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길고양이 중성화수술' 현장 동행 취재기

천선휴 기자 입력 2016. 10. 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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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케어 프로젝트] 사람·길고양이 공존을 모색하는 장수마을을 가다
중성화수술을 앞둔 길고양이 한 마리가 포획틀에 갇혀 있다.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카단아, 괜찮아. 조금만 더 참자."

통덫에 걸린 길고양이 카단이의 날이 잔뜩 서 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르랑거리기 바쁘다. 카단이 곁엔 평소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던 '캣대디' 오영주씨(43)가 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주민인 그는 통덫에 걸린 길고양이들이 혹여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한 마리 한 마리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며 불안감을 달래줬다. 오씨는 “전날 밤 마을 곳곳에 통덫 24개를 설치해 놨는데, 아침에 보니 17마리가 잡혀 있었다”면서 “마을에 사는 길고양이가 40마리가량 되는데 첫 시도에 많이 잡혀줘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장수마을 주민들이 지난 밤 설치한 통덫을 회수하고 있다. © News1

오씨를 비롯한 장수마을 주민들과 동물보호단체 케어 관계자들은 마을 곳곳에서 잡힌 길고양이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동물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양이들의 무게가 합쳐져 통덫의 무게가 꽤 묵직했지만 그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임영기 케어 사무국장은 “고양이가 통덫에 오래 갇혀 있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며 길고양이들을 차에 실었다.

임영기 케어 사묵국장(왼쪽)과 장수마을 주민 오영주씨가 길고양이가 들어 있는 통덫을 동물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차에 싣고 있다. © News1

이들이 길고양이들을 포획한 건 중성화 수술을 위해서다. 지난 3월 반려동물 전문 플랫폼 '해피펫'과 케어는 ‘도시 생태계 일원인 길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의 마을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장수마을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 장수마을 주민들은 7개월간 먹이를 챙겨주며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22일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한 첫 TNR(포획-중성화수술-방사)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배정학 장수마을 주민협의회 대표는 “처음엔 ‘길고양이에게 왜 밥을 주느냐’며 반발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 지금까지 탈 없이 길고양이를 돕는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서 “마을 주민들의 협조 덕에 중성화수술까지 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VIP동물의료센터 의료진이 이송된 길고양이들을 살피고 있다. © News1

통덫에 걸린 길고양이 17마리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위치한 VIP동물의료센터로 옮겨졌다. 자유로이 길을 누비고 다니다 좁은 포획틀에 갇힌 탓인지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일부 고양이들은 다가오면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의료진들의 손길은 더욱 빨라졌다.

문제는 고양이 마취. 통덫 안에 들어 있다곤 하지만 마취하려면 고양이를 고정한 뒤 주사를 놓아야 했다. 고양이들이 얌전할 리 없었다. 통덫 문을 여는 순간 쏜살같이 탈출한 고양이를 잡기 위해 수의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 와중에 수의사가 다리를 물리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최이돈 VIP동물의료센터 원장이 포획틀에서 탈출한 길고양이를 잡고 있다. © News1

수의사 5명이 마취부터 수술까지 작업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30분. 수컷 10마리와 암컷 7마리 모두 문제없이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

수술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컷 한 마리의 입속에 문제가 있었다. 최이돈 원장은 바로 이빨 수술에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구내염이 심해 모든 이빨을 뽑아야 했다.

수술이 끝나자 최 원장을 비롯한 수의사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장수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통덫에 들어간 길고양이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길고양이들이 의료진에게 중성화수술을 받고 있다. © News1

수술을 마친 길고양이들은 마을회관에서 회복기간을 거친 뒤 방사된다. 임영기 국장은 나머지 고양이들을 마저 포획해 중성화수술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고양이 17마리와 장수마을 주민들은 사람과 길고양이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안내해줬다.

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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