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강, 세월호 그리고 오늘..우리의 '설리'는?

박재용 2016. 10. 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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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5일.

155명을 태운 US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이 모두 손상된다.

불과 850m 상공에서 추진력을 잃은 것이다.

관제탑에서는 근처 공항으로 회항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기장인 설리는 208초라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직감에 따라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着水)한다.

그 뒤 구조에 걸린 시간은 불과 24분.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 등 탑승객 155명 전원이 구출된다.

대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지만 기장을 포함해 승무원, 승객, 그리고 구조에 참여한 경찰과 시민 등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낸 경이로운 기적을 담담히 그려 내고 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건 설리 기장에 대한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사고 조사 과정이다.

청문회에 소환된 설리 기장은 가혹할 정도로 철저히 조사를 받는다.

허드슨강 착수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인근 공항으로 회항할 순 없었는지, 술은 언제 얼마나 마셨는지, 약물 경험은 없는지, 가족 관계는 괜찮았는지 등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심문을 받는다.

비록 155명 탑승객 전원의 목숨을 구했지만 설리 기장의 ‘선택’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40년을 넘게 비행했는데 단 208초 사이의 일로 평가받는다”는 설리 기장의 말은 청문회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나타낸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샅샅이 뒤지고 털어서 한 점 의문 없이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야만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위기의 순간에 리더의 능력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한 시간여 전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32초.

최초의 전화가 걸려 왔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1시간 넘게 손 놓고 바라만 봤다.

그사이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은 자기만 살겠다며 배와 승객을 버리고 도망치다시피 빠져 나왔다.

구조 작업은 엉성하고 허술했다. 결국 30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그 뒤 특별법까지 제정해 청문회 등 조사 활동을 벌였지만 진상 규명은 미완에 그쳤다.

특별조사위원회 내부의 갈등과 정부의 비협조 등으로 진통만 거듭한 채 조사 활동이 끝났다.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우리는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대립과 다툼 속에서 사건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경우를 가끔 목도한다.

주장만 남아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숨진 백남기 씨의 사인은 “병사(病死)”다.

민정수석 아들이 서울경찰청 차장의 운전병으로 뽑힌 이유는 “코너링이 좋아서”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은 권력 실세가 개입된 게 아니라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이다.

주장은 진실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지만 어느 누구도 명확히 납득시키지 못한다.

미국 사회는 탑승객 전원의 목숨을 구한 설리 기장에 대해서도 그가 택한 결정이 최선이었는지를 모질게 묻고 따졌다.

하지만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권력층의 비리 의혹에 대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극은 되풀이 된다.

메르스 사태, 경주 지진, 북한 미사일 발사, 태풍 차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 말마따나 위기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메르스 사태, 경주 지진, 북한 미사일 발사 등 대형 재난과 위기 상황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위기 관리와 재난 대응 능력은 늘 실망스럽다.

우리 사회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號)를 구할 한국의 ‘설리’가 필요하다.

설리 기장은 그 뒤 자신의 삶과 불시착 사고를 다룬 책, ‘Highest Duty: My Search for What Really Matters’(고귀한 의무: 정말 중요한 것을 찾아)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훈련 받은 대로 했으며, 현명한 결정을 내렸고, 포기하지 않았다. 비행기에 탄 모든 이들의 목숨을 중하게 여겼고 그리고 좋은 결과를 맺은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설리는 대단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 바로 그런 평범하지만 책임감 있는 사람이 바로 ‘설리’인 것이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가 더욱 빛나는 것은 승객 모두를 구한 기장의 영웅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를 ‘청문회’에 세우는 미국의 ‘항공안전시스템’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세월호 진상조사 활동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들어서는 최순실 씨를 놓고 정치권이 연일 공방전이다. 언론에는 관련 기사로 넘친다.

그럼에도 그 실체에 접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리 기장을 청문회장에 세울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있지만 고장난 상태로 방기돼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의혹은 더 큰 의혹을 낳고, 불신은 더 큰 불신을 만들어내는 ‘비극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우리는 그들과 같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재용기자 ( pjyre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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