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실컷 풀땐 언제고..정부, 재정건전화법 제정 '뒷북'

박종오 2016. 10. 2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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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고령화 인한 국가채무 증가 대비기재부, 이달 중 국회에 법안 제출"임기 1년 남겨놓고 돈줄 죄기" 지적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확장적 재정 정책을 써오던 정부가 뒤늦게 나라 살림살이를 챙기겠다며 새 법을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 운용을 엉망으로 한 현 정부가 임기를 1년 남기고 돈줄을 죄겠다는 것이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5일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달 중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 법은 정부가 앞으로 지켜야 할 재정 운용의 준칙을 도입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저성장·고령화 등으로 인해 미래 국가채무가 불어날 것에 대비한다는 취지다.

◇국가채무, GDP 45% 이하로 제한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가 낼 수 있는 빚에 한도가 생긴다.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5% 이하, 관리재정수지(전체 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사학연금·고용보험 등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 적자는 GDP의 3% 이하로 제한되는 것이다. 다만 채무 한도는 5년마다 재검토해 변경할 수 있고, 경기 침체·대량 실업 등 불가피하게 재정을 쓸 데가 생기면 준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아울러 법에는 페이고(Pay-go) 제도를 법제화하고 재정전략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는 방안도 담겼다. 페이고 제도는 정부나 국회가 재정 부담이 있는 법안을 낼 때 비용 추계나 재원 조달 방안을 함께 첨부하도록 하는 제도다. 재정전략위원회는 기재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두고 중앙 및 지방정부·공공기관·사회보험 운용기관 등 각 재정 주체가 준칙을 잘 지키는지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재부 입김이 대폭 강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법 도입의 적절성이다. 당장 현 정부가 임기를 불과 1년 남기고 재정에 고삐를 죄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 이후 올해까지 벌써 세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전체 추경 규모는 39조 9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33조원)는 물론 노무현 정부(17조 1000억원) 때의 두 배를 넘어선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와 반복되는 본예산 긴축 편성, 단기 경기 부양 필요성 등으로 재정 원칙을 누더기로 만든 것이다.

국가채무도 2013년 489조 8000억원에서 올해 2분기 기준 591조 7000억원으로 3년 새 100조원 넘게 불어났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3년 34.3%에서 올해 40.1%로 6%포인트가량 치솟을 전망이다. 빚 증가율이 세계 금융위기라는 파도를 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재정을 풀어야 했던 이전 정부 때(6.3%포인트)에 육박한다.

◇다음 정부에 책임 떠넘겨…정책 역량 제한 우려



보다 본질적으로는 재정 건전성 확보 책임을 다음 정부에 떠넘겨 향후 정책 수단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최근 한국에 저성장 탈출, 양극화 극복 등을 위한 재정 지출을 확대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라가르드 IMF 총재도 지난달 열린 연례 총회에서 재정을 더 풀어야 하는 국가로 한국, 독일, 캐나다를 콕 찍어 얘기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증가세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는 재정 여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의 현재 국가채무 비율(40.1%)은 OECD 회원국 평균(115.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중국보다 한 단계, 일본보다는 두 단계나 높게 매기고 있는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가계신용) 비율은 올해 2분기 기준 90.0%(1257조 3000억원)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올라 있다. 정부 곳간은 넉넉한 데 정작 국민은 빚더미에 올라있는 꼴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재정 상황이 재정건전화법을 제정할 정도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경기 상황이 악화하면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야 하는데 재정건전화법 제정이 오히려 정책 역량을 제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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