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경의 Shall We drink] <39> 전설과 맥주가 있는 파라다이스, 괌

2016. 10. 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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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괌의 투몬 해변 풍경.
파라다이스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생크림처럼 하얀 백사장 위에 큰 야자수가 서 있다. 나무 아랜 긴 의자가 놓여있고, 그 너머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바다 위엔 하얀색 요트가 천천히 움직인다. ‘거 참, 여행 작가 상상력이 달력 사진처럼 진부하네’라고 하품하긴 아직 이르다. 해변을 거닐자 맥주 거품처럼 보드라운 파도가 당신의 발가락을 간질인다. 손에는 차가운 맥주가 들려 있다.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 이쯤 되면 ‘여기가 천국일 거야!’라 외치며 한잔 하게 되지 않을까.

남태평양의 작은 섬 괌(Guam)은 인천에서 4시간 30분 만에 도착하는 낙원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휴양지는 많고 많지만, 괌처럼 아침 비행기로 출발해 저녁이면 해변을 거닐 수 있는 데는 드물다. 어딜 가나 차모로(Chamorro, 괌 원주민)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파 데이(Hafa Adai, 차모로어로 안녕)!’라고 인사를 건넨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면 바다 위에 드리운 무지개를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괌에는 여섯번 방문했다. 그중 다섯번을 가이드북 취재로 다녀왔지만, 일과를 끝내고 해변에 앉아 망고 빛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순간만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눈앞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니 고 퀄리티 안주도 필요 없었다.
괌의 해변에서 한잔 하는 기쁨에 눈을 뜬 건 ‘건 비치(Gun Beach)’에서였다. 중심가 투몬(Tumon)의 끝자락에 위치한 건 비치는 살벌한 이름과는 달리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해변에 선베드를 늘어놓은 ‘비치 바’가 낭만을 더한다. 하루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끝내고 비치 바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서서히 기우는 오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비치 바에 앉아 홀짝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라이브 공연까지 더해지자 해변의 파티에 초대받은 듯했다. 느긋하게 앉아 노을과 눈을 맞추며 버드와이저 아이스를 마셨다. 맥주 맛은 밍밍했지만 마음만은 더 없이 상쾌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깃든 사랑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노을도 환상적이다.
건 비치 만큼 노을이 환상적인 곳은 ‘사랑의 절벽(Two Lover's point)’이다. 시도해보진 못했지만 석양 무렵 사랑의 절벽에서 탁 소리가 나게 캔 맥주를 따서 마셔도 좋겠다. 사랑의 절벽에 깃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이다. 스페인이 괌을 점령했던 시절, 한 여인에게 반한 스페인 장교가 권력을 앞세워 결혼을 강요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수 없었던 그녀는 연인과 무작정 도망을 갔다. 손을 꼭 잡은 채 도망치다 절벽 끝에 다다랐다. 스페인 군대가 추적 망을 좁혀오자 둘은 긴 머리를 한데 묶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말았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연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 후 괌의 북쪽 끝 ‘리티디안 해변(Ritidian Beach)’에서 연인의 시신이 발견됐다. 리티디안 해변은 투몬에서 북쪽으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40분은 달려야 나타나는 국가 야생동물 보호구역 내에 있다. 이런 데 해변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숲길을 지나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해변과 숲 경계엔 하얀 반달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반쪽으로 피어나 둘을 합쳐야 하나가 되는 꽃이다. 차로모인은 사랑의 절벽에서 뛰어내린 연인이 반달 꽃으로 피어났다고 여긴다.
습관처럼 한잔 하러 온 현지인 들 사이에서 맛본 시레나 페일 에일.
괌에는 인어가 된 시레나(Sirena)의 전설도 전해온다. 수영을 사랑한 시레나는 수영 좀 그만하고 집안일을 도우란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매일 바다 수영을 했다. 화가 난 어머니는 허구한 날 수영만 하다가는 물고기가 될 거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시레나의 몸이 다리부터 물고기로 변하는 게 아닌가. 절묘한 순간에 할머니가 저주를 풀어 물고기 대신 인어가 됐다. 인어가 된 시레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로 떠났다. 과연 시레나의 어머니는 친모였는지, 할머니는 마법사였는지 알 수 없지만 시레나의 동상은 산 안토니오(San Antonio) 다리 아래 외롭게 놓여있다.
시레나 동상을 찾아 산 안토니오 다리까지 갔다면 근처 ‘머메이드 터번 앤 그릴(The Mermaid Tavern and Grille)’에 들러보자. 괌에서 보기 드물게 수제맥주를 만드는 소규모 브루어리 펍이다. 괌의 그림 같은 해변도, 붉은 노을도, 선선한 바람도 다 좋은데, 괌 맥주의 밍밍한 맛에 질린 여행자라면 여기가 천국이다. 주로 에일 맥주를 만든다. 괌의 물은 미네랄과 칼슘이 풍부해 에일 맥주가 잘 어울리기 때문이란다. 그중에 시레나의 이름을 딴 ‘시레나 페일 에일(Sirena Pale Ale)’이 대표 맥주다. 첫맛은 쌉싸래하고 끝 맛은 청량하다. 시레나 페일 에일을 마시다 보면 인어가 된 시레나가 넓은 바다에서 자유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무슨 상관이냐. 미지의 끝 속에서 새로운 것만 발견할 수 있다면’이라는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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