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소환 전후 자살 기업인·공직자 10년 간 90명..왜

윤진희 기자 입력 2016. 8. 26. 19:07 수정 2016. 8. 26. 19: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환 전 심리적 중압감..소환 후 자괴감과 모멸감 이인원 부회장, 유서 통해 총수 겨눈 검찰에 항변
롯데그룹 내 2인자로 불리는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69)이 검찰의 피의자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2016.8.2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롯데그룹 이인원 부회장의 자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2인자로 불리며, 총수일가를 제외하고는 그룹 내 최고위직으로 평가받는다. 소위 롯데그룹 가신 3인방이 모두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거나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함에 따라 이 부회장의 죽음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검찰 조사를 앞둔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라거나 혹은 총수일가로 향하고 있는 검찰의 칼날을 주춤하게 만들기 위한 충신으로서의 선택이라는 등의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남긴 유서는 A4 용지 4장 분량이다. 이 가운데 1장은 유서의 표지이고 나머지 3장에 가족에게 남기는 메시지와 롯데 수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주장과 소회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으로서 이 부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유서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유서에 담긴 내용이 이 부회장 죽음의 이유를 밝힐 수 있는 단초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은 이 부회장이 유서에 '롯데 비자금은 없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심리적 압박감과 검찰의 총수일가 수사 저지 의도 등이 자살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유서에는 주로 명예실추 우려와 억울함 담아

검찰의 수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는 비단 이 부회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검찰수사 도중 자살한 기업인과 공직자 등은 90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인권위는 자료를 통해 2010년부터 2015년 6월까지 검찰 조사 도중 자살한 사람이 모두 7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를 받다가 적지 않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각자의 혐의만큼이나 제각각이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한 수사대상자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죽음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이런 참극이 벌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관련 사안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일반인들보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고위공직자나 정재계 인사들이 검찰 소환조사를 앞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전문가들은 통상 소환 전에는 심리적 중압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소환 후에는 자괴감과 모멸감 등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의 주장은 검찰 소환 조사를 전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수 인사들의 사례를 통해 힘을 얻는다.

지난 2014년 소위 '철피아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의 유서에서도 공직자로 평생 청렴하게 살아 온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염려하며 고뇌하는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5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 성완종 회장은 유서에서 자신이 수사를 받는 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토로했다.

검찰 소환을 앞둔 며칠 전부터 이 부회장 역시 고뇌에 찬 모습으로 창백한 낯빛을 보였다는 이웃 주민들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고위공직자나 정재계 인사 등 사회적 저명인사들은 자신이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사회적 위상과 명예가 검찰 소환을 통해 실추되는 것에 강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수통으로 불리는 한 검찰관계자는 "사회적 저명인사들의 경우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 우선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데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며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고압적·강압적 태도 또한 한 원인

검찰관계자는 "경험상 대부분 검찰청에 들어와 조사를 받기 전보다 조사를 마치고 난 뒤에 한결 편안해진 모습을 보인다"며 "몇몇 인사들은 조사 전 긴장했던 모습과 달리 조사후에는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개인의 심리상태가 극단적 선택의 주요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검찰 조사 후 조사과정에서 느낀 모멸감 등을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저명인사의 경우 검찰 수사과정에서 느낀 모멸감과 자존심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검찰 조사 전 자살을 하는 경우가 개인의 심리적 문제 때문이라면, 조사 후 자살을 하는 경우는 검찰의 수사 방식에서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검찰 주요 업무인 '수사'는 피의자들이 숨기려하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본질적 속성 때문에 ‘친절’하게 이뤄질 수 없다.

하지만 검찰과 직접 대면한 대다수 국민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대목이 검찰의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방식이 수사대상자들을 자살로 내 모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기업비리 혹은 공직비리 수사는 명확한 목표가 설정돼 있다. 검찰 입장에서는 제한된 수사인력과 시간의 제한 등 제약조건 때문에 관련 사안 전부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보통 ‘큰 줄기’가 되는 비리 혐의를 밝혀내는 데 수사력이 집중된다.

검찰의 고전적 '수사기법' 가운데 하나로 관련 사안에 대한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기 위한 ‘별건수사’가 있다. 기업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하는 경우 핵심 관계자의 개인비리에 대한 수사를 하고 이를 통해 관련 증거나 관련 진술을 확보하는 방식의 수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이 경우 비리혐의를 밝혀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수사 대상이 되는 개인은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별건수사가 진행되면 수사대상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죄추정의 원칙 저버리는 일 없어야

검찰조사 전후로 목숨을 끊는 사례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검찰 내에서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조사 도중 극도의 심리적 불안상태를 보이는 경우에는 신변보호 차원에서 ‘긴급체포’를 해 자살 등을 방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긴급체포는 인신구속을 하는 사안인 만큼 인권침해 등 논란의 소지가 크다.

조사대상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 가장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검찰이다. 이인원 부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은 당혹감을 내비치며 여러 차례 내부 회의를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대상자의 극단적 선택은 조사 전후를 막론하고 모두 심리적 원인에서 비롯된다. 특히 수사대상자가 검찰 조사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에는 검찰이 비난의 화살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한다.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자 했던 검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형법이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피의자를 죄인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등한 시 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jurist@news1.kr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