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파고'의 추락.. 한국 은행들은 안전한가

김신영 기자 2016. 9. 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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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A씨는 지역 본부장에게 경고장을 받았다. ‘지난달 신규 계좌 개설 실적이 목표치에 미달한다. 실적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해고도 각오하라.’ 위기에 몰린 A씨는 대출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대출 금리 인하를 미끼로 펀드 계좌를 새로 만들게 유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신용카드 가입과 예금 계좌 개설 신청서도 몰래 만들어 접수해버렸다.

미국 웰스파고 은행의 ‘유령 계좌 스캔들’에 등장하는 은행원의 전형적인 행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형 은행이 주춤한 사이 개인 고객 위주의 탄탄한 영업망으로 미국 1위 은행에 올랐던 웰스파고 은행이 6년에 걸쳐 고객 몰래 약 200만개의 깡통 계좌를 만든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미 연방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웰스파고에 과징금 1억8500만달러(약 2040억원)를 부과했다. 웰스파고는 고객 몰래 계좌를 개설한 직원 5300명(전체 직원 수 26만명)을 해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섭게 성장한 웰스파고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국도 금융감독원이 2014년 웰스파고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분석한 보고서를 만드는 등 ‘웰스파고 따라 하기’가 한때 유행했다. 그러나 웰스파고의 성공이 무리한 끼워 팔기(교차 판매)와 유령 계좌 생성이라는 추악한 관행에 기반을 두었음이 드러나면서 한국 은행들이 이제는 웰스파고가 추락한 과정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적 압박에 “유령 계좌라도 만들자”

웰스파고는 예금·대출 금리 차에 의존하는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에 머물지 않고 펀드·보험·신용카드 등 금융 상품을 떼어다 팔아 판매 수수료를 올리는 데 열을 올렸다. 비(非)이자 수익 비중을 끌어올린 이런 전략은 저금리 환경을 돌파할 은행의 순발력 있는 변신으로 여겨졌다. 웰스파고의 비이자 부문 수익은 약 50%로 한국(20~30%)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뒤엔 웰스파고가 내세웠던 ‘고객과의 유대감’이 아닌, 무리한 교차판매와 과도한 직원 압박이 자리 잡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웰스파고는 ‘고객 1명당 8개의 상품을 판다’는 목표치를 직원에게 강요했고 직원들은 목표 달성을 못 하면 해고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 나머지 유령 계좌를 대거 만들어 속였다.

무리한 영업이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B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한국 은행들도 웰스파고처럼 비이자 수익을 끌어올린다며 보험(방카슈랑스)·펀드 등의 판매에 열을 올렸고 최근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판매 경쟁을 가열차게 벌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묻지 마 ISA 가입’ 경쟁이 과열되면서 시중은행의 84%에서 불완전판매가 발생(금융감독원 조사)했고, 잔액 1만원짜리 ‘깡통 계좌’ 167만개가 만들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최근엔 하나멤버스(KEB하나은행)·신한FAN클럽(신한은행) 등 은행 멤버십 경쟁이 과열돼 ‘직원 1인당 200명’ 같은 무리한 할당량이 내려져 논란이 일었다.

◇제동 못 건 ‘거수기’ 이사회 책임론도

웰스파고 사태와 관련해 이사회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웰스파고 주주들은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지배구조를 바꾸고 평균 임기가 10년이 넘어가는 안이한 이사진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령 계좌 스캔들’이 확대되면서 웰스파고의 주가는 이달 초 50달러에서 25일 45달러로 10%가 하락했고, 연초 대비 시가총액 약 300억달러가 증발했다. 한국 은행도 ‘거수기 이사회’ 문제가 때때로 제기되지만, 경영진이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찬성’ 표를 몰아주는 관행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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