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LG전자 스마트폰 'V20'는 왜 89만 9,800원이 됐을까요?

한세현 기자 2016. 10.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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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야심작 프리미엄 스마트폰 ‘V20'. V20는 말 그대로, 위기에 빠진 LG전자 휴대전화사업을 살릴 '구원투수'란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 나왔습니다. 출시된 지 일주일가량 된 현재, 적어도 지금까지 성적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루 평균 5천여 대가 팔리며, 3만 대 가까운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경쟁제품 삼성 갤럭시 노트7 폭발 이슈 속에 “V20은 뛰어난 오디오, 카메라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전 모델보다 디자인이 개선됐다는 호평 속에 역대 LG전자 스마트폰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기자로서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건 개선된 디자인도, 뛰어난 오디오·카메라 성능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상보다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그 가격엔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의 고민과 번뇌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독자적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

‘V20’의 공식 출고가는 ‘89만 9,800원' 입니다. 70만 원 후반에서 80만 원 초중반대일 거란 업계 전망을 뒤집는 ‘예상 밖 고가’입니다. 물론, 폭발 이슈를 겪은 경쟁제품 삼성전자 갤노트7보다 10만 원이나 저렴할 뿐 아니라 최소한 터질 위험도 없고, 향상된 제품 성능을 놓고 보면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와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보유한 애플을 상대하려면 이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출시될 거란 게 시장의 대체적인 예상이었습니다. 하지만, LG전자는 정공법을 썼습니다. LG전자 조준호 사장은 V20 공개 행사에서 “삼성전자나 애플과 경쟁을 의식하기보다 LG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독자적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뛰어난 제품 경쟁력을 토대로 ‘정면승부’를 펼치겠단 겁니다. 하지만, 과연 제품에 대한 자신감만으로 89만 9,800원이란 ‘예상 밖 고가 전략’을 결정했을까요?
 
● “더 이상의 적자는 감당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89만 9,800원’이라는 가격엔 “더 이상의 적자는 감당하기 어렵다.”라는 LG전자 스마트사업부의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각론을 얘기하기 전에 LG전자 사업부에 대해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LG전자는 크게 4개 사업본부로 나뉩니다. 1) TV와 홈씨어터 등을 생산하는 HE사업본부(Home Entertainment), 2) 냉장고와 세탁기 등 부엌 등 청소용 가전제품, 에어컨을 생산하는 H&A사업본부(Home appliances & Air solution 3) 자동차 전장제품을 생산하는 VC사업본부(Vehicle Components), 그리고 4)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Mobile communication) 이렇게 4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LG전자 스마트폰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부’는 최근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G4’를 출시한 이후 영업실적은 연이어 적자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겁니다. 지난 2분기부터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적자폭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누적 적자만도 3,500억 원에 달합니다.
 
적자를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을까요?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듈형 스마트폰 'G5'도 시장에서 외면당했습니다. ‘G5 판매’가 시작된 2016년 2분기에만 1,535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겁니다. 특히, G5 공개 후 한 달 반이 지나서야 겨우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충분한 제품 공급량조차 제대로 생산·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제품을 공개한 게 주된 그 이유로 꼽혔습니다.
 
매끄럽지 못했던 생산제조 관리는 자연스레 높은 제품 불량과 결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제한된 모듈의 종류와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붙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처럼 누적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만약 V20 출고가를 5~10만 원가량 더 내리면, 제품 가격이 사실상 생산 원가 이하 낮아져 적자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더 큰 누적 적자를 피하기 위해선 출고가를 더 낮추기 어려웠던 겁니다.
 

LG V20

● 상대적으로 비싼 인건비와 높은 생산 단가

V20 가격을 내리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상대적으로 ‘비싼 인건비’와 ‘높은 생산 단가’입니다. 기본적으로, LG전자는 삼성전자나 애플 등 다른 경쟁사에 비해 인건비가 높은 편입니다. 베트남과 중국 공장서 생산하는 삼성전자, 애플과 달리 LG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대부분을 국내(평택)서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내 인건비는 베트남의 그것보다 10배 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높은 인건비로는 단가를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경쟁사들보다 비싼 부품 구매 비용도 문젭니다. 삼성전자는 어느 모델이든, 예상하는 판매량 단위가 ‘천만 대’ 수준입니다. 이는 애플도 마찬가집니다. 반면, LG전자는 수십에서 백만 대에 불과합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부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반면, LG전자는 그게 여의치 않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부품 단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판매 부진이 원가 절감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겁니다.
 
