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의 길

2016. 10. 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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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불야성>으로 돌아오는 진구를 만났다. 밤에도 불이 훤해 대낮같이 밝은 불야성처럼 진구는 <태양의 후예>로 지난 봄과 여름 가장 뜨겁고 요란스러운 길을 통과했다. 진구는 이제 그 길을 쉬엄쉬엄 걷고 있다고 말한다.

 가벼운 농담을 하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자 돌변하며 이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재킷 89만원 준지. 니트 톱 가격미정 조르지오 아르마니. 진구 씨를 만난 모든 기자가 당신에 대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더군요. 겨우 4시간 남짓한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모두에게 동일한 인상을 남겼네요. 그 시간 안에 ‘저 새끼 별로다’라는 인상을 남기는 게 사실 더 어려운 일이죠. 인상 쓰지 않는 건 너무 쉽잖아요.

그런가요?돈을 받거나 나를 알리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고맙죠. 그런데도 힘들다고 징징대거나 인상 쓰는 건 비양심적이에요. 아유, 신인 때를 생각해야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한 이래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진구란 배우를 수식하는 단어가 좀 더 화려해졌죠. 한류 배우, 시청률 40%의 주인공, 심지어 아재 파탈까지. 배우로서의 삶이 그 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하나요?그렇지 않아요. 변한 건 팬층이 좀 더 넓어지고 인지도와 대중성이 높아졌다는 정도? 솔직하게 말하면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졌죠.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의 태도예요. 연기자로서의 신념이나 나아갈 방향, 연기에 임하는 자세는 여전히 같아요.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지도와 대중성을 확보했죠. 유아적인 질문이지만, 유명해지면 삶의 질이 더 높아지는 걸까요?아뇨. 그건 삶의 질에 대한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죠. 전 유명해지는 게 목표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는 예전에도 제가 충분히 유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으하하. 남들이 보면 웃을지 몰라도 전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각국의 팬이 늘었다고 해서 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본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무엇인가요?너무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보이는 대답일지도 모르는데, 양심이오. 어릴 적 누구나 한두 번쯤은 부모님에게 받은 교재비를 슬쩍하거나 가격을 부풀려 이야기해 더 많이 받아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얻은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했다고 해도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걸요? ‘엄마한테 언제 걸릴까?’라는 불안감과 죄책감 때문에요. 양질의 삶은 불안함이 덜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어느덧 14년 차에 접어든 그는 지금도 배우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니트 톱 24만8천원 YMC. 팬츠 53만원 준지. 스니커즈 13만9천원 스페리.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의 스산한 표정에서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재킷, 팬츠 모두 가격미정 보스 맨. 니트 톱 27만8천원 반하트 디 알바자.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렇군요. 하지만 양심과 상관없이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너무 많죠.일을 하거나 나이가 들고 가정을 꾸리면 양심과 상관없는 불안함이나 고민거리 같은 게 생기죠. 그럴 때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기대는 편이에요. 힘들다는 이야기와 도와달라는 말도 잘하고.

잘 기댄다라….“혼자 버텨야지 뭘 징징대?” 혹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거 알아요. 저만 해도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누구한테 빚지고 살지 말라”였어요. 그런데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갚을 수 있다면 돈이든 뭐든 적당히 빚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혼자 세상 사는 것처럼 다 떠안고 사는 것보단. 

뭘 빚져봤나요? 돈을 빌린 적도 있나요? 물론이죠. 빌려준 적도 있고. 저는 후배들한테 “대출 한번 받아봐라”라고 권하기도 해요. 젊을 땐 사실 하루 벌어 하루 살잖아요. 맘껏 써보지도 못했는데 그렇다고 돈이 모이지도 않고. 그런 친구들에게 딱 3백만원 대출받아 1백50만원 정도 마음껏 써보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왕창 돈을 써보면 덜 영근 시기에 돈에 대한 무서움도 알고 뭔가 깨닫게 돼요. 

