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강국의 민낯]ⓛ 저임·격무가 숙명이 된 게임업계

원태영 기자 2016. 8. 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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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직·비개발직 구분없이 야근이 일상..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 부지기수
국내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중소 게임 개발사에 근무하는 김영민(29·가명)씨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 업무는 보통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업데이트 일정이라도 있는 날에는 새벽 1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근로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나라다. 지난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34개 회원국중 멕시코에 이어 2위로, 회원국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 많은 수치다. 이를 하루 법정 노동시간 8시간으로 나누면 한국 취업자는 OECD 평균보다 43일 더 일한 셈이 된다.

 

그중에서도 국내 게임업계의 근로시간은 가히 살인적이다. 게임업계에서 야근은 일상이다. 대형 게임업체 사옥에는 대부분 수면실과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일부 업체들은 직원들에게 컵라면과 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직원 복지차원에서 보자면, 좋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야근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임 업체에 근무하는 개발자들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고된 업무에 시달린다. 게임의 경우, 실시간으로 유저들과 피드백을 주고 받아야 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특히 대규모 업데이트라도 잡히게 되면, 개발자들은 집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게임업체가 밀집해 있는 구로와 판교에는 ‘등대’라 불리는 업체들도 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사무실 불을 밝히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는 자조섞인 별명이다.

 

현재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이 외에 주중 12시간, 주말 16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는 업체는 많지 않다. 주당 100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경우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개발업무를 1~2년 하다보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낀다”며 “실제로 퇴직하는 개발자들중에는 몸에 이상을 느껴 그만두는 상당수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개발자들의 처우는 어떨까. 일부 대형 게임업체들을 제외하곤 초임연봉 2000만원 중후반대를 넘기기가 어렵다. 이마저도 대다수 업체들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야근 수당을 따로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포괄임금제란 일정 범위 내의 추가근로 시간을 추가 근로 여부에 관계없이 연봉에 포함시켜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임금제 역시 기존 계약을 넘어선 추가근로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업체는 많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개발자들의 경우, 전체 근로시간을 다 계산해보면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밝혔다.

 

게임업계에는 현재 노조가 전무하다. 개발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대변해줄만한 곳이 없는 셈이다. 그나마 2013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게임개발자연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 정치권이나 정부가 게임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봤을 뿐, 그 안에 존재하는 열악한 업무 환경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며 “국내 게임업계의 성공신화 뒤에는 수많은 개발자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업계에서는 ‘직원을 갈아 게임을 만든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개발자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발자들의 경우, 고용 안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프로젝트 팀 단위로 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에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엔 게임시장이 PC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위주로 재편되면서, 개발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과거 온라인게임의 경우, 3~4년 정도 개발기간이 있어서 어느정도 고용이 보장됐지만 모바일게임의 경우 짧게는 한두달만에 프로젝트가 중단돼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비개발직군의 상황은 어떨까. 국내 게임업체에서 게임운영 업무를 맡고 있는 김지영(26·가명)씨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즌만 되면, 야근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한다. 게임업계의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방학시즌에 유저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게임에 대한 불만사항 및 개선사항 문의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방학기간 중 주요 대규모 업데이트가 잡힌 기간에는 열흘동안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홍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모씨도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며 “게임업계의 경우, 1인 미디어도 상당수 포진해 있기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비개발직군의 경우,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곤 개발직군에 비해 낮은 대우와 보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운영직군에서 두드러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운영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임금체계 역시 개발직군에 비해 턱없이 낮아 전문적으로 인력을 키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게임업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열악한 개발환경 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환민 사무국장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여건이 개선되기 위해선 먼저 대형 업체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돼야 한다”며 “노조를 중심으로 부당한 업무환경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적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는 업체가 많은 만큼, 관리 감독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정부와 정치권도 여기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원태영 기자 won@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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