● 다른 사업부의 선전도 스마트폰 사업부에는 부담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LG전자는 4개 부문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4개 사업부 중 유독 스마트폰사업부만 깊은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TV와 냉장고 등 가전사업이 기대 이상의 호조세를 보였지만, 스마트폰 사업부 적자가 예상보다 커 LG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을 종전 3,470억 원에서 2,884억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쉽게 말해, TV와 냉장고, 에어컨 팔아서 벌어들인 수익을 스마트폰이 까먹었단 겁니다.
 
심지어 전장부품 등 ‘신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부도 미국 GM 전기차에 부품공급을 시작하며 적자폭을 크게 줄이는 등 의미 있는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업부들의 뛰어난 성과는 스마트폰 사업을 이끄는 MC사업부 경영진에겐 “더 이상의 적자는 감당하기 힘들다.”라는 압박으로 작용했단 분석입니다.
 
그럼에도, 내부에선 가격을 더 내리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성능에 가격까지 조금 더 내리면, 시쳇말로 ‘대박’을 칠 수 있다. 이번에 잃어버린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고, 높인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다음 모델에서 진검 승부를 걸어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격을 더 내리면 스마트폰 사업부가 감당해야 하는 예상되는 적자가 최대 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미 수천억 원의 누적 적자가 쌓인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이 이런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안 내리지 않는 선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아이디어를 낸 게 ‘20만 원 상당의 ‘B&O사’ 이어폰을 5천 원에 제공하고, 신한카드로 결제 시 할인해 주는 방안‘ 등이었습니다. V20가 앞으로 얼마나 선전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내부에선 여전히 그 이런 마케팅 전략은 카드사에 재정적 부담을 줄 뿐 실익이 크지 않다는 회의론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 조준호 사장 취임 뒤 부진에 빠진 스마트폰사업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 귀결합니다. LG전자 스마트폰사업은 2014년 11월부터 조준호 사장이 이끌고 있습니다. 조 사장은 그동안 LG그룹 지배구조 강화와 관리를 맡았던 인물로, 1986년 입사해 1992년부터 LG그룹 회장실에 근무했습니다. 2007년 말 ㈜LG 경영총괄 부사장이 됐고, 이후 1년 만에 경영총괄 대표이사로, 2010년엔 사장으로까지 말 그대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그만큼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겁니다.
 
하지만, 조 사장이 능력을 인정받은 분야는 ‘회장실과 구조조정본부를 배경으로 한 LG그룹 지배구조 관리와 지주사 관리’였습니다. 즉, 휴대전화사업이 조 사장의 ‘주 전공’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겁니다. 물론, 조 사장은 2000년대 초 정보통신 전략담당과 북미지역 LG전자 정보통신사업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 사장이 LG전자 휴대전화 사업 연관성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경쟁사 사업부장(사장)이 입사 후 줄곧 휴대전화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단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만난 LG전자 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 사장이 빠르게 바뀌는 스마트폰시장 트렌드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특히, 하드웨어와 복잡한 소프트웨어가 얽힌 스마트폰·모바일 생태계에 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 또 다른 임원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각각 경제학, 마케팅을 전공한 조 사장의 ‘기획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제품 생산과 공정관리에서는 취약점을 드러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G5 때도 '모듈형 스마트폰'이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완제품을 언제까지 얼마나 만들어내야 한다는 그런 세부 전략이 미흡했습니다. 당시 내부에선 “모듈형 제품은 가능한 한 싸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듈이 다양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모듈 종류를 늘리기는커녕 계획된 일정대로 스마트폰 자체도 생산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시장 트렌드와 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영진의 인적구조가 문제로 지적되는 대목입니다.
 
● “실패해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어 실패한 거다.”

기업을 출입하는 경제부 기자로서, 저 개인적으로 LG전자 V20가 성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질 좋은 제품들이 시장에 더 많이 나와, 소비자들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런 ‘선의의 경쟁’은 소비자들의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조준호 사장이 이끄는 ‘LG전자 스마트폰사업’은 실패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실패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뒤뚱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지 않고 낙관주의로 일관해서만은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영원히 실패한 건 아닙니다. LG전자는 “그동안 우리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고 냉정하게 비판하며 소비자들 앞에 다시 섰다. 89만 9,800원이란 가격으로도 충분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라고 당당히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V20는 비단 한 제품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LG전자 스마트폰사업의 내일을 결정한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V20는 LG전자 스마트폰사업의 ‘부활의 날갯짓’이 될 수 있을까요? 시청자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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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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