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더 사람 잡는 전기요금

차형석 기자 2016. 8. 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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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치솟았다. 폭염이 계속되자 전력 사용량이 증가했다. 에어컨 등 냉방용 전력 사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불합리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 신문 사설에도 실렸다. 에너지 관련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 전기요금 누진제에 관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폭염이 뜨거웠던 2012년 9월에 있었던 일이다.

2016년 8월,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판박이처럼 일고 있다. 4년 만이다. 불만의 강도는 더해졌다. 기온은 4년 전보다 올라갔다. 여기에다 법무법인 인강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이 기폭제가 되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규정한 한전의 전기 공급 약관이 부당하니 더 걷어간 전기요금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2014년 8월 20여 명이 소송을 시작했는데 올여름에 신청자가 급증했다. 법무법인 인강은 8월10일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이가 1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정치권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바꾸자고 나섰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자 감세 효과, 소비 증가에 따른 전력대란 우려 등을 이유로 누진제 개편에 반대한 바 있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올여름 계속되는 폭염으로 최고전력수요도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8월11일 오후 3시 최고전력수요는 8449만㎾를 기록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왜 시행되었나

먼저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를 알 필요가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 요금+부가가치세+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나뉜다. 사용량에 따라 100㎾h를 기준으로 6구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주택용 전기에는 누진요금이 적용된다. 기본요금은 구간마다 차등이 있다(아래 <표 1> 참조). 전력량 요금표를 보면, 주택용(저압)의 경우 가장 비싼 6구간 요금이 가장 낮은 1구간 요금의 11.7배다. 가령 한 달에 150㎾h를 사용했다고 치자. 이는 2단계 구간에 속한다. 이럴 경우 기본요금은 2단계 해당 기본요금을 낸다. 전력량 요금은 100㎾h는 1단계 요금(60.7원)을, 나머지 50㎾h는 2단계 요금(125.9원)을 각각 곱해 더하면 된다. 2단계 구간에 있다고 해서 전력소비량에 모두 2단계 요금을 곱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이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주택용 전기요금제는 에너지 상황과 전력 수요에 따라 변화해왔다. 1973년 11월까지는 전력소비량이 높은 구간에서 전력량 요금이 오히려 낮아지는 역진적인 요금제가 적용되었다. 그러다가 1973년 12월부터 모든 사용 전력량에 같은 요금을 곱하는 단일요금제를 1년 동안 시행했다.

지금과 같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도입된 것은 1974년 12월이었다. 제1차 석유파동이 원인이었다. 유가 급등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기를 절약하고 저소득층의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자는 취지로 전기요금 누진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3단계 구간으로 최대요금과 최저요금의 비율은 1.58배 수준이었다. 이후 에너지 시장 상황에 따라 구간이 확대·축소되었다. 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1979년에는 누진단계가 12단계로, 누진배율이 19.68배로 확대되기도 했다. 지금의 주택용(저압) 전기요금 누진배율 11.7배는 2005년 12월부터 유지되어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주택용 전력수요의 계절별 가격탄력성 추정을 통한 누진요금제 효과 검증 연구>, 조성진·박광수)에 따르면, 월평균 전력 소비가 300㎾h인 가구의 경우 총괄원가의 90% 정도의 단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력 소비가 적은 가구의 전기요금은 낮은 편이다. 전력 소비가 많은 가구에 높은 누진요금을 적용해 ‘보조’를 받는 셈이다. 월평균 전력 소비가 300㎾h 이하 가구는 전체 가구 중 71.4%이다(2014년 기준).

주택용 전력 수요는 겨울과 여름에 높다. 2013년을 제외하고 2010년, 2011년, 2012년, 2014년에는 동절기에 더 많은 전력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난방 수요가 컸다. 소득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력 소비는 소득이 높을수록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가구에서는 냉방 수요가 난방 수요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가구 유형으로는 1인 가구의 전력 소비가 가장 적었고, 주택 면적이 증가할수록 전력 소비도 증가했다. 현재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1인 가구, 저전력 소비 가구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여름철 가정에서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누진요금의 영향이라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력 소비가 많은 가구에게 혜택이 돌아갈 확률이 높다.

