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가 '반나절 코스'? 석양을 봐야 진짜다

한성은 입력 2016. 9. 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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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18] 산토리니의 어느 멋진 날

[오마이뉴스 글:한성은, 편집:박혜경]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에서
두 어르신의 대화를 듣게 됐지

자네 주위엔 이제 몇 명 남았는가 질문에
상대 어르신은 손가락을 펴 세기 시작했지

이제 나까지 일곱 남았네
이제 수를 세는 데
열 손가락도 채 필요하지 않는군

나도 나이가 들면
떠난 것들이 아닌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 
묻게 될까
수를 세게 될까

- 강아솔, '남겨진 사람들' 노랫말 중에서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여행을 다녔던 지금 이 순간을 조금씩 잊게 될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것이 정말 있는 걸까? 재수까지 해가며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합격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합격'이란 말을 들었던 그 순간 정말 기뻤었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찢고 군대를 전역하던 날, 그 순간 정말 기뻤었다. 그런데 요즘은 잘 생각나질 않는다. 내가 정말 기뻤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이 여행이 어떻게 기억될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다음 목적지는 산토리니 섬으로 결정했다. '그곳은 정말 그렇게 아름다울까?' 하는 궁금증과 '대체 뭐 얼마나 예쁘기에 그렇게들 호들갑일까?' 하는 오만함이 내 안에 함께 있었다. 커다란 배낭 속에 호기로움과 허세를 반반 섞어 담고 항구로 향했다.

미코노스 섬에서 산토리니 섬까지는 페리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미코노스에서 타야 할 페리는 출발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왔다. 먼 바닷길을 달려오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긴 한데 대기실이 열악한 작은 항구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곤욕스러웠다.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에는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사람보다 훨씬 많은 모기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모기 잡는 박수 소리와 제 살 때리는 소리가 난무했다. 바깥은 내리쬐는 뙤약볕 때문에 정수리가 뜨거웠고 눈이 부셔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바다는 그야말로 눈이 시리도록 빛났다.

 미코노스와 산토리니를 연결하는 고속 페리
ⓒ 한성은
 대형 크루즈도 정박하는 미코노스 항구지만 편의 시설이 열악했다.
ⓒ 한성은
그렇게 산토리니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1박 2일을 머무르며 첫째 날은 피라(Fira) 마을, 둘째 날은 이아(Oia) 마을을 둘러보고 오후에 크레타 섬으로 이동하려고 계획을 짰었다. 그런데 계획보다 늦게 도착해서 조바심이 났다. 사진 속 산토리니는 언제나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움직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후 8시는 되어야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산토리니 신항구(Thira)에 내리니 미코노스보다 더 작은 항구에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역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섬 중의 하나였다.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관광객으로 넘쳤다. 7~8월에는 페리 좌석 구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저렇게 큰 페리에 좌석이 없다니 말도 안돼'라고 생각했었는데, 산토리니 신항구에 내리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항구는 수직으로 깎아내린 절벽 아래에 있었다. 절벽을 깎아내어 땅을 만들고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조성한 것 같았다. 항구에 내려서는 대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가늠이 안 된다. 하늘 아래 맞닿아 있는 절벽 위를 쳐다보면 건물 몇 채가 보이는데 보자마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라퓨타>가 떠올랐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산토리니 항구 뒷편으로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이 보인다.
ⓒ 한성은
 피라 마을 로컬 버스 정거장에는 버스 시간과 요금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 한성은
'네가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어!'라는 오만함은 절벽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이미 다 잊고 라퓨타를 향해 날아가는 파즈와 시타로 빙의해서 절벽 위를 오르는 것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함께 내린 관광객들은 숙소에서 보내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절벽 위로 올라갔다.

수많은 전세 버스와 택시들이 항구를 떠나자 나를 비롯한 몇몇 배낭여행객들이 남았고 우리는 외롭게 서 있는 로컬버스를 겨우 찾아서 올라탔다. 피라 마을과 항구를 오가는 버스는 보통 2시간 마다 한 번씩 다니는데, 정확한 시간은 매일 유동적이다. 산토리니에 도착하는 배 시간에 맞춰서 로컬버스가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항구에 내리면 마을로 들어가는 로컬버스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절벽 위 피라 마을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난 길을 달리는 버스가 아찔했다. 한참 절벽을 올라가는 중에 승무원이 버스 요금을 받으러 다녔다. 산토리니의 로컬버스는 버스에 타고 난 다음 돈을 내고 표를 사는 방식이다. 노선 따라 요금이 조금씩 다른데, 항구에서 피라로 가는 버스는 한 번 타는데 2.3유로였다. 환승 같은 것은 당연히 안 된다.

