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리포트] 공기업은 신의 직장? 소개팅도 뚝 끊겼어요

윤정민.윤재영 2016. 9. 2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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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서 근무하는 2030최근 결혼 절반 이상이 사내커플기혼자도 주말부부 많아 생이별

‘신(神)의 직장’. 안정적 고용 형태에 사기업 못지않은 연봉과 복지, 서울 등 수도권에 위치한 근무 환경까지 취업준비생들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 공기업에 붙여졌던 별명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주요 공기업은 한때 ‘신도 가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까지 격상됐다. 흔히 말하는 ‘고스펙’의 취업준비생 아니면 도전 자체가 무의미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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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07년 혁신도시 사업이 추진됐다. 이때쯤이었다. 공기업을 둘러싼 선망에 미묘한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 6월 말까지 전국 10개 혁신도시·세종특별자치시에 수도권 소재 공기업 102곳이 이전했다. 여전히 많은 취업준비생의 선호도 1위 직장이긴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는 생소한 지역에서 일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주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취업준비생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지방에서 일하는 거 어떤가요?”란 문의도 자주 올라온다.

그렇다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내부 직원들의 체감온도는 어떨까. 청춘리포트는 공기업의 혁신도시 이전으로 서울에서 벗어나 멀고 낯선 곳에서 일하게 된 2030 청춘 4명을 만났다.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는 김인순씨는 회사가 수도권에서 나주 혁신도시로 옮겨 간 뒤 전보다 여유시간이 많아졌다. 김씨는 퇴근 후 캘리그래피를 배웠다. [사진 윤정민 기자]
영화관이나 쇼핑몰이 없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나주 생활 7개월째인 한국전력공사 김인순(35·여)씨는 “회사 시설은 좋아졌지만 제일 큰 문제는 가족·친구들과 떨어진다는 심리적 고립감이다. 소개팅도 아예 끊겼다. 주변에서 ‘지방에 내려갔으니 결혼은 끝이다’는 식으로 말해 상처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주용씨는 지방 혁신도시로 내려간 뒤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여유시간을 이용해 당구와 탁구를 즐기고 있다. [사진 윤재영 기자]
김천 소재 한국도로공사 신주용(35)씨 역시 “성남에서 근무할 땐 소개팅을 많이 했는데 여기선 절대 안 들어온다. 소개팅 하려면 조만간 서울로 발령 날 거라고 사기를 쳐야만 된다더라”며 씁쓸히 웃었다.
한바다씨는 지방 혁신도시로 내려간 뒤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여유시간을 이용해 당구와 탁구를 즐기고 있다. [사진 윤재영 기자]
결국 회사 안에서 사랑을 찾는 외로운 청춘이 늘었다. 한국도로공사 한바다(38)씨는 “사내 연애가 폭증했다. 최근 결혼한 회사 사람들 절반 이상이 사내 결혼을 했다. ‘어항 속 금붕어’ 같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 한재환(29)씨는 “우리 또래들은 주변 공기업 직원들과 단체 미팅을 추진하더라. 회사 이전으로 지방에 온 비슷한 처지끼리 만나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연애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서기도 한다. 신주용씨는 “봄·가을이 되면 지자체에서 싱글파티 광고를 많이 한다. 공기업 직원을 초대해 레크리에이션을 하면서 커플이 성사되면 상품도 준다. 근데 생각보다 성공률은 낮고 상품을 노린 ‘위장 커플’만 많다더라”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는 한재환씨. 회사가 수도권에서 나주 혁신도시로 옮겨 간 뒤 전보다 여유시간이 많아졌다. 한씨는 퇴근 후 주로 운동을 한다. [사진 윤정민 기자]
결혼을 해도 어려움은 있다. 4명 중 유일한 기혼자인 한바다씨는 지난해 10월 결혼한 신혼이지만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는 “보고 싶은데 5일은 떨어져 있고 이틀만 같이 사니까 힘들다. 연애하는 것 같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한테는 그냥 생이별이다. 아이를 갖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불편하다. “콜라가 그렇게 귀한 음식인 줄 몰랐다.” 김천 혁신도시에 막 내려갔던 2015년 초 콜라를 찾아 40분을 돌아다닌 일을 떠올리며 한바다씨가 한 말이다. 그는 “저녁에 콜라를 마시고 싶어 나왔는데 편의점이 하나도 없어 김천역까지 나가서 사 먹었다. 40분이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회상했다.

또 한재환씨는 “나주 혁신도시 안에는 주유소가 한 곳도 없어 기름을 넣으러 5~6㎞는 가야 한다”고 말했다.

편의시설이 속속 생기고 있지만 아직까진 불편함이 클 수밖에 없다. 그나마 편의점이나 식당 등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고, 나주와 김천 모두 혁신도시 인근에 대형 영화관이나 쇼핑몰이 내년에 생길 예정이다. 그러나 교육·의료시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신주용씨는 “학교나 병원이 부족하다. 김천 혁신도시 인근에 초등학교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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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혁신도시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생겼지만 아직 고등학교는 없다. 김인순씨는 “약국이 별로 없는 데다 문을 여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편의점도 밤이 되면 문을 닫는다. 배탈이 났는데 도저히 약국을 못 찾아 그냥 참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생스럽지만 지역 근무를 마냥 피할 순 없다. 승진을 위해선 본사 경험이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 근무하기 위한 경쟁이 입사 경쟁과 비교할 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김인순씨는 “꼭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본사 근무 경험이 앞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주용씨는 “수도권은 경쟁률을 말하기도 힘든 게 그냥 못 간다고 보면 된다. 진짜 운이 좋지 않은 이상 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지역 근무에 불편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네 사람 모두 지역에 내려온 이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고 했다. 김인순씨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강의를 적극 활용한다. 캘리그래피를 배워 예쁜 글씨를 쓰거나 인문학 특강을 듣는 식이다.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한재환씨는 학창 시절 이후 그만뒀던 운동을 다시 하고 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보내던 시간을 운동에 쏟을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그는 “그전엔 시간 없다는 핑계로 못했는데 여기 와선 원하는 만큼 운동을 많이 할 수 있게 됐다”고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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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에서는 탁구와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다. 신주용씨는 “회사가 이전하면서 직원들의 취미생활을 위해 지원을 많이 해 줬다. 사내에 테니스장·당구장·탁구장·검도장·헬스장이 다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테니스가 열풍이다. 선수급으로 성장한 사람도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한바다씨는 “대도시 문화생활 여건과 비교해 평가하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쫓기지 않아 심리적으로 안정이 많이 된다. 게다가 쓸데없이 돈 쓸 일이 없어 돈이 모인다는 장점도 있다”며 웃었다.

나주=윤정민, 김천=윤재영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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