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랭보의 후예..길 위에서 눈물·웃음 뿌린 음유시인

2016. 10. 1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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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성기완이 본 밥 딜런거칠고 해학적인 민중의 언어 사용근엄한 근대 문학 이제 무덤 속으로반전의 상징, 날개 달린 혀의 시인그러나 당신, 이 상 어울리지 않아
1963년 8월 워싱턴DC 민권 운동 당시 존 바에즈(오른쪽)와 함께한 밥 딜런. [중앙포토]
구르는 돌 (rolling stone)이 노벨상을 받았다. 길고양이가 왕관을 쓴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펜이 아니라 혀에, 책이 아니라 발성기관에 노벨문학상을 바쳤다.
갑자기 6년 전의 감격이 떠오른다. 2010년 3월31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그를 직접 보았다. 정규 레파토리를 마친 후, 그는 첫 번째 앵콜곡으로 ‘구르는 돌처럼 (Like a Rolling Stone)’을 불렀다. 울 뻔 했다. “기분이 어떠냐구! / 완전 혼자 집도 절도 없이 / 구르는 돌처럼.”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집도 절도 없이. 밥 딜런의 투어를 ‘네버 엔딩 투어(Never Ending Tour)’라 부른다. 1988년 6월에 시작해서 계속되고 있다.
1963년 발매 된 2집 앨범 ‘Freewheelin’ Bob Dylan’ 표지. [중앙포토]
일찍이 100년 전 프랑스 시인 랭보가 ‘나의 방랑(Ma Boheme)’에서 가르친 대로, 그와 수많은 길 위의 음유시인들은 길에서 운율을 읊조렸다. 그들은 랭보의 후배들이다. 랭보는 길 위에 시와 웃음과 눈물을 뿌리고 다녔던 수많은 중세 음유시인들의 후예다. 밥 딜런의 읊조림은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의 최하층 노동자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혀는 노동현장에서, 에팔레치아 산맥의 거친 숲 속에서 시를 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에서 팔자에도 없이 팔려와 노예 생활을 한 흑인들의 블루스가 없었다면 밥 딜런은 존재하지 않는다. 블루스 뮤지션들의 서러움과 아픔 없이는 록큰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의 이유를 “미국의 위대한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인 표현을 창조했다”고 밝혔다. 길에서 시를 읊은 위대한 무명의 음유시인들 모두가 이 상을 공동수상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맥 더 핑거가 루이 더 킹에게 말했네 / 나는 마흔 개의 붉고 희고 푸른 신발끈이 있어 / 울리지 않는 천 개의 전화통도.”
1964년 미국 풀뿌리 저항운동을 상징하는 포스터 앞에 선 밥 딜런. [중앙포토]
밥 딜런의 명곡 ‘다시 가본 61번 고속도로(Highway 61 revisited)’에 나오는 가사다. 아마 지금쯤 ‘울리지 않던 천 개의 전화통’에서는 불이 나고 있겠지. 이 가사에는 대중가요의 상투형과 초현실주의가 뒤섞여 있다. 맥 더 핑거와 루이 더 킹은 이처럼 멋진 운율을 아무리 읊어도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것을 문학으로 볼 것인가?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왜? 저작권이 있는 책을 문학의 개념과 동일시해온 서양 근대문학제도의 암묵적인 검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근대의 문학은 이제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도박사들이여 안녕. 책이여 안녕. 이제 당신들에게는 작별인사를 나눌 때가 됐네. “떠나기 전에 커피나 한 잔 더 하시지” (One More Cup of Coffee).
2004년 발매 된 밥딜런 자서전 표시. 그가 직접 타이프를 치며 쓴 책이다. [중앙포토]
밥 딜런은 바람과 길의 정치학을 독설 섞인 민중의 언어로 풀어낸 사람이다. 이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바람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만 사람들은 사람다워질까? 얼마나 더 멀리 바다를 날아가야만 비둘기는 쉴 수 있을까?” (‘바람이 불러주는 노래 Blowin’ in the Wind’). 그러나 모든 선지자들이 그렇듯, 그 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오직 바람의 소리를 들으라고 전할 뿐이다. 1941년, 미네소타의 시골 마을에서 로버트 알렌 짐머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밥 딜런. 잘 알려진 대로 시인 딜런 토마스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예명을 밥 딜런으로 바꾸고 시인의 혀를 달고자 했던 사람이다.

시의 영혼은 하나의 매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는 여기 저기 떠돈다. 밥 딜런은 ‘영속되는 순간적 이미지’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시의 혀가 풀리는 순간, 노래의 날개가 푸득거리는 순간, 사람의 무의식 깊이 들어 있는 신화 이전의 보편성이 떠오른다. 그 보편성은 숨김없는 열망을 담고 있으므로 미래의 시간에 대한 진보적인 전망이 된다. 밥 딜런은 거칠고 해학적인 민중의 언어로 바로 그 순간을 붙들어 우리 앞에 펼쳐 보인 20세기 최고의 음유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끝없는 길 위의 삶, 시의 혼은 혀에서 혀로 방랑한다. 청산별곡을 쓴 고려 음유시인의 혀가 19세기 랭보의 혀다. 그리고 그의 혀가 우리 시대 딜런의 혀다.

영원한 반전의 상징, 날개달린 혀의 시인, 대중적 정서의 뿌리를 캐내는 땅꾼 밥 딜런! 노래와 시의 양 날개로 퍼드덕거리며 완고한 한국의 문화계에서 겨우 버텨온 나로서는 가슴 한 켠에 뭉클한 설움이 몰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왠지 그에게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밥. 축하해. 그러나 당신도 알지? 당신에게 이 상은 어울리지 않아.

성기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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