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뿌리는 몽골 파스파문자..한자음 표기 위해 제정"

권형진 기자 2016. 9. 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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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 고려대 명예교수, 기존 교과서 지식 뒤집어 30일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국제학술대회 발표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 © News1

(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 한글은 세종대왕이 독창적으로 발명한 게 아니라 티베트에서 발원해 몽골제국 공식문자가 된 '파스파문자'라는 주장이 나왔다.

백성을 위해 제정한 문자가 아니라 한자발음을 우리말로 표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둘 다 기존 교과서 내용을 뒤집은 주장들이다.

파격 주장의 주인공은 국내 대표적 서지학자인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76)다. 정 교수는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가 30일 가천대에서 개최하는 '유라시아 문명과 알타이' 국제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파스파문자는 티베트 출신 승려이자 원나라 국사(國師)인 파스파가 쿠빌라이 칸(세조)의 명을 받아 제정한 문자다. 자신들의 언어를 한자로 기록하기 어려워 표음문자를 따로 만든 것이다.

정 교수가 발표하는 '알타이 제 민족의 문자 제정과 사용' 논문에 따르면, 한글과 파스파문자는 우선 글자 수가 같다. 한글은 초성(자음) 32자와 중성(모음) 11자를 합해 43자로 만들었다. 파스파문자의 43자모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글과 파스파문자의 유사성은 외국학자들도 꾸준히 제기했던 주장이다. 'ㄱ ㄴ ㄹ ㅂ ㅍ' 등 글자 형태가 같다. 문자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몇 사람이 창조해 보편화하는 것이 힘들다. 훈민정음 제정에 관여한 학자들이 파스파문자 등 중국의 음운을 깊이 연구했다는 것도 이들이 내세우는 주요 근거다.

7·8세기 이후 중국 북방민족들은 새 국가를 세우면서 새 문자를 제정하는 전통이 있었다.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 왕이 고대 인도에서 유행하던 음성, 문법연구 이론인 비가라론(毘伽羅論)을 응용해 새로운 표음문자를 만들었고, 이게 북방민족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자는 교착적 문법구조를 가진 알타이계통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에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자는 고립어를 표기하도록 만든 문자다. 그래서 일본의 가나문자처럼 한자를 변형시켜 따로 문자를 만들기도 하고 한글이나 파스파문자처럼 새로운 표음문자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전통이 한반도에도 전달되어 조선 건국과 더불어 한글 제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비가라론은 불경기록을 통해 조선에도 전해졌다"며 "여말선초의 많은 학승들이 배워서 알고 있어서 이것이 한글 제정의 기본 틀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가계와 파스파문자의 연결고리도 지적했다.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은 원나라에 귀속하여 한때 천호(千戶) 벼슬을 지냈다.

정 교수는 "이자춘은 '울루스 부카'라는 몽골식 이름으로 개명까지 하면서 몽골의 세계주의(cosmopolitanism)에 동조했고 대대로 몽골의 문화를 숭상했다"며 "이 때문에 그의 증손자인 세종이 문자를 제정할 때 원대 파스파문자의 영향이 컸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글 창제의 원리 등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본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복간본. (뉴스1DB) © News1 박정호 기자

훈민정음은 파스파문자처럼 한자음을 우리말로 표기하기 위해 제정한 문자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올바른 한자음' 또는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한자의 올바른 발음'을 표음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문자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처음에는 한자음 표음을 위한 기호로 만들었으나 파스파문자와 같이 우리말과 우리 한자음의 표기에도 사용되었으며 빠르게 일반백성들의 생활문자로 퍼져나갔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고려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7년 정년퇴임했다. 한국학 전문연구단체인 국제고려학회장, 전주 우석대 한국학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이날 학술대회를 주최하는 박진수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장은 "정 교수의 논문은 한자문화 주변의 북방민족이 역사상 전개한 다양한 문자 제정의 시도라는 측면에서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문화교류 상황과 우리 한글의 제정 배경을 밝히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한글의 독창성은 파스파문자에 기인하더라도 지워지지 않을 업적"이라며 "파스파문자는 일과성으로 사라져 현대 몽골에서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한글은 계승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동남아국가에 수출도 되는 등 탁월한 국제적 문화상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라시아 문명과 알타이'를 주제로 가천대 글로벌센터 1층 국제홀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에는 정 교수 외에도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일본에서 온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한다.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는 한국가스공사의 후원으로 알타이학연구실을 개설하고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언어·문화적 관련성'을 연구하고 있다. 알타이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며 '한국어'나 '한국인'이라는 개념을 단일기원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결과로 보는 연구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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