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 못하는 계절관세..설 곳 잃은 '국산 포도'

입력 2016. 8. 3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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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계절관세·뒷걸음 R&D.. 포도농가 '벼랑'으로 / 수입은 갈수록 늘고 국내 농가는 고사.. 포도산업 현주소
포도의 ‘계절관세’제도가 허점을 드러내면서 국내 포도농가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관세가 낮은 시기에 외국산 포도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국내 포도농가들이 농사를 접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국내산보다는 외국산 포도를 좋아하면서 포도 수입액이 최근 11년 새 13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기만 하다. 농촌진흥청의 포도연구센터의 연구인력은 문을 연 지 10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고, 예산은 연간 4억∼8억원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육성한 포도 품종의 재배면적은 고작 2%대로 미미한 수준이다.

◆계절관세 있으나 마나

3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산 포도의 수확시기인 5∼10월에는 외국산 포도에 45%의 계절관세가 붙는다. 나머지 기간(11∼4월)에 부과되던 45%의 관세는 칠레산 포도의 경우 2014년부터, 페루산은 2015년부터 사라졌다. 미국산과 호주산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즉시 철폐됐다.

이 계절관세 때문에 외국산 포도는 겨울철에 수입이 집중돼 국내 포도산업이 일정 부분 보호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수입상들이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 마지막 달인 4월에 외국산 포도를 대량 수입해 창고에 쌓아놨다가 5∼6월에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포도 수입량 6만6193t 중에서 44.3%인 2만9340t이 4월에 수입됐다. 올해도 1∼7월 수입된 포도 3만8276t 중 60.0%인 2만2980t이 4월에 들여온 것이다.

올해 수입포도 상품 도매가격(㎏)은 평균 4033원이다. 반면에 국산 거봉 상품은 7월 평균 5944원으로 수입 포도보다 47%(1911원)나 비쌌다. 국내산 캠벨얼리 상품도 평균가격이 5036원으로 외국산 포도 대비 25%(1003원) 높았다. 국산포도가 가격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국산 포도 설 곳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의 외국산 포도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은 씨 없는 흑적색 포도(51%)를 가장 많이 찾았다. 씨 없는 청포도(33%)와 씨 있는 적색포도(16%)가 뒤를 이었다. 소비자들은 외국산의 향(머스캣향)과 아삭아삭한 식감, 알맹이가 큰 형태를 좋아했다. 외국산 포도와 국산 포도 선호도는 7대 3으로 조사됐다. 수입 품종의 70∼80%가 칠레산이다. 씨 있는 적색 포도인 캠벨얼리가 주를 이루는 국내 포도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외국산 포도가 가격과 선호도면에서 앞서다 보니 수입량은 급증하고 있다. 칠레와 FTA가 체결된 2004년 9900t이던 포도 수입량은 지난해 6만6200t으로 6.7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포도 수입액은 1580만달러에서 2억10만달러로 12.7배로 증가했다. 국내산 포도는 지난해 813t, 328만4000달러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

국산 포도가 외국산에서 밀리면서 국내 포도 농가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노지포도 농가의 소득률(소득÷조수입×100)이 2004년 75.5%였지만 2014년 66.6%로 하락했다. 시설포도 소득률도 같은 기간 55.0%에서 53.0%로 내려갔다. 소득률 하락은 폐원으로 이어져 포도 재배면적이 2004년 2만2900㏊에서 지난해 1만5400㏊로 약 33% 축소됐다. 이 기간 생산량과 생산액도 36만7000t, 7852억원에서 27만1000t, 4629억원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R&D 홀대…인원 감축, 예산 쥐꼬리

정부는 수입 포도에 대응해 국내 포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2005년 농진청에 포도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소비자 수요에 맞는 품종 육성·보급, 포도농가의 체질 강화, 포도 수출 지원 연구, 양조용 포도 활용 6차산업 활성화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FTA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춘 수요자 요구형 품종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품질 유럽형 신품종 보급확대가 필요하지만 농가에서는 기존 캠벨얼리 재배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품종을 고집한다. 이렇다 보니 센터가 지난해까지 16개 품종을 개발했지만 전체 재배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370㏊)에 불과하다.

2006∼2009년 두누리, 탄금추, 홍아람, 나르샤 등 상당수 품종이 각각 0.1㏊가량 보급됐다. 다만 2013년 개발한 ‘홍주씨들리스’는 껍질째 먹을 수 있는 포도알이 다소 큰 ‘중대립’의 씨 없는 포도여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센터는 보고 내년부터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센터는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씨 없는 청포도인 ‘샤이니스타’(2015년 개발)도 소비자 선호가 높아 2018년부터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외국산 포도의 시장 공략으로 국내 포도농가가 위기를 맞고 있지만 포도연구센터의 인력과 예산은 반대로 가고 있다. 센터에는 개원 당시 연구관과 연구사 등 총 12명이 배정됐으나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연구인력이 조정돼 현재는 5명뿐이다. 예산 지원도 미약하기는 마찬가지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포도 연구개발(R&D) 예산은 총 6054억원으로 연평균 6억원가량이다. 2007년과 2008년 8억∼9억원대였지만 올해는 5억7700만원이다.

◆수요자·현장 중심 품종육성 시스템 구축

포도연구센터는 수요자·현장 중심의 품종 육성과 보급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원하는 우량 품종과 재배법을 패키지로 농가에 보급한다. 신품종 적정 생산시스템 개발에도 나선다. 현재 국내는 캠벨얼리 위주의 재배시스템이 90%로 고품질화·품종다양화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센터는 포도의 착색과 무핵(씨 없음), 과립비대, 병해충, 향기 등 주요 생리 메커니즘과 대사물질을 연구한다. 유럽종 포도 고품질 재배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고품질 안정생산 기술도 만든다.

최근 부드러운 술, 여성 취향의 주류 소비 증가 패턴에 따라 포도주의 수입이 늘고 있다. 포도주 수입량은 2006년 2만2000t, 8900만달러에서 지난해 3만6000t, 1억8900만달러로 확대했다. 그러나 국내 포도주 생산기반은 취약하다. 국내산 포도의 주요 품종인 캠벨얼리와 거봉은 주질 고급화에 한계가 있다. 양조용 품종에 맞는 시설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가공산업이 활성화지 못하고 있다. 포도재배 농가의 농가형 포도주 양조장(와이너리) 설립에 필요한 표준양조시스템이 없고 관련 연구도 전혀 없다.

이에 센터는 국내 양조용 포도 품종의 재배에서 양조까지 모든 과정을 표준화하고 사용기자재를 규격화해 농가형 와이너리 진입장벽을 제거하기로 했다. 아울러 수출용 포도 품종을 육성하고 수출유통환경 최적화 연구를 수행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출할 때 유통·저장에 유리한 포도품종을 개발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당도가 높으면서 산도가 낮은 포도, 껍질이 얇고 씨가 없으며 알이 굵은 포도를 육성·생산해야 한다”면서 “또한 1인가구·맞벌이 가구 증가에 따른 소포장 유통체계 확립, 주산지별 유통시스템 통합,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한 실수요용 상품 개발, R&D·소비촉진·수급조절 등을 담당한 자조금 조직 육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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