에게)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고 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면도칼 테러 때 최순실씨가 드나들며 간호

정씨는 출전 경기 일정이 6일에 불과했고 증빙서류도 없었지만 출석을 인정받았다. 두 달 뒤 훈련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출석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학칙이 바뀌었고, 정씨는 학사경고를 면했다. 그녀의 지난 1학기 평균 학점은 2.27로 뛰었다. 지난여름 계절학기에는 학점이 3.3까지 올랐다.

승마계의 한 인사는 딸에 대한 최순실씨의 각별한 뒷바라지를 이렇게 전해줬다. “최순실씨는 딸에게 올인했다. 정도가 유별났다. 승마계에서도 최씨는 악명이 높았다. 최씨가 어떻게 사람을 쓰고 어떻게 버렸는지 다 아니까 승마계에서 최순실씨 편이 많지 않다. 최씨가 이화여대에 지도교수를 찾아가 한바탕했다는 보도를 보니, 안 봐도 뭔지 알 것 같다. 그런 사실이 자꾸 알려지니 원래도 연락처를 자주 바꾸긴 했지만 한동안은 연락이 안 될 것 같다.”

청와대는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 선을 그었다. 10월21일 국회 운영위 국감에 나온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아는 사이인 건 분명하지만 절친하게 지낸 건 아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아는 사람이 없겠냐”라고 대답했다.

취재 과정에서 최순실씨 지인들이 전해준 말은 달랐다. 최순실씨를 20여 년간 알고 지낸 한 인사는 <시사IN>과 만나 “선거 때만 되면 최씨는 박근혜씨 이야기를 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친한 걸 자연스럽게 알았다.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얼굴에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 최씨가 병원을 드나들며 간호했다. 최씨는 박 대통령과 친하다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을 향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당사자는 독일 현지에서 잠적했다. 최순실씨의 전언만 있을 뿐 그녀의 목소리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최순실씨의 얼굴 또한 <시사IN>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최순실·차은택 게이트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김은지ㆍ전혜원ㆍ김연희 기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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