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말벌의 공습

고재학 2016. 9. 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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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가 1990년대 초 개발한 40㎜ 중구경 함포의 이름은 ‘노봉’이다. 장수말벌을 뜻하는 노봉(露蜂)에서 따왔다. 말벌의 ‘말’은 ‘큰’이라는 뜻의 접두사. 장수말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로 어른 새끼손가락만하다. 꿀벌은 한 번 침을 쏘면 죽지만, 노봉은 여러 번 쏴도 죽지 않는다. 침 길이가 6㎜나 돼 많은 양의 독액을 주입한다. 말벌, 사마귀는 물론 새와 야생동물도 공격하는 사냥 곤충이다. 성묘 때 사망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40㎜ 함포 명칭도 적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라는 뜻에서 노봉이라 지었다.

▦ 말벌은 가을로 접어들기 전인 이 맘 때가 가장 위험하다. 산란기여서 활동이 왕성하고 독성도 강한 탓이다. 말벌은 꿀벌보다 독의 양이 15배나 많다. 장수말벌의 독성은 일반말벌의 2~4배. 장수말벌에 한 번 쏘이면 꿀벌 40~50마리에게 쏘인 수준의 독이 몸에 들어오는 셈이다. 오랜 폭염과 마른 장마로 개체 수도 급증했다. 지난 달 119 구조대원들이 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한 건수는 7만2,272건으로 전년 동월(3만5,378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올해에만 벌써 10명이 말벌에 쏘여 숨졌다.

▦ 최근엔 동남아에서 건너온 아열대종 등검은말벌이 가세했다. 2003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만 해도 국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탓에 연간 10~20㎞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이 말벌은 꿀벌을 집중적으로 잡아먹는다. 세계에서 벌통 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 양봉농가에는 치명적이다. 도시 환경에도 잘 적응해 아파트 학교 오피스빌딩 등 도처에 출몰하고 있다. 도심에서 발견되는 대형 말벌의 80%를 점하며 둥지가 위협받는다고 판단되면 떼지어 사람을 공격한다.

▦ 정부가 추석연휴 기간 말벌주의보를 내렸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여왕벌 산란 전 유인트랩을 설치해 증식을 억제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말벌은 검은색과 짙은 갈색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천적인 오소리 두꺼비 등이 어둡거나 검은 빛깔인 탓이다. 벌초나 성묘 때는 밝은 색 옷을 입고 자극적인 화장품 사용을 피해야 한다. 말벌은 시속 40~50㎞의 빠른 속도로 덤비지만 달아나는 사람을 계속 추격하진 않는다. 벌집을 건드렸을 때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감싼 채 36계 줄행랑을 놓는 게 최선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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