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당신(神)'이 말하는 한국 당구, 그리고 비전

김용일 2016. 9. 9.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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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구리에서 열린 2016 구리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 참가한 3쿠션 톱랭커 네덜란드 딕 야스퍼스, 스웨덴 토브욘 브롬달, 그리스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왼쪽부터)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 톱랭커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대화 주제가 당구로 좁혀질 때만큼은 만년 모범생처럼 틈이 없었다. 진중하고 치밀했다. 최근 구리에서 막을 내린 2016 세계 3쿠션당구월드컵에 참가한 ‘당신(당구의 신)’들이 8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스포츠서울 사옥을 방문했다. 설명이 필요없는 지난해 세계3쿠션선수권 우승자이자 세계랭킹 2위인 토브욘 브롬달(54·스웨덴)과 3위 딕 야스퍼스(51·네덜란드), 8위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38·그리스)가 주인공이다.
지난 4일 대회를 마친 이들은 국내 당구계에 귀한 손님이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당구계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월드컵 이후 충북당구연맹 초청으로 청주에서 이벤트 경기를 소화했다. 이 날 본지와 인터뷰 이후에도 11일 출국 때까지 서울, 아산 지역 당구클럽을 오가며 동호인과 친선경기 및 유소년 클리닉도 열 예정이다. 일정을 안내하고 있는 당구콘텐츠기업 코줌코리아 서병진 팀장은 “한국 당구 열기가 워낙 뜨겁고, 톱 랭커의 본고장에서도 보기 드문 훌륭한 지역 클럽 시설 때문에 바쁜 일정에도 선수들이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당구 이해도와 열기 단연 최고”
세계캐롬당구연맹(UMB)이 지난 4일 발표한 9월 세계랭킹을 보면 강동궁(11위) 조재호(12위) 김행직(15위) 허정한(16위) 최성원(19위) 등 한국 선수가 5명이나 20위권에 진입했다. 1980~1990년 미국당구선수권 1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고(故) 이상천(1954~2004) 전 당구연맹 회장 이후 주춤했던 한국 당구는 최근 들어 제2의 중흥기를 맞았다. 전국 당구 동호회 회원수가 5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5만여 명이 됐고, 당구중계방송 시청률의 고공 행진과 더불어 다양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스포츠산업으로 떠올랐다. 야스퍼스는 “월드컵 내내 한국 팬들의 호응은 단연 최고였다”며 “선수가 최대치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데 좋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폴리크로노폴로스도 “한국 당구 팬들은 경기 이해도가 뛰어나다. 관람하는 표정만 봐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한국 당구는 이번 대회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성원이 세계 1위 프레데렉 쿠드롱(벨기에)을 32강에서 눌렀고, 세계 124위 조명우(매탄고)도 7위 사메 시드홈(이집트)을 제압했다. 세계랭킹 277위 이영훈도 32강에서 폴리크로노폴로스를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브롬달도 16강에서 허정한을 상대로 승부치기끝에 진땀승하며 숨을 돌렸다. “한국 당구 선수들은 저마다 고른 특성이 있다”고 말한 브롬달은 “과거엔 단순히 (큐를 잡은) 자세가 돋보였는데, 최근엔 당구에 필요로한 모든 기술적 요소를 갖췄다는 느낌이다. 거기에 집중력과 정신력도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스포츠서울 사옥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건물 지하 1층 당구클럽에서 일반인에게 3쿠션 지도를 하는 브롬달.

◇“큐 잡은 눈빛부터 다르긴 하네요. 허허”
당구 열기 속에서 시내 곳곳엔 편의점만큼이나 당구장도 많이 분포돼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언론사를 방문했다는 ‘당신’들을 인터뷰만 하고 돌려보낼 수 없었다. 사옥 방문할 때부터 각자 큐가방을 메고 온 이들을 지하 1층에 있는 당구클럽으로 안내했다. 흔쾌히 일반인을 위한 ‘원포인트레슨’을 수락했다. 소문을 듣고 수십 명의 당구팬이 몰려들었다. 20대부터 ‘당구 고수’를 자처한 60대까지 인산인해였다. 세 명의 ‘당신’이 일반인 대표로 나선 3명과 일대일로 겨루면서 노하우를 전수했다. 재수생 시절부터 40년 당구를 쳤다는 이동민(64) 씨는 3쿠션 4대 천왕 중 한 명인 브롬달과 큐를 나란히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영광이었고, 왜 세계 톱랭커인지 알게 됐다. 큐를 잡았을 때 무게감이나 눈빛부터 일반인과 매우 다르더라”고 웃었다. 레슨 이후 클럽을 찾은 팬들을 위해 사진촬영과 사인까지 해주는 등 문래동 동네 당구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서 팀장은 “사실 선수들도 한국 동호인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안다. 긴장하지 않으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고 여길 정도”라고 웃었다. 톱랭커들도 한국을 ‘당구 왕국’으로 치켜세우는 것도 유럽에서 보기 드문 클럽 시설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유럽의 당구 강국들도 주로 바(Bar)같은 술집에 당구대를 두고 운영한다. 조명도 어두운 편”이라며 “한국처럼 밝고 넓으면서 쾌적한 공간의 당구 클럽은 드문 편”이라고 했다. 자욱한 담배 연기나 칙칙한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당구장은 옛말이다. 최근 가족, 연인 단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고급스러운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당구 고수들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전 세계에 당구 문화를 보급, 확산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브롬달은 “당구로 인생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내 계획엔 늘 당구가 함께 할 것”이라며 “먼 훗날 선수 은퇴 이후에도 지도자로 세계 당구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상 | 박경호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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