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교환·환불 '레몬법', 20대 국회에서도 흐지부지?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6. 9.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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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18·19대 국회에서도 제기됐지만 모두 무산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소프트 랜딩]18·19대 국회에서도 제기됐지만 모두 무산]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새차를 구입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들뜨고 설레는 순간이다. 하지만 새로 구입한 차가 이유없이 고장이 나고 문제가 생기게 되면 소비자는 그 순간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13년형 현대기아차의 주력 SUV 차량인 싼타페에서 누수가 생겨 소비자들 사이에 '수타페'라는 오명을 얻게 된 사례는 유명하다. 처음에 소비자 몇명이 결함을 제기했지만 차츰 불만이 확대되고, 국토부에서까지 조사에 나서자 현대기아차가 공식 사과까지 하고 무상 수리와 보증기간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소비자들의 강력한 리콜 요구에는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며 끝내 응하지 않았고, 무상 수리 이후에도 다수의 소비자들은 반복되는 누수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15년 9월 리스한 벤츠 차량의 시동꺼짐으로 교환·환불을 요구하다 분에 못이겨 본사 앞에서 차를 골프채로 부숴버린 사건은 차량 결함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얼마나 컸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영상을 통해 사건의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결국 국토부가 조사에 착수했고 이후 차량 엔진을 제어하는 ECU 프로그램 결함으로 밝혀지면서 지난 11월 메르세데츠 벤츠사는 해당 차량의 리콜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벤츠 차량 주인이 차를 부수지 않았다면 과연 벤츠사는 리콜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위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소비자는 신차에 결함이 발견됐을 때 교환이나 환불을 받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에 처해 있다. 피해 소비자는 제조사나 판매사에 알리고 직장을 다니거나 생업에 종사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사업소나 서비스센터를 수차례 들락날락하며 금전적 시간적 피해와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는 전문가가 아닌 탓에 차량 결함의 원인을 스스로 밝혀내기 어려워 해당 사업소나 서비스업체의 진단과 수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수리 결과 차량의 결함이 명백한 경우에도 제조사는 대개 무상 수리를 권하며, 교환이나 환불은 절대 불가하다고 못을 박기 일쑤다. 게다가 수차례 수리한 이력은 그대로 기록에 남아 나중에 중고차로 팔 경우 당연히 정상 차량에 비해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현행법상 자동차 결함의 보상 기준은 동일 부위 4회 이상 중대 결함의 경우에만 교환·환불이 가능하고, 일반 결함의 경우 교환·환불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불만 사례가 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현행 자동차 결함에 따른 교환·환불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완화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의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행, 승객 안전 등과 관련한 중대 결함인 경우, 동일 하자가 3회(2회 수리 후 재발) 발생하면 교환·환불이 가능하며, 일반 결함은 동일 하자가 4회(3회 수리 후 재발) 발생하거나 수리기간이 총 30일을 초과하면 교환·환불이 가능하도록 했다.

공정위 개정안은 신차 교환 및 환불 조건을 중대 결함의 경우 기존 4회에서 3회로 조건을 완화했고, 기존에 없었던 일반 결함에 대해서도 교환과 환불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어 제조사가 무시하면 소비자가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미국에서는 이미 1975년부터 '레몬법(Lemon law)'이라 불리는 소비자보호법을 시행하여 차량구입 후 18개월 동안(18000마일 이내) 안전 관련 고장 2회 이상, 일반고장 4회 이상이 발생해 수리를 받을 경우 자동차 제작·판매자가 해당차를 교환·환불하도록 강제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외에도 EU,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에서도 레몬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심지어 자동차 제조 및 보급에 있어서 우리보다 한참 뒤졌던 중국에서조차 삼포법이라는 이름의 레몬법이 2013년 통과됐다.

20대 국회 들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지난 8월 한국형 레몬법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 권석창 의원과 이헌승 의원도 각각 '자동차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자동차업체 측은 이미 공정위 권고안에 따라 제품 결함이 인정되면 교환·환불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레몬법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과거 국회에서 이와 비슷한 한국형 레몬법이 3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된 전례가 있다.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한국형 레몬법을 발의했지만 진통을 겪은 끝에 폐기됐다. 19대 국회 들어서도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과 조원진 의원이 신차 결함에 대한 환불 등을 골자로 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법안 발의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관심도가 높은 법안을 발의만 해놓고 정작 통과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 헐리우드 액션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심재철 의원은 19대에 이어 20대에 똑같은 법안을 발의했고, 조원진 의원은 18대와 19대에 연이어 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중국에 이어 연간 약 45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다. 하지만 자동차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국내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우리보다 자동차 보급과 대중화에서 뒤진 중국이 이미 레몬법을 도입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아직도 수년째 국회에서 법안 발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현실이 한심하기만 하다.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skchoi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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