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단독] 박 대통령에 찍힌 공무원을 낙하산 인사로?

권종오 기자 입력 2016. 8. 29. 08:05 수정 2016. 8. 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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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지목된 것으로 알려진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최근 자진 사표를 내고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에 선임된 것으로 S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의 상식과 정도에서 벗어난 문체부의 인사 행태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스포츠안전재단은 국민생활체육회(지난 3월 대한체육회와 통합)가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전 국민생활체육회장이자 현 통합 대한체육회장인 강영중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스포츠안전재단의 설립 목적은 스포츠 활동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 각종 스포츠 관련 사고에 대한 공제사업 및 위로-구호 사업을 통해 안전한 스포츠 환경조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은 형식적으로는 이사회에서 선임합니다. 하지만 국민체육진흥기금, 즉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게 국내 체육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의견입니다. 쉽게 말해 문체부가 사실상 사무총장을 낙점한다는 얘기입니다. 

직전 사무총장도 문체부 고위 관료 출신이고 현 이사진에도 문체부 현직 체육정책관이 포함돼 있습니다. 국내에서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2011년부터 2014년 2월까지 등기 이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스포츠안전재단은 정치인과 관료가 모인 복마전”이라며 관련 사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지난 달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에 선임된 노태강 씨는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찍혀 문체부 체육국장에서 한직으로 좌천됐습니다. 일부에서는 노태강 국장이 승마 선수인 정윤회 씨 딸 사건을 정권 입맛에 맞지 않게 조사했다가 ‘미운 털’이 박혀 좌천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이 체육단체 운영 비리와 개선 방안에 대해 보고했지만 당시 보고서의 내용이 부실했고 체육계 비리 척결에도 진척이 없어 적폐 해소 과정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며 "이후 박 대통령은 민정수석실로부터 그 원인이 담당 간부 공무원들의 소극적이고 안일한 대처에 따른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2014년 12월8일 취재파일 ‘청와대 해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 참조)  

노태강 체육국장의 석연찮은 경질이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되자 문체부는 “본인의 업무 능력이 떨어져 전보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청와대의 해명을 뒷받침하는 주장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에 의해 체육국장에서 물러난 노태강 씨는 3년 동안 한직을 떠돌다 2개월 전 자진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정년퇴직을 4년이나 남긴 시점에서 30년 이상 몸담은 공직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사표내기가 무섭게 곧바로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에 선임됐습니다. 문체부가 사실상 선임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년 전에 청와대와 문체부가 체육 비리 척결에 소극적이고 업무 능력이 떨어져 노태강 씨를 체육국장에서 경질했다고 분명히 밝힌 점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엄청난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 스포츠안전재단의 실무 총책인 사무총장 자리에 그들 말대로라면 ‘함량미달의 인물’을 앉혔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 출신의 고위 관료 A씨는 이렇게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노태강 씨의 실력은 문체부 내에서 선두였다. 그런데 정윤회 씨 딸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정무적인 감각을 갖고 수사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어야 했는데 강직한 성품대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한마디로 억울하게 좌천된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대통령에 의해 찍힌 사람이 이 정권 아래에서 어떻게 승진을 하고 요직에 앉겠는가? 시간은 점점 가고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노태강 전 국장이 후배들을 위해 용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문체부도 그의 억울한 사정을 고려해 새 일자리를 마련해준 것으로 보인다.”    

만약 A씨의 말이 맞는다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이 무서워 아무 잘못이 없는 1명의 고위 공무원을 3년 동안 한직에 머물게 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사표를 내자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주요 기관의 고위직을 큰 선심 쓰듯 나눠줬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스포츠안전재단 직전 사무총장은 B씨로 그 역시 문체부 고위관료 출신입니다. 사무총장의 임기가 4년이지만 노태강 씨의 취임으로 그는 임기의 절반만 채우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B씨는 현재 스포츠안전재단 이사로 등재돼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낙하산 인사’ 철폐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이른바 ‘관피아’ 척결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의 인사 행태를 보면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노태강 전 체육국장의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 선임에 대해 문체부는 특유의 ‘나몰라’식 태도를 버리고 이번만큼은 자성하기를 촉구합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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