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에서 의사가 삭발한 까닭

김연희 기자 2016. 8. 2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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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54) 성주효요양병원 원장은 지난 8월6~8일 일본 교토를 다녀왔다. 사드 레이더가 들어선 교토 부 교탄고 시 교가미사키 기지를 직접 둘러보았다. 이 기지에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인 X밴드 레이더가 있다. 노 원장은 “여기(일본)가 성주의 미래가 되면 어떡하지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노 원장은 의사이자 언론사 대표이다. 대구·경북 지역 대안언론 <뉴스민>의 발행인을 맡고 있다. 일본 방문도 <뉴스민> 기자와 함께했다. <뉴스민>은 2012년 노동절에 창간했다. 천용길 현 편집장을 비롯해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 셋이 뭉쳤다. 보수 색이 짙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진보 매체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으며 대구 지역 진보 활동에 몸담고 있던 노 원장이 힘을 보탰다. <뉴스민>은 성주군청 앞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를 속보로 전하며 지역 매체로서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노태맹 원장은 '성주가 사드를 막아낸다면 민주주의 역사에서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원장이 일하는 성주효요양병원은 사드 부대 예정지인 성산에서 북동쪽으로 3.2㎞가량 떨어져 있다. 성주에서 제일 큰 의료기관인 이 병원에는 고령 환자 180명 정도가 입원해 있다. 4층 병원 건물 정문을 나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성산이 보인다. 3.2㎞라는 거리가 무색할 만큼 한눈에 들어온다. 노 원장은 “만약 사드가 배치되고 위기 상황에서 방어용 미사일이 발사되면 우리 병원에서 그게 다 보이겠구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노 원장은 7월29일 성주 지역 의료인 2명과 함께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책 속에 있는 민주주의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우리 성주 군민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싸움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성주 민심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불씨를 댕겼다면, 투쟁을 이어가게 하는 동력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드가 들어오면 준전시 상황에서 제1차 타격 목표가 된다는 걸, 이제 성주 주민들도 다 압니다. 이제는 전자파보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해요.” 물론 전자파의 유해성도 괴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노 원장은 “전자파에 노출되면 암이나 백혈병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의학 논문들이 있습니다.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를 정부가 확실하게 입증해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보상으로 지하철? 반길 성주 사람 없다”

일본 사드 기지까지 직접 다녀온 노 원장은 “레이더가 가동을 시작한 지 1년7개월이 지난 지금, 사드 레이더 기지는 일상적인 풍경이 됐더라”고 소감을 밝혔다. 교탄고 시에서 사드 레이더 반대운동을 하는 단체와 모임을 했는데 회원 10여 명이 나왔다. 일본 교탄고 시 주민들은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그는 “성주가 자기들의 희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이 강력하고 활발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노 원장도 성주 주민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의 결과를 낙관한다. 싸움의 주축이 아이를 둔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주 결사적으로 나서고 있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게 아닙니다. 보상으로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걸 선물로 여길 성주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성주가 사드를 막아낸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정말 좋은 모델이 될 겁니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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