3유로를 내니까 동전이 없다며 기다리란다. 내리기 전에 다시 달라고 했더니 50센트를 주며 동전이 없단다. 버스 요금이 센트 단위인데 거스름돈이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나 말고도 거스름돈을 다 받지 못한 사람이 더 있는 것 같았는데 모두 내리고 없었다. 20센트로 싸울 수도 없고 그냥 내렸다. 20센트를 못 받았지만, 마음은 20유로만큼 상해버린 후였다.

산토리니 섬은 워낙 작기도 하고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다니기가 참 애매하다. 섬 전체를 걷는 것은 어렵고, 로컬버스는 비쌀 뿐만 아니라 운행 시간을 맞춰서 타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이번에도 스쿠터를 빌려서 다닐 생각이었다. 피라 마을버스 정거장에 내린 후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좁은 골목을 몇 개나 돌아야 하는, 사방이 다른 건물로 막힌 숙소를 겨우 찾아서 짐을 내려놓고 나왔다.

이런 곳에 호텔을 짓고 영업을 하는 사람도 신기하고, 그런 곳을 굳이 찾아내서 예약을 한 나도 대단했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의 연결 고리는 돈이다. 인터넷을 통해 찾은 산토리니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가 거기였기 때문에 그곳이 크노소스 궁전의 미로라고 해도 나는 가야만 했다.

숙소 앞 렌트카 사무실 할아버지는 피라 마을에서 알아본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스쿠터를 빌려준다고 했다. 흥정을 마치고 스쿠터를 고르고 기분 좋게 나서려는데, 할아버지가 내 면허증을 보더니 오토바이 면허가 없어서 안 된단다. 한국 운전 면허증과 국제 운전 면허증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터키와 그리스에서 모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가 가진 국제 운전 면허증에 2종 소형 면허에 대한 허가가 없다며 안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25cc 이하는 운전 면허증으로 대체 돼서 그런 거라고 설명을 했지만 안 된단다. 자기는 법을 어길 생각이 없으니 다른 가게에 가서 빌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1종 보통 운전 면허증과 국제 운전 면허증 B형으로 50cc 스쿠터를 빌려서 타면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되는 건가? 그리스만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나 역시 법을 어기면서 굳이 스쿠터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스쿠터는 포기하고 그냥 걷기로 했다.

산토리니 섬은 크게 보면 피라 마을과 이아 마을만 다니면 된다. 물론 산토리니에도 수많은 고고학 유적지가 있고, 해양 스포츠를 즐길 해변들이 있지만 다른 섬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산토리니 하면 떠오르는 그 모든 이미지는 피라 마을과 이아 마을 그중에서도 이아 마을에 대부분 몰려 있다.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버스비도 아까운 처지에 와이너리를 다닐 형편은 안 되니, 그냥 이아 마을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면 마을 구경도 하고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맞았다. 워낙 작은 마을들이고 절벽 위에 옹기종이 모여 있다 보니 렌트카는 고사하고 스쿠터 주차할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가는 한참을 돌아서 렌트카나 스쿠터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쿠터를 빌리지 못한 덕분에 마을 구석구석을 마음 편하게 구경하며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숙소로 돌아갈 때는 2시간 가량 걸어가야 했지만, 그것도 결국은 여행이 일부였기에 나쁘지 않았다.

 피라 마을을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것이다.
ⓒ 한성은
피라 마을 입구에는 선사 박물관(The Museum of Prehistoric)과 고고학 박물관(Archeological Museum)이 있었다. 선사 시대와 고대를 일부러 나누어서 박물관을 운영할 만큼 관련 유물과 자료가 많다는 의미인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겼지만, 다행히도 이미 박물관 문은 닫혀 있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피라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피라 마을로 통하는 큰길은 하나밖에 없어서 딱히 지도도 필요 없었다. 길을 따라 수많은 식당과 상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작은 계단을 몇 개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바로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는 서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노을이 붉어지기 전이라 하얀 집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하늘은 여전히 파란 빛을 잃지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거짓말 같은 장면이었다. '대체 뭐가 얼마나 예쁘길래 다들 산토리니로 가는 거야?'라던 오만한 마음은 '이렇게 예쁘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구나' 하는 겸손함으로 바뀌었다. 그냥 그 자리에 서 보면 알게 된다. 검푸른 에게해와 파란 하늘과 황금빛으로 물든 집들이 눈이 아니라 가슴 속으로 훅하고 들어온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이라곤 그저 '아...' 하는 감탄뿐이었다.

