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현장 없는 정부 정책

입력 2016. 9. 28. 00:42 수정 2016. 9. 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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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진 때도 미세먼지 때도 헛다리.. 필요한 건 소통

요즘 국가를 이끌고 있는 관료사회의 모습을 보면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정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현장에 널려 있는데도 이를 내팽개쳐 두고 현실과 괴리된 결과만 내놓고 있다.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의 대응은 국가수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부처 홈페이지는 먹통이 됐다. 성능을 80배나 향상시켰다고 했지만 정작 국민들이 필요로 할 때는 또다시 불통이 돼 버렸다. 지진 예측은 차치하고 긴급재난문자마저도 제때 발송하지 못하는 상황에 국민들은 노상에서 담요를 덮어쓰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항조차 운영되지 않고 무너졌다. 정부의 미숙하고 안일한 대처에 국민들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분노하고 있다.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그저 감사해야 하는 현실이다.

최근에 출간된 책 ‘재난불평등(존 C 머터)’에 따르면 재난은 처음 발생하는 순간만 자연적이지 그 이후는 사회·경제적 사건이 된다. 지진이 일어나도 가난한 나라는 사망자 수를 포함한 피해 규모가 크고 복구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부자나라는 사망자 수도 많지 않고 복구기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피해 규모가 재난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불평등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분석했다. 사전 예방과 사후 대처를 얼마만큼 잘하느냐에 따라 재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진 규모별 대피 요령과 복구 매뉴얼이 제대로 만들어진 상태에서 반복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한다면 아무리 규모가 큰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차량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는 반복된 교육과 홍보가 교통사고 피해를 크게 줄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본분을 망각한 관료사회의 헛발질은 지진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6월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섬마을 20대 여교사 성폭행 사건 당시 범인들은 음주상태에서 112파출소 앞을 14번이나 지나다녔으며, 피의자들이 교사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한 식당은 파출소에서 70m가량 떨어져 있었다. 파출소가 인접해 있었음에도 충격적인 사건을 예방하지 못해 아쉬움을 낳았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경찰서가 없어 치안공백이 발생했다며 경찰서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됐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이 확산하자 보건복지부는 ‘낙타고기 먹지 말라’는 예방책을 발표해 국민들을 기겁하게 했다. 여기에 질세라 지난여름 환경부는 미세먼지 대책을 수립하면서 ‘고등어가 주범’이라는 발표로 폭염에 짜증난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구입하고도 폭염과 장마기간을 제대로 예보하지 못하는 정부에 국민들은 ‘구라청’이라는 원색적인 별명을 붙여줬다.

이뿐인가. 정부 당국은 고속도로 터널에서 연쇄 추돌사고로 탑승자들이 숨지고서야 터널사고 안전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현장을 분석한 선제적 대응이 아닌 사후약방문식 정책으로는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없다. 탁상공론은 관료사회가 경계해야 할 구습이다.

관료사회는 적극적인 현장방문과 소통을 통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언덕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사무실 책상 앞에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점도 현장에 나가면 한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관료사회는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을 곱씹고 또 명심할 일이다.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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