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정우 "재난영화는 짜맞춘 연기보다 날 것 그대로가"

입력 2016. 8. 2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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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보름만에 600만 관객 앞 둔 '터널' 주인공 하정우
하정우는 “미리 짜맞춘 연기 보다, 재난 상황에서도 위트 있게 웃음을 유발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 영화 ‘터널’의 흥행 포인트라고 말한다.
남제현 기자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유지한 채 유머를 구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봉 보름 만에 600만 관객을 바라보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는 영화 ‘터널’의 주인공 하정우는 관람평과 함께 “반응이 좋아서 무척, 몹시, 대단히 행복한 시간을 누리는 중”이라고 솔직한 소감부터 털어놓는다.

 



“시나리오를 읽고 났을 때 ‘역시 김성훈 감독이다’라는 혼잣말부터 나왔어요. 자칫 신파적일 수 있는 스토리를 끝까지 재밌게 끌고 가는 힘이 보였던 겁니다. 무너진 터널 속에 갇혔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적응하는 ‘정수’의 이야기가 가슴을 파고들었어요. 재난 상황에서도 위트 있게 웃음을 유발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을 표현해보자고 김 감독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미리 짜맞춘 연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표출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 여겼고요.”

그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촬영을 마친 뒤 곧장 ‘터널’팀에 합류했다.

“‘아가씨’는 카메라워킹을 계획한 대로 미리 디자인해서 마치 세공하듯 치밀하게 찍었다면, ‘터널’은 카메라 앞에서 애드립을 쳐가며 편하게 촬영했어요. 일단 찍어놓으면 나중에 김 감독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쓰겠다는 것처럼···.”

재난은 누구에게나 급작스레 닥치는 것이므로 다듬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연기가 더 어울렸을 법하다. 


“붕괴된 터널 속에서, 살아남은 정수는 당황하지만 구조대장의 지시사항을 들은 뒤 위안을 얻고 어느 정도 마음을 놓습니다. 일주일쯤 견디면 나갈 수 있으리란 희망에서. 그리고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민아와 강아지 탱이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영화는 세 번에 걸쳐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높여나가죠. 눈앞에서 민아의 죽음을 대하고난 정수는 ‘나도 이렇게 죽겠구나’라는 공포감에 풀었던 마음을 바짝 조입니다. 뒤이어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돼 마침내 외부와 연락이 두절됩니다. 공포와 절망감, 두 가지 모두 극대화되는 시점이죠. 그리고 후반부 라디오방송을 통해 아내가 전해준 바깥 상황 소식은 지금껏 버텨오던 정수를 절망감에 휩싸이게 합니다 ··· 관객은 악화되는 바깥 상황과 매몰지 안 힘겨운 주인공의 사투를 번갈아 보면서 스스로 몰입합니다. 어느새 터널 속 정수 곁에 와 있는 거죠.”

그는 작품을 고를 때 캐릭터보다는 이야기를 먼저 본다고 한다.

“관객이 재밌다고 느낄까. 캐릭터야 어차피 제게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보냈을 테니…, 이야기가 갖는 힘,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가 중요하죠.” 

건장한 그가 의외의 이야기도 꺼내든다.

 “엘리베이터에 몇 번 갇혀 본 뒤로는 트라우마가 생겨 계단으로 걸어 다녀요. 비행기 타기도 두려워해 날짜변경선이나 적도선, 일본 후지산 등을 지날 때는 더욱 바짝 긴장합니다. 글라이딩 기능을 갖춘 비행기도 있어요. 하하하. 유독 관심이 많아 ‘롤러코스터’ 만들 때 조사를 했었죠.” 

‘탱이’와의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전혀 훈련이 안 된 개였는데 촬영 때 운이 따랐어요. 강아지를 앞에 앉혀놓고 개 사료를 나누는 장면에서 다행히 ‘탱이’가 얌전히 있어줘서 한 번에 찍을 수 있었죠. 그 뒤론 전체 촬영이 끝날 때까지 말을 안 듣더라고요.”

이번 촬영을 계기로 애완견 비숑프리제를 분양 받아 키운다.

 “암컷인데 ‘복실이’란 이름을 붙여 줬어요. 복 좀 물어 오라고. 하하.”

 좁은 환풍기를 통로 삼아 민아가 갇혀있는 장소를 다녀오는 장면은 사실 전신에 힘이 쭉 빠질 만큼 힘들게 찍었다. 영화 속 분진은 콩가루와 미숫가루 등을 섞어 만든 것이다. 오달수와는 ‘암살’ 때부터 연기 호흡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아내 역을 맡은 두나가 ‘오빠, 난 영화 끝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참을 거야’라고 말할 땐 ‘캐릭터의 큰 선을 잘 잡았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두나에게 해 준거라고는 전화 몇 통 한 게 전분데, 두나는 현장에 와서 돌더미에 깔린 좁은 차 안에 들어가 보곤 ‘생각보다 좁네’ 하더라고요.”  

 그는 배우이자 ‘허삼관’과 ‘롤러코스터’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감독을 해보니 감독과 대립을 안하게 되더라고요. 하하하. 전에는 확신을 갖고 우기기도 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천배 만배 고민한 사람인데 그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를 바라보면 몹시 불편해져요. 진웅이 형, 민식이 형 … 조금만 무표정해도 ‘어? 뭐가 안 좋은가, 마음에 안 드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만이 있는데 그걸 눈치 못 채고 제 뜻만 내세우며 이렇게 가시죠라고 한다면 ... 몰랐던 현장의 분위기와 어려움을 배우게 된 겁니다. ‘한 번 더 테이크 가겠습니다’라고 외칠 때는 솔직히 스태프들의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비라도 내릴 것 같으면, 배우들 스케줄 조정 어떻게 해야 하나, 비용추가는 또 어떻고, 오늘 찍은 거 웬만하면 오케이 하자 등… 준비 단계에서 더 철저해야 합니다.” 


 그는 시나리오, 헌팅, 캐스팅 세 가지가 감독에겐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헌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직접 연출을 해보면서 알게 됐어요. 헌팅은 영화의 뉘앙스를 결정합니다. 그 뉘앙스가 영화 전편에 걸쳐 참으로 많은 것들을 지배한다는 것을 배웠죠. 시나리오야 물론 영화의 기본이니 탄탄해야 하고.” 

 ‘스스로 느끼고 제대로 알아야만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맘속 깊이 밑줄 그어 놓은 그의 연출 신조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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