본인이 해본 방법인가요? 저도 돈을 맘껏 써본 기억이 있죠. 

뭘 했나요? 시시하지만 술 마시고 놀았어요. 신기하게 소주값으로도 그 큰 돈이  나가더라고요. 으하하. 비싼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듣던 대로 대단한 술꾼이네요. 새 드라마 이야기를 해보죠.11월 방영되는 MBC 드라마 <불야성>에서 남자 주인공 ‘건우’ 역을 맡았어요. <태양의 후예> 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시기에 택한 작품이에요.저는 뭔가 대단히 계산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냥 타이밍이 잘 맞았고, 대본이 좋아 출연을 결정했어요.&nbsp;

가벼운 작품은 아닌 것 같더군요. 맞아요. 이요원·유이 씨와 함께 주연을 맡았는데, 얽히고설키는 인간의 탐욕을 그린 작품이에요.

<불야성>이 어떤 반응을 얻기를 바라나요? “역시 진구다”라는 연기력에 대한 호평을 원하나요, 아니면 높은 시청률인가요?솔직히 말하면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죠. 당연한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힘든 건 그 욕심을 지우는 과정이죠. 스스로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자신에게 기대를 하면 안 되나요?부담스럽잖아요. 그리고 혹시나 잘못되면 제 탓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하면 다음 작품을 할 때나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들어요.

스스로 균형을 잘 잡는군요.최대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해요. 주위에서 “잘될 거야. 대박이야!” 하면 “꺼져. 부담스러우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라고 말해요. 하하. 내 편이니까 칭찬만 해주잖아요.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알려졌어요. 농구는 거의 마니아 수준이라는데, 최근에 새로 시작한 스포츠가 있나요?클라이밍을 시작했어요. 최근 새로운 것에 도전해 만족스럽고 신났던 유일한 일이에요. 클라이밍은 짧은 시간에 모든 게 정리돼요. 우선 오를 곳이 보여요. 오늘은 여기서 출발해 저기까지만 오르면 되는 거죠. 그러다가 물론 떨어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끝까지 오르고 나면 성취감이 대단해요. 바쁜 사람들에겐 굉장히 좋은 스포츠예요. 짧은 시간 안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생각해보면 살면서 성취감을 느낄 일이 그리 많지 않단 생각도 들어요.그렇죠. <태양의 후예> 시청률이 40%가 넘었는데, 만약 우리가 목표를 40%로 잡았다면 성취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목표는 아니었거든요. 그건 그냥 깜짝 선물을 받은 거죠. 저는 작품을 할 때 시청률을 목표로 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작품이 잘됐다고 해서 성취감을 느끼지 않죠.

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상자들 지정석인 1층 10열에 앉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무엇이 목표인가요? 잘 살자, 잘 죽자!

에이, 재미없는데요. 하하. 진짜예요. 이미 저는 결승선을 통과했거든요. 목표를 이뤘어요.

어느 시점에요? 아마 영화 <마더> 이후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그 작품을 한 뒤 저에 대한 이미지나 기대치가 달라졌거든요. 거슬러 올라가면 드라마 <올인>으로 데뷔했을 때 이미 꿈을 이룬 셈이에요. 그 후 좀 더 안정적이고 앞날에 대한 걱정 없이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마더> 출연을 계기로 이루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쉬엄쉬엄 걷고 있어요.

배우는 불안정한 직업이잖아요. 이번 작품이 잘돼도 다음은 또 모르는 거고. 그럼에도 걱정 없이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건가요? 네. 전력 질주를 하지 않으면, 항상 에너지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무너져도 다시 올라갈 수 있죠. 그럴 힘이 아직 있으니까. 그러니까 쉬엄쉬엄 걷는 것도 괜찮아요.

Feature Editor 김소희 Photographs by Choi Seung Kwang Stylist 김은진 Makeup 오윤희 Hair 고훈 Assistant 이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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