해가 서쪽 바다로 자꾸 내려가는데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미리 찾아 놓은 석양이 예쁜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저 예쁜 집들이 붉게 물들기 전에 그곳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석양이 물들어 가는 동안 산토리니의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망 좋은 곳으로 가려고 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면 이대로 어둠이 내려서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오만했던 나를 한순간에 겸손하게 만든 산토리니의 피라 마을.
ⓒ 한성은
예뻤다. 그저 예뻤다. 끝없는 에게 해에 둘러싸인 이 조그만 섬에 절벽을 기어올라 터를 잡고 집을 지어 놓은 모습이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산토리니에서 선사시대 유적도 발굴되었다는데, 이런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살아 낸 이들 조상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지만, 과거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어부였다고 했다. 그들의 삶이 그대로 그림이 되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더 많은 관광객을 위해 더 예쁘고 근사한 집을 짓고, 매년 성수기가 되기 전에 흰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더 아찔한 곳에 카페를 만들고 있어서 과거의 그 모습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골목마다 고급 호텔과 부띠끄가 즐비하고, 명품 매장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절벽 위에서 석양을 받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피라 마을을 보고 있으면 그저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굳이 찰리 채플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여행을 하면 알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삶은 언제나 희극이다.

절벽 아래로 과거에 사용하던 구 항구(Old Port)가 있는데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걸어서 다녀오기에는 힘든 거리여서 주로 산토리니 명물인 동키 택시를 타고 다녔다. 원하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었다. 끝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당나귀들을 보니 처음에는 신기해서 사진도 찍고 하다가 평생을 이 길만 왔다 갔다 하며 산다고 생각하니 좀 불쌍하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당나귀들이 다니지 않으면 이들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동물원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여기를 걷는 게 낫지 않을까 하다가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서 그냥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모든 동물들이 자유롭게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며 자유롭게 살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 살지 못한다. 배낭 짊어진 자유 여행자라고 항상 바람처럼 거침없이 다닐 것 같지만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마음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토리니 구 항구로 내려가는 케이블카.
ⓒ 한성은
 산토리니의 명물인 동키 택시.
ⓒ 한성은
해가 지고 거리에 전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하자 마을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오묘한 색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뿌려졌다. 그리고 금세 사위는 어두워졌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 시간은 찰나였다. 새벽 같기도 하고, 저녁 같기도 한 그 순간이 산토리니에서 지낸 이틀 동안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 이온음료 CF로 유명한 이아 마을의 그 골목도 이 순간보다 멋있지 않았다.

보통 우리나라 단체 여행객들은 산토리니를 반나절 코스로 다녀간다는 말을 들었다. 바쁜 일정일 테니까, 그리고 산토리니의 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구글 지도를 펼쳐 보면 지명이 '선셋 산토리니(Sunset Santorini)'나 '선셋 이아(Sunset Oia)'로 된 곳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산토리니의 석양에 열광했다. 그리고 노을을 품은 산토리니는 너무 노골적이라 살짝 부담스러운 한낮의 산토리니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누군가 산토리니를 간다고 한다면 꼭 하루를 머물며 붉게 물드는 산토리니를 바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석양이 지고 붉게 물들어가는 피라 마을.
ⓒ 한성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 한성은
다음날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오전 중에 이아 마을을 둘러보고 크레타 섬으로 이동하는 페리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배낭을 싸고 체크 아웃을 한 후 숙소에 배낭을 맡기고 길을 나섰다. 걸어서 피라 마을로 이동한 후 로컬 버스로 이아 마을까지 갔다. 이아 마을에서는 마음속에 담아 둔 숙제를 해야 했다. 그것은 산토리니 섬을 검색하면 언제나 나오는 파랗고 둥근 교회 지붕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다.

모든 건물이 새하얗고 모든 교회 지붕이 둥글고 파랗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찍어도 괜찮지만, 마을이 벼랑 끝에 있고 좁은 골목들로 연결되어 있어서 파란 교회 지붕과 에게 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좁은 골목들 사이에 서면 양쪽으로 건물들이 있어서 시야가 막힌다. 게다가 그나마 좋은 자리다 싶으면 모두 고급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커피라도 한 잔 주문하지 않으면 테라스에 앉을 수도 없었다.