이런 누진제에는 허점과 한계가 있다. 제도 설계 때보다 1인 가구가 대폭 증가하는 등 가구 유형이 달라졌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가구원 숫자가 많을수록 전력 소비가 많은 편인데, 소득이 적으면서 가족이 많은 가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요금을 내는 문제점도 있다. 누진제 유지를 지지하는 환경단체 등에서도 큰 틀은 유지하고 일부 구간의 기준을 미세 조정하는 것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산업용 전기에는 왜 누진제 적용하지 않나

전기요금 체계는 용도에 따라 주택용·일반용·교육용·산업용·농사용·가로등용·심야전력 등 6개로 구분된다. 판매량 비중은 산업용(55.9%), 일반용(21.5%), 주택용(13.9%), 심야전력(3.5%), 농사용(2.9%), 교육용(1.75), 가로등용(0.7%) 순서다(2014년 실적 기준). 주택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고, 산업용·일반용 전기 등에는 계절별·시간대별 차등요금이 적용된다.

왜 주택용 전기에만 누진제가 적용되느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업용·일반용 전기는 구조상 누진요금을 적용하기 어렵다. 영세업체와 제철소 같은 대기업 사업장은 전력 소비 차이가 무척 크기 때문에 구간을 정해 누진요금을 적용하기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또 산업용 전력의 경우 공장을 짓는 순간 전력소비량이 일정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전기를 더 쓰면 요금을 더 내게 하자는) 누진제와 어울리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산업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없다.

2012년 그해 여름은 어땠나

런던 올림픽이 열린 2012년 여름에도 폭염으로 인해 누진제 논란이 뜨거웠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2년은 1981년 이후 여섯 번째로 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주택용 전기 사용량의 변화는 어땠을까. 2012년 8월의 누진구간별 가구수 비중을 살펴보면 2011년 8월에 비해 1, 2, 3, 4단계 구간의 가구수 비중은 줄었다(1단계 13.7%→13.4%, 2단계 20%→17.6%, 3단계 25.4%→21.8%, 4단계 26.4%→24.1%). 반면 전력 소비가 많은 5단계와 6단계 구간의 가구수 비중 증가가 두드러졌다(5단계 11.2% →15.6%, 6단계 3.4%→7.5%, 왼쪽 <표 4> 참조). 이해 8월 무더위로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고 알려진 계층은 6단계에 포함되었을 것인데, 이 구간에 새롭게 진입한 가구는 90만 가구 정도다. 이는 전체 가구(2161만 가구)의 4.2%에 해당한다. ‘혹여 여름철 전기요금 폭탄을 맞지 않을까’ 모든 가구가 걱정하지만, 그 시기에 실제로 전기요금이 다른 가구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한 가구는 일부라는 것이다(<전기요금과 사회적 정의 그리고 탈핵 에너지전환>, 한재각).

누진제 완화하면 살림살이 나아질까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여러 보고서는 현행 누진배율(11.7배)이 과도하게 높은 측면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과 배율을 축소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민심은 부정적인 편이다. 8월9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폐지 41.3%, 완화 39.6%). 이런 조사 결과에는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할 경우에 여름철에 전기요금 걱정 없이 에어컨을 켤 수 있으리라는 바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8월11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긴급 협의회를 열어 올해 7~9월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현행 6단계인 누진제 구간의 폭을 50㎾h씩 높이는 방식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전체적인 전력요금 체계 개편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번에 한시적인 조정을 통해 일시적으로 전기요금이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이후 누진구간·누진비율을 축소하는 안을 마련할 경우, 이번처럼 전기요금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그 설계 방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존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적어도 전기 저소비 가구에서는 전기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국회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에는 참고할 만한 데이터가 담겨 있다. 누진제를 3단계, 3.6배 수준으로 완화했을 경우를 가정해 시뮬레이션한 결과가 실려 있다(아래 <표 2> 참조). 이 경우에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기존 1·2·3구간 가구의 전기요금은 월평균 2000~3000원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력 사용량이 많은 6구간 가구는 월평균 4만원 넘게 전기요금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 검토보고서도 ‘누진제 완화 시 현행 전기요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서민층(전기 저소비 가구)의 부담이 증가하여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9월 당시 지식경제부도 5단계 누진제 개선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1·2·3단계 구간을 150㎾h를 기준으로 해서 2단계로 조정하고, 최고 누진율은 9.7배로 하는 안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개편 전 6개 전 구간에서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표 3> 참조).

누진배율을 축소하는 경우 현재 원가보다 크게 낮은 전기요금을 내던 저전력 소비 가구의 요금 상승은 불가피하다. 1인 가구, 일부 저소득 가구의 전기요금이 늘어나리라 보인다. 지난해 월평균 주택용 전기요금 현황을 보면 전력 소비가 많은 5·6구간의 가구수 비중은 각각 4.5%, 1.2%에 불과하다. 누진제 완화로 전기요금이 줄어드는 혜택은 주로 이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아래 <표 1> 참조).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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