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국산 맥주.. 규제 때문에 밍밍?

김은정 기자 2016. 8.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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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 창당 70돌 기념행사에서 맥주광(狂)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한국 맥주와 북한산 맥주를 비교 시음하더니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맥주는 정말 맛없다!”

한국 맥주가 국제적 모욕을 당한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한국 특파원은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비판한 뒤 이태원에 직접 수제 맥줏집을 차리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산 맥주 맛 끌어올리기에 나섰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 ‘맥주산업에 대한 시장분석’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를 30일 공개했는데, 용역팀은 맥주 제조시설 규제, 중소 맥주업체 유통판매망 제한, 종량제가 아닌 종가제인 세금구조, 신고제로 돼 있지만 사실상 ‘승인제’인 가격 결정 구조 등을 해결 과제로 꼽았다.

국산 맥주 업체들은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동의하면서도, 과연 제도가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다. 규제 핵심 권한을 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맥주 밍밍한 건 규제 탓”

공정위가 이날 세종시 정부컨벤션센터에서 발표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맥주 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규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있다.

먼저 제조시설 규제. 정부는 일반 맥주(대기업, 중소기업)와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를 발급하기 위한 요건으로 소규모 맥주 사업자의 경우 ‘담금·저장조 5KL 이상 75KL 미만’ 같은 시설기준을 세워두고 있는데, 이것이 생산량을 과도하게 제한해 소규모 업체일수록 원가를 인하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맥주 제조 선진국인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외국에는 시설 기준이 없다.

가격도 문제다. 현재 맥주 가격은 업체들의 신고로 정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사실상 국세청 승인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싼 재료로 고품질 맥주를 만들고 싶어도, 가격변경신고서 제출 이전에 국세청에 미리 가격 인상 계획을 알리고 국세청이 기재부와 협의한 뒤 인상 여부가 결정 나기 때문에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맥주 가격을 통제하는 경우는 없다”며 사업자들이 시장 상황에 맞게 제품 가격을 정하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적었다.

또 대형마트 같은 소매업자들이 맥주를 도매 구입 가격 이하로 파는 것이 금지돼 있는데, 이 규정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론 싸게 들여와도 소매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수입 맥주는 할인 판매 여력이 있지만, 카스·하이트 등 국산 맥주는 수입 맥주보다도 도매가격이 높아 할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산 맥주를 도매가 이하로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진다는 게 용역팀의 지적이다.

판매망도 막혀 있다. 소규모 맥주 사업자의 경우 수퍼나 편의점, 대형마트 같은 소매점에서 맥주를 팔 수 없는 데다, ‘종합주류도매상’을 통해서 유통하게 정해놓아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주로 대형 업체들의 유통을 담당하는 종합주류도매상은 냉장차량을 갖추고 있지 않은데, 비(非)살균 크래프트 맥주를 주로 만드는 소규모 업체들로선 냉장 유통망이 필요해서다.

◇핵심은 세금개편… 기재부·국세청 난색

공정위와 용역팀이 제안하는 핵심 과제는 세금 부과 방식 변화다. 현재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72%의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부과 방식을 알코올 도수 함량에 따라 부과하는 종량세 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외 대부분 국가에선 독주 소비를 제한하기 위해 도수가 높을수록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있다.

용역팀 관계자는 “중소 업체들은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출고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어 종가세가 불리하고, 대형 업체들에도 프리미엄 맥주 출시를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외국처럼 장기적으로 종량세를 도입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할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술 세금체계 개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종량세로 변경하면 맥주보다 알코올 함량이 높은 ‘국민 술’인 소주에 붙는 세금이 높아지는 데다, 술 소비 변화에 따라 걷히는 세금이 들쭉날쭉해져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매업자들에게 도매가격 이하의 할인 판매를 허용해주는 것도 원칙상 반대다. 할인 판매에 나설 수 있는 건 사실상 구매력이 있는 대형마트뿐이라, 동네 상권이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주류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난 역시 걱정거리다.

국내 대형 맥주회사 측은 “공정위가 여러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제안 수준으로 보인다. 결국 칼자루 쥔 부처가 움직여야 시장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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