 피라 마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있던 레스토랑.
ⓒ 한성은
 그림 같이 예쁜 자리에 앉고 싶다면 주문을 해야한다.
ⓒ 한성은
 절벽을 따라 이어진 골목들 사이마다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 한성은
분명히 사진 속에서 수도 없이 봤던 그 교회를 찾았는데 아무리 골목을 헤집고 다녀도 사진 속의 그 지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다들 어딘가 멋진 테라스에 앉아서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물론 사진 속 그 위치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산토리니는 차고 넘칠 만큼 멋지고 예뻤다. 하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그 장소에 내가 직접 서서 에게 해를 바라보는 것을 늘 상상했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자니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골목길을 돌고 돌다 보니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절벽 아래에는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물이 너무 맑아서 절벽 위에 서도 물빛이 보일 정도였다.

다른 관광객들은 동키 택시를 타고 오르내리는 길이었지만, 멀쩡한 두 다리를 두고 한 끼 식비를 동키 택시 타는 데다 쓸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난 계단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전체 계단의 수는 220개 정도였다.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동키 택시를 타게 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숫자였다. 물론 나에게는 '뭘 고민해? 겨우 계단 220개야'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여기서 내려다 본 풍경이 너무 예뻐서 고행을 시작했다.
ⓒ 한성은
 계단 마다 적힌 숫자 215.. 216.. 217..
ⓒ 한성은
경사가 가팔라서 계단의 높이가 제법 되긴 했지만 걷기 힘든 길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문제는 계단이 아니었다. 온 계단에 당나귀들이 오르내리며 싸 놓은 똥들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간간이 보였는데 내려갈 수록 온 계단이 똥 천지였다. 동키 택시는 당나귀가 한 마리씩 따로 다니는 것이 아니고 열 마리 정도 줄지어 다니기 때문에 앞뒤로 밟고 다녀서 그런지 이리저리 뭉개져 있어서 처음에는 흙이 뿌려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냄새였다. 특별히 동물들의 배설물 냄새에 대해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당나귀 구린내는 지금까지 맡아 본 동물의 배설물 냄새 중 가장 심했다.

네팔 치투완 국립공원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파리 투어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습적인 코끼리 방귀를 맡고 정신을 잃을 뻔했던 적이 있는데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인도에서 소똥 사이를 걸어 다닐 때에도 이렇지 않았었는데 당나귀 구린내는 정말 지독했다. 모든 당나귀가 그런 것인지, 220계단을 오르내리며 대장 기능이 약해진 산토리니의 당나귀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괴로웠다.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입으로 숨을 쉬며 가볼까 했지만, 왠지 이 냄새가 그대로 식도로 들어가면 앞으로 입에서 당나귀 구린내가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나귀 똥 때문에 실컷 내려온 계단을 도로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진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직도 사진을 보면 당나귀 구린내가 떠오른다.
ⓒ 한성은
그렇게 힘들게 절벽 아래 항구에 도착했는데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절벽 위에서 보던 남의 요트를 그저 가까이에서 다시 볼 뿐이었다. 뙤약볕을 피해 어디 그늘에 좀 앉아서 쉬려고 해도 절벽 아래 그늘진 곳은 모두 고급 레스토랑들이 차지하고 그들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유람선 투어를 신청하는 사무실 앞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서 쉬는데 이번에는 사무실 사람이 나와서 유람선 타라고 자꾸 말을 걸어서 그나마도 쉴 수가 없었다. 좀 서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돈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돈은 참 이상하다. 산토리니 섬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겼는데 누군가가 자기 땅이라고 한다. 해안가 그늘도 그들이 샀는지 의자가 없었으면 그냥 편안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인데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돈을 받고 자리를 팔고 있다.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바다를 보며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원한 것도 아니고 편안한 의자와 탁자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절벽 아래 그늘에 앉아서 내가 가져온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그것도 돈이 필요했다. 갑자기 공해상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 새로운 섬이 하나 생기면 그 땅 주인은 누가 될까? 분명한 사실은 새로운 땅이 생겨나도 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테이블과 의자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 잠시 앉아 쉬고 싶었던 바닷가.
ⓒ 한성은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냄새는 여전했다. 내려갈 때는 급하게 뛰어가면 그만이었는데, 올라갈 때는 급하게 뛰어갈 수가 없어서 온몸으로 당나귀 구린내를 맡으며 올라갔다. 그리고 올라가면서 왜 계단에 친절하게 숫자를 써 놓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계단이 무려 220개나 된다고! 동키 택시를 꼭 타야 해!'라는 뜻이었다. 처음부터 내려가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 마음이 변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것이었다.

