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나를 얕봐?.. 김정은의 '단두대 정치'
통일부가 31일 확인한 북한 김용진 내각부총리의 처형 소식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집권과 동시에 시작된 '단두대 통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김정은이 2011년 12월 집권 후 4년 8개월간 잔인하게 처형한 당·정·군 간부만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정은의 잔인한 숙청 이유는 대부분 '나를 무시해서'였다"며 "기대에 못 미치는 충성심, 일부 간부의 거만한 태도 등이 28세에 집권한 김정은의 '나이 콤플렉스'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북한 권부 내 숙청의 '피 냄새'는 김정은 집권 직후부터 물씬 풍겼다. 김정은은 2012년 초 "장군님(김정일) 애도 기간에 허튼짓을 한 놈들을 모두 제끼라(없애라)"는 지시를 내려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 군 고위 간부 10여명을 처형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처형 명분으로 김정일 상중(喪中)에 술을 마시는 등 '일탈 행위'를 들었지만, 실제 처형 이유는 '어리다고 나를 얕봤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간부들의 '자세 불량'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2013년 12월 처형된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죄목 중엔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가 있었고, 작년 4월 처형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회의 때 졸았다가 꼬투리를 잡혔다. 정보 소식통은 "김정은은 '불손한 태도'를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며 "당 조직지도부 등 사찰 기관들이 김정은의 나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보고를 올리면 김정은은 곧바로 '반당·반혁명분자' 등의 낙인을 찍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2인자' '실세'의 출현을 극도로 경계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위해 군(軍)에서 직접 발탁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을 2012년 7월 전격 숙청한 데 이어 김정은 정권의 최대 후견인으로 불리던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2013년 12월 고사포로 처형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두 사람의 숙청은 당 조직지도부가 군부와 당 행정부를 상대로 권력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조직지도부에서 '리영호·장성택이 김정은을 무시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생산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숙청을 비켜간 심복들에게도 끊임없이 충성심을 시험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 후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은 작년 11월부터 석 달간 '혁명화 처벌'을 받았다. 작년 12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뒤를 이어 당 통일전선부장에 오른 김영철도 최근까지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를 겪었다고 정부가 밝혔다. 통일부 전직 관리는 "김정은은 천안함 폭침 등 김영철의 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가 거만해지는 것은 참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군 장성의 계급을 수시로 강등하거나 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 등 핵심 보직 인사를 걸핏하면 단행하는 것도 특정 인사에게 권력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같은 '공포정치'로 김정은 권력은 매우 공고해 보인다. 하지만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선 복지부동 현상이 만연해 있고, 불만이 자꾸 커지면서 체제 내상(內傷)이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 주변 고위 간부들의 직언(直言)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김정은의 충동적·즉흥적 지시가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그대로 이행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 70주년 행사 참석 의사를 번복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허용했다가 바로 뒤집었으며 ▲모란봉 악단의 방중 공연을 행사 당일 취소시켰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뒤통수 외교의 달인'이란 말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간부들은 김정은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직언은커녕 받아 적기에 급급하다"며 "중요한 정책들이 김정은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핵과 미사일로 중무장한 북한이 경험 부족 지도자의 기분에 따라 휘청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북한 외교관의 연쇄 탈북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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