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내 딸 얼굴 3년 만에 보다니"..백내장 수술 케냐 할머니의 웃음
지난 16일 케냐 마차코스 카운티의 도립병원 안과병동. 오른쪽 눈에서 안대를 떼낸 물리미 카바이타(70·여)가 의료진 옆에 서 있던 딸 프리실라(55)를 불렀다. 카바이타는 딸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오늘 하루 종일 딸의 얼굴을 보겠다. 이제 딸과 함께 빵을 만들어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카바이타는 3년 전 백내장이 악화돼 양쪽 시력을 잃었다. 전날 한국 안과의사들로부터 백내장 수술을 받기 전까지 제대로 치료받은 적이 없었다. 프리실라는 “농사로 겨우 입에 풀칠하는 형편이라 치료는 엄두도 못 냈다. 어머니의 눈을 되찾게 돼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올해 비전케어는 아프리카 동남부 9개국를 돌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눈을 떠요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발해 스와질란드·모잠비크·짐바브웨·잠비아·말라위·탄자니아·케냐를 거쳐 우간다까지 육로로 8000㎞를 종단하며 의료 봉사를 펼쳤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8일까지 총 56일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김 원장과 권구현(44) 비전케어 이사가 오토바이를 몰고 간호사·검안사와 행정지원 봉사자들은 차를 이용해 뒤를 따랐다. 한국인 안과의사와 간호사가 2~3명씩 국가별로 교대하면서 9개국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해외 원정 봉사로 400명이 넘는 현지인이 시력을 되찾았다.
8000㎞에 이르는 원정은 험난했다. 봉사단은 오전 6시에 일어나 의료 장비를 챙기고 저녁까지 진료와 수술을 이어갔다. 아프리카는 수도 시설이 없는 곳이 많다. 도시도 지하수를 끌어 쓰는 건물이 흔하다. 예고 없이 물·전기가 끊겨 제대로 씻지 못하는 날도 잦았다. 봉사자로 활동한 김 원장의 딸 은유(20)씨는 “짐바브웨의 숙소는 난방도 안 됐다. 워낙 고지대인 데다 겨울철이라 밤에는 추워 수술 가운을 덮고 잤다”고 전했다.
이들 봉사단의 활약은 스와질란드·탄자니아 등의 유력 일간지 1면에 소개됐다. 김 원장은 “국제 원조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의료 환경 개선과 현지 의료진 훈련을 통해 자활력을 갖출 수 있게 체계적인 협력을 계속하려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이어 아프리카 동북부와 서북부, 서부 지역의 여러 나라를 도는 장기 해외 원정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S BOX] 아프리카 실명 환자 590만명…인구 5000만 탄자니아 안과 의사 50명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시각 장애인 인구를 약 2억85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 중 90%가 저개발국가에 집중돼 있다. 대부분이 아프리카 국가다. 아프리카는 인구 100만 명당 안과 의사가 한 명에 불과해 전 세계에서 실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아프리카의 실명 환자는 59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비슷한 인구 5000만여 명의 탄자니아는 안과 의사가 50명밖에 안 된다. 케냐 마차코스 카운티의 마차코스 도립병원장인 헬렌 주키는 “케냐는 47개 카운티(county) 중 22개 카운티에 안과 의사가 아예 없다. 그나마 있는 안과 의사도 대부분 수도 나이로비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에선 도시만 벗어나면 시멘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허름한 집과 흙으로 지은 집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 밖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농으로 살며 하루 끼니를 걱정한다. 눈에 이상이 생겨도 평생 안과를 못 가고 그대로 실명한다.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은 간단한 수술만으로 벗어날 수 있다. 헬렌은 “그동안 에이즈·말라리아에 대한 국제 원조는 활발했지만 상대적으로 안 질환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안과 의사 양성과 의료 장비 지원 등 안 질환 관련 국제 원조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마차코스(케냐)=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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