진한 당나귀 구린내를 맡으며 220개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계단 옆으로 내려갈 때는 못 봤던 팻말이 보였다. 우리말로 하자면 '땅 팝니다' 정도 되겠다. 절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축대를 세우고 평평하게 터를 닦아놓은 땅을 팔고 있었다. 이런 땅은 얼마쯤 할까 생각하며 지나치려는데 가만 보니 한자도 적혀 있었다. 그리스어와 영어 그리고 러시아어와 함께 한자도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중국인들이 이곳에서도 땅을 사러 다니는 것 같았다.

중국 자본이 그리스에서 땅 투기를 한다거나 그런 것을 아닐 것이다. 다만 중국인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것일 테다. 몇 해 전,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서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는데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땅이 하나도 없다. 나도 얼른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텐데 그런 마음은 영원히 못 가질 것 같다.

 5개 국어로 적혀 있는 '땅 팝니다.'
ⓒ 한성은
그러고 보니 절벽 아래 곳곳에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이 몇 군데 보였다. 아직 흰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서 시멘트벽을 그대로 드러낸 건물은 그렇게 아름다운 주변 풍광과 어울리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서 있었다. 이 예쁜 산토리니 섬을 이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한꺼번에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이 집들에 모두 흰색 페인트를 칠하지 않았더라면 산토리니 섬이 지금처럼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그림 같은 하얀 집과 파란 창문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흰 페인트를 칠하지 않아서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집을 보고 있으니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씁쓸해하는 내가 이상했다. 석회암이 흘러내려 저절로 하얗게 변했기를 바랐던 것인가. 예쁜 산토리니 섬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페인트칠을 하며 흘렸을 그들의 땀과 노력은 분명 인정받아야 하고 경제적 효과도 뒤따라야 한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 척박한 섬이 에게 해의 지상낙원으로 변한 것이다. 고상한 척하려는 자신을 꾸짖으며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다. 

 아직 흰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회색 건물들.
ⓒ 한성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오전 내내 그렇게 찾아 헤맸다 포기했던 사진 속 그 장소를 '220계단 동키 택시 셀프 투어'가 끝나자마자 찾아냈다. 큰 건물들 사이에 가려서 찾을 수 그 골목을 절벽을 따라 올라오며 발견한 것이다. 두 사람이 비켜서기도 힘든 골목을 헤매며 들어가니 사진으로 수없이 봤던 그 장소가 눈에 떡하니 나타났다. 두 개의 파랗고 둥근 지붕과 파란 종탑이 있는 그곳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만약 투덜대며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았더라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또 좋은 일이 생기고 그런 것이다.

여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쌍의 신혼부부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고,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좁은 골목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그곳을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좁은 길이었다. 그래서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같은 장면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스마트폰을 들고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자리에 내가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그 기억을 갖고 싶은 것이었다.

남겨진 사진만 봐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차피 같은 구도에서 찍힌 같은 사진은 인터넷에 차고 넘쳤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더 훌륭한 사진가들이 찍은 더 멋진 사진이 훨씬 많은데 굳이 풍경 사진을 왜 찍냐는 질문을 들었었다. 같은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도 했었다.

 '그 장소'에서 멋진 웨딩사진 촬영을 하는 중국인 커플.
ⓒ 한성은
다만 그저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서서 뷰파인더에 비친 저 풍경을 보고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입증하고 싶은 것이었다. 언젠가 내 기억이 흐릿해 질 무렵에도 이 사진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오늘 이 순간 내가 이 하늘 아래서 이 바람을 맞으며 저 파란 지붕을 바라보고 서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이런 무모한 짓을 또다시 저지를 만큼 내 배포가 크지도 않고, 우리 사회의 아량도 그 정도로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바라보는 이 순간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기억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 나약함과 불안함을 사진 속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 것이다.

하루하루를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살라는 멋진 말을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되새기며 살기는 어렵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 흘렀고,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매 순간 가슴 저미도록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많은 가치를 담고 있는 날이며,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짐을 한다.

'오늘이 내 삶에서 가장 멋진 하루가 될 것이다. 지금은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다.'

 반나절을 찾아 헤매고 다녔던 두 개의 파란 지붕과 종탑.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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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 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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