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콧대 꺾인 파리.. "배달 앱 끼고살아요"
지난 25일(현지 시각) 낮 12시 프랑스 파리 시청 인근의 한 옷가게. 민트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한 젊은 남성이 옷과 같은 색 배달 가방을 들고 가게로 들어섰다. 가방 안에는 가게 직원 에이디(25)씨가 주문한 베트남식 쌀국수와 에그롤 샐러드, 생과일주스 등이 들어 있었다. 이 남성은 배달 대행업체 '딜리버루(Deliveroo)' 직원으로 10분 거리의 베트남 음식점에서 자전거로 배달을 왔다.
이날 파리 시청 인근의 상점·사무실 앞에선 점심시간 내내 분홍색과 민트색, 검은색 가방을 뒤에 실은 자전거 수십 대를 볼 수 있었다. 복잡한 파리 도로를 피해 음식을 나르는 배달 자전거다. 배달 음식엔 피자·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뿐 아니라 레바논식 꼬치, 프랑스 가정식 코스, 중국 음식 등도 있다.
배달 음식은 음식으로 치지도 않던 프랑스 사람들이 요즘 스마트폰 배달 앱을 끼고 살고 있다. 영국계 딜리버루, 독일계 푸도라(Foodora), 프랑스업체 알로레스토(Alloresto)와 레스토―인(Resto-In) 등이 배달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우버의 배달 서비스인 우버이츠(UberEATS)도 올해 프랑스 영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등에 따르면 업계에서는 프랑스 배달 음식 시장 규모를 2015년 기준 2억5000만유로(약 3149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2018년에는 세 배 수준으로 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프랑스는 그동안 배달 음식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피자 가게나 초밥집이 배달을 하기는 했지만, 레스토랑에 비해 값이 싸지 않고 음식 질도 낮아 배달 음식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식당에서도 인건비 부담 등으로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았다.
음식 배달 사업이 본격화된 건 2년 전부터였다. 업체들은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중시하는 프랑스 문화를 감안해 식당들과 계약을 하고 배달을 대행하는 방식으로 틈새를 뚫었다. 소비자 입장에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식당에 주문하기 때문에 음식의 질을 신뢰할 수 있다. 40대 남성인 회사원 제니우씨는 "회사 근처 어지간한 레스토랑은 다 배달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어서 원하는 음식 대부분을 책상에서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3~5개 메뉴로 이뤄진 코스 요리를 골라 시켜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비세르도(46)씨는 "그동안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외식하는 일이 간단치 않았는데, 업체를 통해 샐러드와 스테이크, 레몬 파이까지 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젊은 층도 배달 음식을 반기고 있다. 대학원생 필립(32)씨는 "오래된 식당에서는 주인들이 '디저트는 왜 안 먹느냐'고 눈치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앱을 이용하면 마음에 드는 단품 요리만 주문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잇단 테러도 배달 문화 확산의 한 요인이 됐다. 사람 많은 곳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집으로 배달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식품 컨설팅업체 대표 베르나르 부트불은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파리 테러 직후인 작년 12월에는 배달 대행업체에 주문이 몰려 배달에 몇 시간씩 걸린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배달 대행업체들이 지나치게 많은 수수료를 떼어가 레스토랑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수료는 고객이 주문한 음식 가격의 25~30% 정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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