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전 지시' 안종범 '사후 점검'..기업 돈뜯기 합작

2016. 10. 2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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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K스포츠 전 사무총장 증언 보니

“안 수석이 SK와 얘기 잘됐냐 전화”
기업에 미리 얘기해뒀을 가능성
굴지의 대기업 직접 움직이려면
최순실이라도 경제수석 힘 필요

“위에 최순실 안수석 있다 의심 안해”
SK가 투자요구 단박에 거절 못하고
왜 30억 투자 역제안했는지 밝혀야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관여했다는 주장은 그동안 이런저런 경로로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익명을 전제로 한 진술이거나 정황증거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의 “에스케이를 찾아가 80억원의 투자금을 요구했다”는 증언은 직접 사건의 당사자가 이름을 내걸고 주장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성격을 달리한다.

게다가 정 전 사무총장의 증언은 한쪽의 일방적인 진술 수준을 넘어선다. 우선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현 정책조정수석)은 아예 ‘재단 관계자와 통화할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정 전 사무총장이 확보하고 있는 통화 기록이나 주고받은 문자, 개인 일정표 등은 안 수석의 주장을 배척하고 있다. 또 재단 일로 최순실씨와 만나 보고를 하고 지휘를 받은 구체적인 정황이 이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는 이들 증거 자료를 27일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안종범 수석 등이 “모르는 일이다”라고 부인만 하고 있기에는 불리한 증거가 많다.

정 전 사무총장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최순실씨가 주도하는 케이스포츠재단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재단의 첫 투자 요구 시점은 올해 2월29일이다. 재단이 설립된 지 불과 한달 보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더구나 에스케이는 에스케이텔레콤이 그달 24일 재단 설립 출연 약정액인 21억5000만원을 재단에 낸 상태였다. 불과 닷새 만에 이번엔 출연금이 아닌 투자금 명목의 돈을 뜯어내려 한 것이다.

대기업에 신생 재단이 그것도 허술한 투자제안서를 들고 와 80억원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엔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정 전 사무총장이 <한겨레>에 밝힌 내용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최순실씨가 ‘에스케이와 이야기가 다 됐으니, 가서 사업 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나온다. 최순실씨가 아무리 비선 실세라고 하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직접 움직였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와 관련해 정 전 사무총장은 “에스케이와 면담을 하기 전 안 수석한테서 전화를 받았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나중에 그한테서 전화를 받았던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화 내용은 안 수석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키운다. 그는 에스케이와 면담한 지 며칠 뒤 정 전 사무총장에게 “에스케이와 얘기는 어떻게 됐냐. 얘기가 잘됐냐”고 묻는다. 케이스포츠가 투자 유치 목적으로 에스케이를 찾아간 사실을 미리 알지 않고선 나눌 수 없는 대화였다.

겉으로만 보이는 모양새는 최씨의 ‘사전 지시’와 안 수석의 ‘사후 점검’의 역할 분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 수석의 역할은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안 수석이 사후 보고를 받는 식이 아니라, 사전에 기업 쪽에 어떤 경로로 얘기를 미리 넣어놨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는 지난 5월15일까지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때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서, 때론 직접 기업과 접촉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는 <한겨레>에 이번 사안과 관련해 “거리낌이 없고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안 수석의 해명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정 전 사무총장은 “제가 회장(최순실씨)한테 이런저런 가이드라인을 오전에 받으면 오후, 늦어도 주로 다음날에는 안 수석이 전화로 거의 동일한 내용을 저한테 얘기한다”고 말했다. 에스케이 투자 유치 시도 건 이외에도 안 수석이 케이스포츠재단의 여러 사업과 활동에 최순실씨와 시차를 두고서 호흡을 맞춰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정 전 사무총장은 또 “저는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케이스포츠재단) 위에 회장과 안 수석이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나는 ‘공식’, 다른 하나는 ‘비공식’으로, 서로 교감이 되나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단의 투자 요구에 에스케이가 부담을 느꼈던 흔적은 역력하다. 에스케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재단의 제안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못한다. 투자액을 30억원으로 낮출 수 없을지 역제안을 하게 된 배경이다. 30억원이 재단으로 건너가지 않은 건 에스케이의 의사가 아니라, 결국 ‘최순실 회장님’의 결정이었다. 30억원으로는 양에 차지 않았거나 탈이 날 걸 우려했다는 이야기다.

류이근 방준호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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