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으로] 3년 새 6만명 구조..알레포의 눈물 닦아주는 '하얀 헬멧'

백민정 입력 2016. 10. 23. 00:13 수정 2016. 11. 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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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0명서 3000명으로 늘어제빵사·목수·약사 등 소시민 주축구조활동 중에 141명이나 숨져유명세 치러 시리아 정부엔 눈엣가시"전쟁 참상 알리고 반군 투항 방해"정부군, 구조대원들 수시로 폭격노벨 평화상 탈락했지만 성원 답지보름 만에 7754명 42만 달러 모금미·영서 후원, 순수성 훼손 논란도


시리아 내전서 맹활약하는 ‘시민방위대’
화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어요. 저는 헬스장 트레이너였죠. 제빵사였습니다. 전 약사였죠. 목수·세일즈맨·재단사·건설노동자….

‘하얀 헬멧’ 소개 동영상에 등장한 이들은 한 명씩 과거 직업을 말했다. 이들의 자기소개 앞엔 “전쟁이 발발하기 전”이란 설명이 붙었다. 이어 한결같이 “지금은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금은 시민방위대원이다(Now, I am a civil defender)”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올해로 발발 6년째인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정식 명칭은 시리아시민방위대(Syrian Civil Defense·SCD). 시민수호자·인도주의자·자원봉사자 등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하얀 헬멧(White Helmets). 구조활동 때 쓰는 흰색 헬멧을 일컬어 생긴 별칭이다.

하얀 헬멧은 이달 초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에 존재감을 알렸다. 영웅이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사람 목숨을 구하고 있다는 데 전 세계가 감동했다. 전문적 구호활동가도 아니고 구호단체에서 일한 적도 없는 제빵사·재단사·대학생·세일즈맨이 전쟁 한복판으로 달려가 목숨을 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시리아에서 실질적인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건 하얀 헬멧이 유일하다. 시리아 정부가 국제 구호단체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달 알레포로 향하던 유엔 구호단체 차량을 폭격했다. 유엔은 안전이 보장되기 전까지 구호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희망 없는 곳(시리아)에 희망을 주고 있다”며 하얀 헬멧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AP통신·가디언·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도 일제히 하얀 헬멧의 활약상을 담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21일 시리아인권관측소 통계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2011년 3월 이래 누적 사망자는 30만 명이 넘는다. 희생자 30만1781명 가운데 민간인은 8만6692명이다. 하얀 헬멧은 3년6개월간 시리아에서 민간인 6만여 명을 구조했다. 시리아 정부군·반군 교전 현장에서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는 게 주된 일이다. 시신을 찾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일도 하얀 헬멧의 몫이다. 구조활동 중 목숨을 잃은 하얀 헬멧 대원도 141명이나 된다. 하얀 헬멧 대원 아마르 살모는 타임에 “구조활동 중 건물 잔해가 무너져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알레포에서 영어교사였던 그는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뒤 하얀 헬멧 대원이 됐다. 당시 중동 전역에선 ‘아랍의 봄’(독재정부 민주화 시위)이 한창이었다. 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알아사드 정권 반대 시위는 정부군(시아파)·반군(수니파) 간 내전으로 확대됐다.

하얀 헬멧은 2013년 초 처음 만들어졌다. “차마 죽은 시신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고국 땅을 지키겠다”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하얀 헬멧을 이끌고 있는 라에드 알살레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초기엔 20명 정도였다. 어디서 활동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알살레는 전기회사 세일즈맨이었다. 영국 출신의 국제 구호전문가 제임스 메셔리어의 도움으로 기틀이 잡혔다. 터키 민간 구호단체는 구호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20여 명에 불과했던 하얀 헬멧은 현재 대원이 3000여 명이다. 시리아인이 대다수이지만 하얀 헬멧의 일원이 되겠다고 찾아오는 외국인·여성도 많다고 알살레는 전했다. 조직도 커졌다. 알레포를 비롯해 시리아 8곳 주요 도시에 114개 지부를 두고 있다.

하얀 헬멧이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대표적 장면 3개는 다음과 같다.#지난해 8월, 알레포에서 남서부로 60㎞ 떨어진 도시 이들리브에서 하얀 헬멧 대원 칼레드 오마르가 생후 열흘 된 남자 아기를 구조했다. 폭격을 맞아 완전히 무너진 건물 안에 아기가 있다며 한 여성이 발을 동동 굴렀다. 오마르는 아기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파내기 시작했다. 12시간 넘게 지났을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마르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기를 끄집어냈다.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기적의 아기’라는 보도가 전 세계에 타전됐다.#지난 6월 ‘알레포의 꼬마’ 옴란 다크니시(5)를 구한 것도 하얀 헬멧이다. 흙먼지에 피범벅이 된 얼굴로 넋을 놓고 구급차에 앉아 있는 다크니시의 모습은 시리아 내전 참상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지난 9월엔 하얀 헬멧 대원 아부 키파흐의 ‘눈물범벅’ 구조영상이 화제가 됐다. 키파흐는 폭격에 무너진 건물에서 생후 한 달 된 여아를 구조하며 “알라시여”라며 오열했다. 이 영상이 CNN에 보도되며 하얀 헬멧의 노벨 평화상 청원운동이 불붙었다.

