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이홍로 2016. 8. 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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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걸은 산티아고] 열두번째날과 열세번째날,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24Km, 카스트로헤리스26Km

[오마이뉴스이홍로 기자]

작은 알베르게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아침 7시에 바에 가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오늘은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까지 24Km를 걸을 계획이다.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대도시에서 하루나 이틀 묵기 위하여 하루에 30Km 이상 걷는 순례자도 보았다. 우린 대 도시 보다 작은 마을에서 쉬는 것이 더 좋았다.

마을을 나서 길을 걷는데 계속하여 도로를 걷는다. 도로에 차는 많이 다니지 않지만 포장된 도로를 걷는 것이 비포장 도로 보다 훨씬 힘들다. 이런 길을 2시간 정도 걷다 보니 멀리 밀밭 넘어로 부르고스가 보인다. 부르고스에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도시 초입은 끝없이 창고형 회사들이 늘어서 있어 걷기 힘들다. 앞서 걷던 한 순례자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부르고스 성당까지 1시간은 걸어야 되는데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간다.

 밀밭과 멀리 부르고스
ⓒ 이홍로
 부르고스 시내에서 발견한 현대자동차 광고
ⓒ 이홍로
 부르고스 알베르게에 들어가기 위해 늘어선 배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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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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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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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스 시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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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스 공원 . 플라다스 나무를 독특하게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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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걷기 힘들다. 터벅 터벅 천천히 걷고 있는데 도로 건물 위에 현대 자동자 광고판이 보인다. 스페인은 거리 광고가 거의 없다. 가게 간판도 작은편이다. 길을 걷다가 국산 자동차를 보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골목 사이로 부르고스 대성당 첨탑이 보인다. 그 골목에 알베르게가 있는데 배낭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지금 시간이 11시인데 침대를 배정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부르고스 성당은 13세기에 세워졌고 가장 아름다운 스페인 성당 중 하나라고 한다. 규모로는 세비야의 히랄타 성당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성당으로 내려 갔다.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쪽 광장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쉬었다. 노점에서 1유로하는 순례자 배지도 하나 샀다.

아를란손 강쪽으로 가면 중세풍의 아치가 나오는데 매우 아름답다. 강변은 공원으로 플라다스나무를 멋지게 가꾸어 볼 만하다. 그 아래에서 거리의 음악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내 마트에서 빵과 과일을 사 가지고 외곽 지역으로 나가 걷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도시 외곽에 대학과 병원이 있고 이 곳을 벗어나니 다시 밀밭길이다. 브르고스에서 7Km 정도를 걸어 비알비야 마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알베르게를 알아 보니 두 곳 다 침대가 꽉 차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까지 가기로 한다.

 칼사다스 알베르게
ⓒ 이홍로
 칼사다스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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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의 광장에 알베르게가 있다. 침대가 있는지 알아보니 여유가 있다. 취사 시설은 없고 알베르게에서 8유로에 저녁과 아침까지 제공한다. 저녁은 미국인 할머니와 두 손녀, 이탈리아인 부부, 폴란드 여인, 친구와 나 이렇게 8명이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먹었다. 미국인 할머니가 한국에서는 bread를 무엇이라고 하는지 묻는다. "빵"이라고 한다니 모두들 큰 소리로 "빵" 하며 함께 웃었다. 저녁을 먹고 마을을 산책했다. 마을이 작아 10분 정도면 마을을 다 돌아 볼 수 있었다.

열세번째날 날이 밝았다

침대가 6개 있는 방에 3명이서 잤는데 편안하게 잤다. 잠을 깨어 뒤척이다가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이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서 마을을 산책한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오래된 건물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데 나 혼자 중세로 돌아온 기분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지붕이 무너져 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보니 친구도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 있다. 7시부터 배식을 하니 그 안에 세수를 하고 오늘 일정을 둘이서 계획을 세운다. 오늘은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에서 카스트로헤리스까지 26Km를 걸을 계획이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누어 준 일정표는 34일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조금씩 줄여 오늘 걷고 나면 32일에 카미노 순례를 마치게 된다. 앞으로는 일정표대로 걸으면 된다.

아침은 이태리에서 온 부부와 우리 둘이서 먹는다. 빵과 잼, 커피, 우유로 맛있게 먹었다. 이태리 부부는 베로나에서 왔다고 한다. 베로나는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도시이다. 친구와 나는 우리가 순례길을 마치고 이탈리아 여행을 하는데 베로나에도 갈 예정이라고 하니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웃는다.

