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달]소비절벽·관계단절 없었다..연말이 문제

피용익 2016. 10.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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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한 달 동안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고, 밥과 술을 먹었으며, 주말에는 골프를 치기도 했다. 법 시행 전 일각에서 우려했던 ‘소비절벽’이나 ‘관계단절’은 아직까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화훼를 비롯한 일부 업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영란법 대상자(배우자 포함) 400만명보다 7배(경제활동인구 기준) 가량 더 많은 비대상자들의 소비는 크게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다.

공무원이나 언론인 등 김영란법 대상자들의 경우 한 사람이 식사비용을 ‘쏘는’ 모임은 눈에 띄게 줄었고, 자연스럽게 각자 돈을 내는 ‘더치페이’가 자리잡고 있다. 인간 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만큼 소비는 어떤 식으로든 이뤄진 셈이다.

◇ 비대상자가 더 많아 영향 크지 않아

김영란법이 소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은 신용카드 사용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농협카드에 따르면 법 시행 직후 1주일 간 법인카드 평균 결제금액은 6% 감소하는 데 그쳤다. 법인카드는 전체 발급 신용카드의 24%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전체 소비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 법인카드보다 3배 많은 개인카드 결제금액은 이 기간 2% 증가했다.

한 중소기업 영업사원은 “우리 사회에는 김영란법 대상자가 아닌 관계에서 일어나는 접대가 훨씬 더 많다”며 “예를 들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에 이뤄지는 접대와 청탁은 김영란법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들과의 저녁식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대신 가족과의 외식이 잦아져서 씀씀이는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김영란법 위반 신고가 많이 이뤄지지 않자 법 대상자들의 생활이 다시 이전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얼굴이 알려진 일부 공직자나 언론인 말고는 누가 누군지 알고 신고를 하겠느냐”며 “식사비용이 (1인당) 3만원을 넘더라도 신분이 노출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 골프장 타격도 아직까진 ‘기우’

‘접대의 온상’처럼 여겨졌던 골프장도 김영란법 이후 위기를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 회원제 골프장이 영향을 받고 있지만, 전체 골프장의 절반에 달하는 퍼블릭(비회원제) 골프장은 9월28일 이후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

경기 용인 소재 한 퍼블릭 골프장 관계자는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주말 부킹이 30%나 줄었다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면서도 “서울 인근 퍼블릭의 경우 거의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경기 파주의 퍼블릭 골프장에서 일하는 한 캐디는 “주말에는 풀 부킹(예약이 꽉 찼다)”이라며 “우리나라에 골프 치는 사람이 공무원과 기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골프 인구는 619만명에 달한다. 김영란법 대상자 400만명이 모두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니다.

골프를 좋아한다는 한 국장급 공무원은 “어차피 이번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들은 거의 골프를 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며 “마치 그동안 모든 공무원들이 골프장에서 접대를 받아온 것처럼 여겨질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 연말 소비위축은 여전히 우려

소비가 위축되지 않은 데는 정책 효과도 있었다. 정부는 김영란법 시행 다음날인 9월29일부터 10월9일까지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진행했다. 행사에 참여한 54개 유통업체들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 증가했다.

문제는 각종 모임이 열리고 선물을 주고받는 연말이다. 소비가 집중되는 이 시기가 돼야 김영란법의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1월말 설 연휴를 전후해선 한우 등 고가 선물의 소비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올해 추석은 김영란법 시행 전인데도 영향이 있었는데 올해 성탄절과 내년 설은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피용익 (yonik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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