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조사 없이 돈만 내놓는 건 고노담화 부정"

조태성 입력 2016. 9. 26. 15:48 수정 2016. 9. 2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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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 출간, "후배기자들 몸 사려 우려"
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26일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자신의 책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조태성 기자 amorati@hankookilbo.com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고노 담화의 핵심은 ‘기억의 계승’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르치고 배우고 되새겨야 합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청취 작업도 없이 10억엔을 내놨습니다. 말로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실은 돈만 내놓고 말려는 게 아니냐 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ㆍ57)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26일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일본 우익에 대한 자신의 투쟁기록을 담은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 번역ㆍ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다.

우에무라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이던 1991년 8월로 거슬러올라간다. 김학순(1924~1997)씨의 첫 위안부 공개 증언을 기사로 다뤘는데, 그 때문에 2007년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우익들의 공격 목표가 됐다. 2014년 아사히신문사가 제주에서 위안부 여성 사냥이 있었던 것처럼 묘사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에 기반한 기사를 오보였다고 철회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당시 신문사는 우에무라의 기사에 대해서는 “문제없다”고 했으나 우익들은 집요하게 그를 ‘날조 기자’로 몰아부쳤다.

협박 메일과 전화가 쏟아졌다. 신문사 퇴직 뒤 가기로 했던 대학에서는 “채용이 어렵겠다”며 이미 결정됐던 교수직을 취소했다. 심지어 딸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반드시 죽이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비난 기사를 실은 주간문춘이나 딸에게 협박한 이들을 대상으로 도쿄와 홋카이도 두 곳의 법원에다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는 가톨릭대의 제안으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협박이 한창일 때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딸의 안전이었다. 협박 수준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이 딸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서기도 했다. 또 걱정스러운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었다. 우에무라는 “내가 날조 기자라면 고통 속에 살다 어렵게 증언에 나선 위안부 할머니들은 뭐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요즘은 후배기자들 걱정이 더하다. 우에무라는 “후배들이 ‘잘못하다 우에무라 꼴 난다’며 몸을 사리게 되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면서 “실제 우익들의 계속된 비판으로 위안부 관련 보도가 줄었고, 이는 어느 정도 우익들의 공격이 성공적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요즘은 그래서 ‘언론의 자유’ 문제가 더 관심사다. 그는 “1930년대 전쟁으로 치달아갈 때의 일본이 지금처럼 반대 주장을 제거해나간 결과가 아닌가 싶어 굉장히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우에무라는 한일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해답은 ‘교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직접 현장에서 서로 만나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가 내놓는 공식적인 자료에만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불신만 커진다”면서 “자꾸 만나서 뭐가 다르고 뭐가 같은지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af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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