하지만 하얀 헬멧은 노벨 평화상 수상에 실패했다. 기적은 이후 벌어지고 있다. 하얀 헬멧의 수상 탈락을 안타까워한 이들이 모금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얀 헬멧 공식 홈페이지(whitehelmets.org)에 ‘우리가 하얀 헬멧에 상금을 주자’는 캠페인이 열렸고 노벨 평화상 상금인 100만 달러(약 11억원)가 목표액으로 설정됐다. 보름 만인 21일 현재 7754명이 기부해 42만 달러가 모금됐다.하얀 헬멧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엔 눈엣가시가 됐다. 이들의 활약상 때문에 전쟁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어서다. “반군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폭격에 못 견디고 투항하게끔 만드는 게 알아사드 정권의 노림수인데 하얀 헬멧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고 여긴다”(가디언)는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은 최근 ‘이중 공습’ 전술을 펴고 있다. 폭격한 곳을 수십 분 뒤 재차 폭격해 구호하러 몰려든 하얀 헬멧 대원을 노리는 것이다. 통폭탄(barrel bomb·드럼통 등에 폭발물인 TNT를 담은 것), 염소가스 화학탄 등 국제협약으로 금지된 폭탄도 수시로 떨어뜨린다.

알아사드 정권은 하얀 헬멧이 미국·영국 등으로부터 장비와 지원금을 받고 있는 점을 내세워 정치 공세도 펼치고 있다. 하얀 헬멧의 배후에 미국 등 서방 국가가 있고, 시리아에 친미 정권을 세우려는 노림수가 있다는 식이다. 영국 버밍엄대 스콧 루카스 국제정치학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이 일리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하얀 헬멧이 순수한 구조단체인가란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하얀 헬멧의 기금은 현재 3000만 달러(약 338억원)에 이른다. 하얀 헬멧 대원에게는 150만원가량의 월급도 지급된다. 구직이 쉽지 않은 시리아에서 적지 않은 돈이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하얀 헬멧 자원자가 넘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하얀 헬멧 총책임자인 알살레는 하얀 헬멧을 음해하려는 알아사드 정권의 마타도어(흑색선전)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하얀 헬멧 대원은 정파·종파를 떠나 구조활동에만 전념한다는 게 회칙”이라며 “철저히 중립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알아사드 정권 주장대로라면 미국 돈을 받아 구조활동을 할 게 아니라 총을 드는 게 맞다”며 “알아사드 정권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시리아 내전 와중에 시민이 주축이 되고 국제 구호단체가 외곽에서 돕는 새로운 구호 모델은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라며 “구호단체도 꺼리는 곳에서 자발적으로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는 하얀 헬멧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하얀 헬멧, 제2의 노벨상 ‘바른생활상’ 받아

「‘하얀 헬멧’은 노벨 평화상을 받진 못했지만 지난 9월 ‘제2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다. 바른생활상은 스웨덴 출신 우표 수집가 야코프 폰 윅스쿨이 1980년 소장 우표를 매각해 100만 달러의 기금으로 제정한 상이다. 윅스쿨은 기존 노벨상이 환경 보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자를 간과한다고 보고 노벨재단에 수여 항목 신설을 요청했지만 거부되자 직접 상을 만들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바른생활상을 기존 노벨상이 지닌 서구 강대국의 편파성을 거부하며 생긴 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대안(Alternative) 노벨상 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바른생활상 수상자들은 11명의 국제심사단에 의해 선정된다. 시상식은 매년 노벨상 시상식 하루 전날인 12월 9일 스웨덴 의회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만 크로나(약 3억8000만원)로 수상자들이 나눠 갖는다. 윅스쿨의 조카인 올레 폰 윅스쿨은 지난달 22일 하얀 헬멧과 이집트 여성 인권활동가 모즌 하산, 러시아 인권운동가 스페틀라나 가누슈키나, 터키 독립신문 줌휴리예트 등을 올해 바른생활상 공동 수상자로 발표했다. 그는 하얀 헬멧에 대해 “시리아 내전에서 민간인 구조활동을 통해 용기·박애·인간애를 뚜렷이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03년 사회 개혁과 대북 화해 추진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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