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펙' 사는 금수저

입력 2016. 8. 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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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대입·구직 에세이용 국외 봉사활동 유행… 돈 주고 사는 ‘경험’ 의미 있을까

청소년·대학생 등을 상대로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법인의 광고. 프로젝트 어브로드 홈페이지(www.projects-abroad.com) 갈무리

대학생은 바쁘다. 공부뿐 아니라 용돈벌이용 아르바이트도 한다. 최근엔 봉사활동도 중요한 일이 됐다. 중요한 ‘취직 스펙’이 되고 학교에서 학점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미국도 비슷하다. 대학 입시에는 학업 성적 외에 봉사활동이 영향을 준다.

최근 유명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미국 중·고교생 사이에 방학기간 국외 봉사활동이 유행이다. 적잖은 비용이 드는 만큼, 부유층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8월13일 ‘하버드 입학하려면 아이티부터 가라?’는 칼럼에서 “부모의 재력에 따라 선택받은 학생만 누리게 되는 경험이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외 봉사활동이 자기소개서에 쓴 것처럼 인생을 뒤바꾼 값진 경험이었는지에도 물음표를 달았다.

미시간주 플린트의 한 사립고교에 다니는 딜런 에르난데즈는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이 방학 끝 무렵, 국외 봉사활동 사진으로 도배되는 게 불편하다고 고백한다. “몇몇 친구는 낭만만 잔뜩 품은 채, 정작 가난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멀리 갈 필요 있을까요? 저는 지역 YMCA를 통해 동네 어린이들을 만나는데, 먼저 말만 걸어주어도 꼬마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해요. 여권 없이도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스스로 배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국외 봉사활동 학생들이 확실하게 얻는 한 가지가 있다. 대학 원서 가운데 자기소개서에 쓸 봉사활동 경험이다. 포장하기 딱 좋은 소재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적잖은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이런 일이 중·고교생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진솔하지 않은 자기소개서는 티가 난다. 앙헬 페레즈 트리니티칼리지 입학처장은 “입학처 사람들이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열대우림을 지키기 위해 코스타리카로 떠난 선교여행’이에요. 선교를 목적으로 와서 열대우림을 지키겠다니….”

국외 여행이란 소재보다 뻔한 교훈을 끌어다놓은 자기소개서는 오히려 위험하다. 학생 본인이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국외 봉사활동 유행 가운데서도 정도가 지나친 경우가 있다. 돈 많은 부모들 가운데 자식의 경험을 돈으로 사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아동심리학자 리처드 바이스보드가 현행 대입제도를 분석하면서 인터뷰한 학부모 가운데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있는 고아원을 아예 사버린 이가 있었다. 고아원을 인수한 이유는 단 하나. 자식에게 자기소개서나 면접시험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같은 이유로 에이즈를 치료하는 가난한 나라의 병원을 인수한 부모도 있었다. 특정한 경험 자체가 ‘특권’이 된 것이다.

부모 대신 학생이 직접 나선 사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학생 스스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는 경우다. ‘리더십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부작용이다. 페레즈 입학처장은 자신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한 편의 내용을 귀띔했다.

“이 학생은 여름에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르바이트로 직접 돈을 벌어보기 전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더군요.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아보니 그제야 알겠더래요. 사람들도 자기를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 같았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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