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수다③]신원호 "박보검, 그만 좀 연락하길~"(창간 12주년 특집)

[OSEN=박소영 기자] 신원호 PD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모든 배우들을 키워냈다. '미다스의 손', '신의 한 수' 등의 표현이 그에게 딱이다.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신인이나 상대적으로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을 만나는 이유다. 

◆"박보검 그만 좀 연락하길"

그렇게 해서 서인국, 정은지, 이시언, 정우, 유연석, 고아라, 손호준, 도희, 바로, 류준열, 박보검, 혜리, 이동휘, 안재홍, 고경표, 류혜영 같은 신예를 발굴한 그다. 특히 박보검은 '응팔'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차기작인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다. 

"기존 배우들은 기존 작품에서 자신의 매력을 많이 보여줬을 거잖아요. 우리가 그린 이 캐릭터를 그대로 가지고 가려면 신선한 배우들이 더 좋죠. '응답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을 쓰던데 그것보다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캐릭터에 이 배우가 맞는지 아닌지를 보는 미팅'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연기력 문제로 캐스팅이 불발되는 게 아니거든요. 어떤 배우이고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만나는 자리일 뿐이에요."

'응팔' 역시 마찬가지. 마지막까지 정환, 선우, 최택 캐릭터 캐스팅 결정을 남겨둔 상황에서 신원호 PD는 류준열, 박보검, 고경표를 이리저리 맞춰봤다. 그 결과 가장 안성맞춤의 캐스팅이 이뤄진 것. 특히 박보검의 캐스팅 뒷이야기는 더 특별했다. 

"원래 그렇게 잘생긴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은 없었어요. 바둑 밖에 모르는 캐릭터라 키 작고 잘생기지 않고 약간은 폐쇄적인 히키코모리 같은 느낌을 그렸거든요. 그런데 박보검을 만나고서 그 생각을 깼죠. '바둑 기사가 잘생기면 어때?' 싶었죠. 초반에는 덜 잘 생겨보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도 있어고요. 그래서 택이가 일자머리가 된 거예요."

박보검은 유재석을 능가하는 미담의 아이콘이다. '응팔'과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연이은 성공으로 단숨에 A급 스타가 됐다. 그를 발굴한 신원호 PD로서는 뿌듯할 수밖에. "내가 키웠다는 마인드가 전혀 없다는 건 거짓말이겠죠"라며 겸손하게 웃는 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버리려고 해요. 드라마는 단순히 내가 잘 되려고 만드는 거고 그 과정에서 효율적인 배우들을 뽑는 거니까요. 거기에 박보검이 들어와서 잘해줬고 차기작에서도 본인 역량을 해내서 얻어진 결과잖아요. '내가 다 키웠어' 이런 마음은 어불성설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상처 받기 마련이죠. '변했네' 싶을 테니까요."

"그래도 내 새끼들이니까 뿌듯하긴 하죠. 내 품을 떠나서 더 잘 됐을 때 기분 좋은 건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박보검은 그만 좀 연락 왔으면 좋겠어요. 제 덕분에 '구르미' 잘 끝냈다고 연락하고, 감사하다고 계속 문자오고. '구르미' 잘 된 게 왜 내 덕이냐고요(웃음).

◆ "'응칠' '응사' '응팔' 모두 내 새끼들"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는 드라마 안에 복선으로 힌트가 깔리곤 했다. 어느새 시청자들은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에 빙의해 숨겨진 설정과 복선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곤 한다. "나 혼자 키득거리려고 넣어둔 소품을 시청자들에게 들킬 때 대단하다 싶어요"라고 말한 그다. 

"스스로 현장에서 재밌으려고 넣은 장치들이 많아요. '이건 절대 모르겠지' 하면서요. 그런데 흘려보지 않고 뜯어보는 시청자들이 많더라고요. 이런 저런 해석들 보니까 나중엔 부담감까지 느꼈어요. 본질을 흐리면 안 되니까요. '응팔' 중반 이후에는 힘들고 여력이 없어서 못난이 인형도 다 치웠고요. 괜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죄송스럽더라고요. '이 복선이 맞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요. 시청자분들이 보는 그대로의 마음을 존중하니까요."

'응칠', '응사', '응팔'까지 신원호 PD는 매번 100%를 쏟아부어 200%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는 '응답'의 아버지로 영원히 기억될 터.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국민 드라마'가 바로 '응답' 시리즈인 이유에서다. 

"세 시즌 모두 촬영할 때엔 제게 전부였어요. 어느 시즌이 가장 애정이 간다고 뽑기 힘들 정도죠. 다만 많이 보게 되는 건 '응칠'이에요. 날 것 그대로의 솜씨들과 잔 기술 없이 정직하게 만들었던 부분이 많거든요. 처음 가졌던 생각을 보고 싶을 때 '응칠'을 켜죠. 하지만 '응사'도 '응팔'도 다 내 새끼들이에요."

내년 가을께 차기작을 발표하고 이후 '응답' 시리즈를 이어갈 플랜이 짜여져 있다. 신원호 PD가 tvN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셈이다. 회의 테이블과 데드라인만 있다면 영감이 생긴다는 그. 어느새 시청자들을 믿고 보게 만든 신원호 PD의 마력이다. 

"다른 PD들은 순간순간 영감을 받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전 아니에요. PD가 적성에 맞나 싶을 정도죠. 제게 영감을 주는 건 회의 테이블과 언제까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드라인이에요(웃음). '응답' 시리즈 말고도 수위로부터 제한이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알아보고 있는 중이죠. 예능 PD로의 회귀요? 힘들 것 같아요. 감이 많이 떨어졌거든요. 하하." /comet568@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