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거지' 7시간, 맞아가며 번돈 계산해보니..

용인(경기)=김평화 기자 2016. 9. 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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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극한 알바]④민속촌 '거지 알바'.."관람객 즐거움 위해 흙바닥을 침대처럼"

[머니투데이 용인(경기)=김평화 기자] [편집자주] 낮 최고기온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변함없이 일하는 '알바생'들이 있습니다. 더워도 꿋꿋이 일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여름나기 현장을 달려갑니다. 머니투데이 사건팀 기자들이 비록 일일체험이지만 독자 여러분께 이색 아르바이트 현장을 생생히 전하며 공감의 폭을 넓혀가겠습니다.

[[폭염 속 극한 알바]④민속촌 '거지 알바'…"관람객 즐거움 위해 흙바닥을 침대처럼"]

지난 26일 오전 10시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 분장실. 민속촌 캐릭터 아르바이트(알바)들이 각자 맡은 역할로 분장에 열중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와 민속리(시골마을) 배경에 맞춘 복장만 수십벌. 짚신 등 갖가지 소품도 다양했다. 그중 거지 의상이 가장 간단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빈티지' 스타일 상하의를 골라입었다. 바지가 흘러내려 검은색 띠로 허리를 감쌌다.

'꽃거지'로 유명세까지 탄 선배 거지 김정원씨(28)가 이날 '인턴거지'로 활동할 기자를 맡아줬다. 일단 군용 위장크림을 얼굴에 덕지덕지 발랐다. 너무 가리기보다 적당히 지저분해 보이는 게 비결이다.

다음은 머리 손질. 헤어제품을 활용해 최대한 헝클어뜨렸다. 거지 캐릭터를 맡은 직원들은 두 세 달에 한 번씩만 미용실을 찾는다. 다듬더라도 길이만 줄일 뿐 깔끔하게 자르지 않는다. 거지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한국민속촌 '거지' 캐릭터 알바 체험을 위해 분장을 하고 있는 기자/사진=한국민속촌 촬영협조

분장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현장에 나섰다. 선배 거지들은 빗물이 고인 흙바닥을 뒹굴며 몸을 치장했다. 가장 먼저 배운 요령은 인사. 마주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인사하며 관심을 유도했다. 꽃거지는 "나으리"와 "마님"을 외치며 관람객들을 불렀다. 인턴거지에 관심을 보인 첫 '양반님'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6명이 둘러싸 "진짜 거지 맞냐", "엄마는 어디 있냐", "집이 어디냐" 등을 물었다. 바가지에 있는 돈을 빼앗으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을 달래고 민속촌 인기장소인 관아로 향했다. '나쁜 사또'는 신고 인사가 늦었다며 '바보 포졸'을 시켜 다짜고짜 곤장을 쳤다. 인턴거지라고 봐주는 건 없었다. 엉덩이에 생긴 열기가 1시간 정도 남는 강도였다. 관람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지 말라는 경고도 들었다. 옆에서 웃으며 지켜보던 한 관광객은 동정심에 1000원을 적선했다.

관아에서 나와 대문 앞에 눌러앉았다. 근처에서 열린 승마체험 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조선시대 캐릭터들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곤니찌와', '니하오' 등 아는 외국어를 총동원했다. 캐릭터 알바에게 순발력과 능청스러움은 필수 조건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셀카'를 찍자는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다.

바가지에도 한 푼 두 푼 돈이 쌓였다. 점심시간인 낮 12시30분까지 8320원을 모았다.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음료수와 과자도 받았다. 돈을 준 관람객들에게는 "멋있다", "예쁘다" 등 '립서비스'로 화답했다. 어린아이가 500원을 적선하면 용돈이라며 100원은 거슬러주는 여유도 생겼다. 흙바닥이 침대처럼 느껴졌다. 동냥한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국민속촌 '거지' 캐릭터 알바 체험 도중 어린이 관람객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사진=한국민속촌 촬영협조

오후에는 햇살이 제법 뜨거웠다. 민속촌 캐릭터 알바는 소위 '꿀알바'(편안한 아르바이트)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매일 6~7시간 동안 꼬박 야외에서 더위와 추위를 온 몸으로 맞서야 한다. '이장 아들' 캐릭터를 맡고 있는 고평화씨(27)는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관객들도 캐릭터들도 모두 힘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사또와 포졸 등 조선시대 캐릭터들은 열이 빠져나가지 않는 의상 탓에 땀띠로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캐릭터 활동 구역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이들은 사상 최악 폭염을 온몸으로 견뎠다.

오후에는 더 바빠졌다. '파수꾼 선발대회'와 '민속리 장학퀴즈' 등 캐릭터들이 관람객과 함께하는 이벤트들이 있어서다. 거지들은 감초 역할을 맡는다.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으며 관객들을 웃긴다. 인턴거지는 관아에서 열린 파수꾼 선발대회에서 사또 의자에 앉았다가 또다시 곤장을 맞았다.

오후 5시까지 1만2820원과 중국돈 15위안(한화 약 3000원)을 벌었다. 음료수 하나, 사탕 2개, 껌 1통, 일본 과자 한 조각도 받았다. 꽃거지 김씨는 "관람객들이 이렇게 즐거워하고 아껴주는데 어떻게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매일매일 다른 관람객들을 만나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하루종일 여고생 팬들의 촬영세례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2014년 4월 알바로 시작해 지난해 7월 나쁜 사또 김판씨(32) 등과 함께 민속촌 정규직원으로 채용됐다.

민속촌은 2013년부터 캐릭터 알바를 채용해 관람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공개 오디션으로 각종 캐릭터를 뽑고 있다. 올해 4월 오디션에서 3기를 모집했다. 채용 경쟁률은 21대 1에 달했다. 급여는 최저임금(올해 기준 시급 6030원)보다 많은 수준이다.

현재 정직원 3명을 포함해 캐릭터 20명이 활동 중이다. 대부분이 연기 지망생이다. 민속촌 관계자는 "즐겁게 일하며 꿈을 키우고 실제로 유명세를 얻은 직원도 있다"며 "이들 덕분에 관객들도 민속촌을 더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민속촌 '거지' 캐릭터 알바 체험. 거지 캐릭터를 맡은 알바생들이 길바닥에 누워 있다/사진=한국민속촌 촬영협조

용인(경기)=김평화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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