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기도하고, 땀 흘리고..가까이서 찾은 힐링
오늘 week&은 피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피정의 역사는 깊습니다. 약 2000년 전 이스라엘 북부의 어촌 갈릴리에서 예수는 온종일 쫓아다니는 군중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는 군중을 피해 외따로이 산으로 올라가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도, 중세의 성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으로 들어가거나 사막에 홀로 남아 고독한 수련을 했습니다. 그 전통이 2000년 세월을 거쳐 오늘도 내려오는 것입니다.
“수도원 피정을 절대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누구든지 와서 깊이 기도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수도원입니다. 저희가 존재하는 것도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피정은 개인 피정과 단체 피정으로 나뉩니다. 일정은 조금 다릅니다. 개인 피정은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진행하는 미사·기도 등 일과에 참여하는 대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냅니다.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는 수사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단체 피정은 주제에 따라 일정을 새로 짭니다.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피정, 등산을 하는 피정, 요리를 배우는 피정도 있습니다. 방식이 다양해진 건 참가자가 늘어서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따르면, 피정 참가자가 2006년 약 19만 명에서 지난해 28만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마침 눈여겨볼 만한 피정 프로그램도 생겼습니다. 지난해 경상북도의 가톨릭 시설 15곳이 ‘소울 스테이(Soul Stay)’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불교의 ‘템플 스테이’처럼 일반인을 위해 성당과 수도원의 문턱을 낮춘 것이지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 끝이 보입니다. 여름을 잘 버텨낸 자신에게 피정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진짜 심신의 휴식을 누리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선뜻 결심이 안 서는 독자를 대신해 week&이 피정을 체험하고 왔습니다. 쉼을 누리고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100년 역사의 한국 첫 수도원
예부터 왜관에는 사람과 물류 이동이 많았다. 수도원 앞 왜관역은 1905년 들어섰고, 수도원 동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전쟁이 끝나면 서울이든 덕원이든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통의 요지에 터를 잡았다. 왜관 수도원이 의외로 속세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까닭이었다.
측백나무 가지런한 정원,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성당. 야트막한 언덕에 들어선 수도원의 첫인상은 정갈한 분위기의 미션스쿨과 비슷했다. 흰 수도복을 입은 오윤교(55) 신부가 반갑게 맞아줬다.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백숙과 잡곡밥, 버섯햄볶음을 포함한 반찬 5개가 나왔다. 절밥처럼 간소한 음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푸짐한 한 상 차림이었다.
사실 왜관 수도원은 음식으로 꽤 유명하다. 수도원에는 3만 평(약 10만㎡) 면적의 논도 딸려 있다. 수도원은 직접 수확한 쌀로 밥을 짓고, 텃밭에서 키운 오이·양파·파 등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 수도원은 소시지도 직접 만든다. 수도원을 설립한 독일 수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소시지 맛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처음에는 수도원에서 직접 돼지를 키웠는데 지금은 국산 돼지고기를 사다가 만들고 있다. 그래도 수제 소시지를 수도원에 피정을 와서 먹을 줄은 몰랐다.
피정 참가자가 이용하는 객실 ‘손님의 집’은 단정하고 편안했다. 2평 남짓한 독실에 화장실도 달려 있었고, 싱글 침대와 작은 나무책상, 벽걸이 십자가가 있었다. 에어컨도 있었고, 속도 빠른 무선 인터넷도 잡혔다. 오 신부는 “베네딕도 수도원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전통이 있다”며 “피정 온 이들이 심신의 기력을 회복하고 돌아가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오후 1시 본격적으로 수도원 일과에 동참했다. 일과표에 나온 수도원의 하루는 다음과 같았다. 오전 5시 기상해 잠들 때까지 모두 7번의 기도와 묵상, 미사에 참가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노동을 한다. 노동 시간에 피정 체험자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산책을 하든, 객실에서 쉬든,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든, 아니면 수사와 함께 노동을 하든 자유다. 미사와 기도 참석도 사실 의무 사항은 아니다. 휴대전화 반납, 무조건 침묵 등 엄격한 규율을 각오했는데 예상보다 수도원의 일과는 느슨했다.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
오후 6시 성당에서 진행되는 저녁 기도에 참석했다. 성당은 초등학생 때 한 번 가본 뒤 처음이어서 모든 게 어색했다. 수사들이 합창하는 성가 ‘안티포날레’를 가만히 경청했다.
“타는 듯 우리 마음 쓰라리오니, 싱싱한 은총으로 낫게 하소서. 궂은 일 눈물 흘려 깨끗이 씻고, 그릇된 욕정일랑 끊어주소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도다” 인생을 송두리째 헌신한 이들의 기도 소리가 속인의 가슴을 흔들었다.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지고 하늘이 열리는 것 같은 환상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슴 속에서 성가가 내내 맴돌았다.
아구찜이 나온 저녁 식사를 마치고 8시 끝기도에 참석했다. 가톨릭에서는 밤을 죽음으로, 아침을 부활로 여긴다. 하여 하루를 마감하는 끝기도는 유독 분위기가 엄중했다.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조화를 이룬 그레고리오 성가가 장엄했다. 하느님의 복을 구하는 마지막 기도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아멘.”
거룩한 죽음. 이 말 앞에서 어떤 인간이 겸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객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거룩한 죽음’이란 말을 되뇌었다.
이튿날 오전 5시 객실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죽음에서 살아난 새날은 기도로 시작했다. 하나 속세와의 단절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손은 스마트폰을 문지르고 있었다. 한참을 SNS와 회사 인트라넷을 힐끔거렸다. 일상을 벗어나고도 일상을 그리워하는 꼴이 영락없는 죄인이구나 싶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오복음 11장 28절).” 2000년 전 예수의 약속이 저들에게 이뤄진 것 같았다.
▶ 관련기사 150년 묵은 한옥에서, 수영장 갖춘 펜션에서…
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이인원 유서 "비자금 없다···신동빈은 훌륭한 사람"
▶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유명인사 된 것 같다"
▶ '여중생 집단성폭행' 피의자 첫 공판···혐의 전면 부인
▶ 구글도 못한 성층권 비행···국산 무인기가 뚫었다
▶ '장모님을 몰라봐?'···장인·장모도 예약 안 받아주는 집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