숙소를 나서니 바로 밀밭길이다.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에 도착할 때까지 8Km 정도 그늘도 없이 끝없이 밀밭길이 이어진다. 아침 햇살을 받아 구름이 잠시 황금색을 띠더니 금세 회색빛으로 바뀐다. 구름과 태양이 서로 협력하여 밀밭에 다양한 조명을 해 준다. 구름이 밀밭을 덮어 버리기도 하고 어느 한 곳은 환하게 비추기도 한다.

카메라로 이 변화의 모습을 촬영하며 지평선을 걷고 또 걷는다. 멀리 마을이 보인다.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마을이다. 우린 여기에서 맥주 한 잔하며 간식을 먹었다. 바 앞 광장에는 닭 모양의 분수대가 있다. 이 마을 주변을 메세타 지역이라고 하는데 끝없는 평원이 이어진다.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의 새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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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밭길을 걷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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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조명을 하는 듯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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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의 동상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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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과 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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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에 만난 아름다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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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안톤 알베르게
ⓒ 이홍로
 산 안톤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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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톤 알베르게 그 아름다운 풍경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마을을 지나 다시 밀밭길을 걷는다. 멀리 오른쪽으로 수많은 풍차가 보인다. 쉴 곳도 없는 평원을 걸으며 친구와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일들, 마음속에 미움으로 남았던 사람들을 이 힘든 길에서 다 버리고 가자고 했다.

어느 책을 보니 성서 중에서 가장 멋진 글은 "원수를 용서하라"라는 말이란다. 상대방은 내가 그를 미워하는 줄도 모르고 있는데 자신만 그를 미워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속병이 생기기도 하고.

영화 <밀양>을 보면 전도연이 돈이 많은 것처럼 행동을 하니 어떤 사람이 전도연의 아들을 납치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납치범은 결국 아들을 살해하고 그는 잡혀 교도소에서 복역을 한다. 전도연은 교회에 다니며 신앙으로 그 괴로움을 달래며 살고 있는데 신앙의 동료들이 전도연에게 아들을 죽인 그 범인을 용서하라고 한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던 전도연이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용기를 내어 그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다. 범인을 만나 내 아들을 죽인 죄인이지만 용서를 한다고 말하니 그 범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이미 그분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그 말을 들은 전도연은 울부짖는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그를 용서해 주었느냐고.

걷기에 지칠 즈음 펼쳐진 밀밭길에 쉼터가 나왔다. 멀리 풍차는 소리없이 돌아가고 그 뒤에는 흰구름이 둥실 떠 있다. 우린 마주 앉아 양파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마음속에 있는 원망을 나 자신을 위해 이 곳에 다 버리자고 다짐을 했다.

다시 일어나 길을 걷는다. 밀밭길을 1시간 정도 걸으니 앞에 고딕 양식의 아치가 나타났다. 그 아래로 자동차와 농기계들이 달린다. 산 안톤 알베르게 표지도 보인다. 이 곳은 고대 수녀원의 잔해를 이용해 알베르게를 만들었는데 5월부터 9월까지만 운영한다고 한다. 무너진 잔해가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남은 유적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가 '너 이 모습에 이렇게 빠지는 걸 보니 로마 포로 노마노에 가면 기절하겠다'고 농담을 한다. 멋진 고대 유적에서 빠져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다.

 멀리 카스트로헤리스 마을
ⓒ 이홍로
 유채꽃이 만발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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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트로헤리스 마을과 산위의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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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순례자가 산위의 고성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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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을 오르며 바라본 카스트로헤리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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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풍경
ⓒ 이홍로
 고성 계곡의 양귀비
ⓒ 이홍로
순례길에서 천국을 만나다

산 안톤 수도원 유적지를 나와 길을 걷고 있는데 도로 양 옆으로 양귀비, 유채꽃, 이름 모를 하얀꽃이 끝없이 피어 있다. 멀리 산 위에는 고성이 보이고 그 아래 마을에는 초입에 성당이 자리 잡고, 산 주위로 아담한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꽃밭과 어울린 마을의 모습에 천국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와 나는 연신 셧터를 눌렀고, 서로 이 천국을 배경으로 독사진도 찍었다.  

앞에 가던 이탈리아 부부도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우리를 향해 "뷰티풀"을 외친다. 아름다운 꽃밭에 취해 피곤도 잊은 채 걷다 보니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다. 마을 조감도에 알베르게, 호텔 등이 잘 표시되어 있어 알베르게를 찾기 쉬웠다.

이 곳이 우리가 묵을 카스트로헤리스 마을이다. 아! 그런데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두 곳이나 침대가 꽉 찼다고 한다. 미국인 부부는 알베르게를 정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마을 산책을 하는데 우린 알베르게도 못 잡고. 걱정이다. 이제 한 곳만 남았다. 서쪽 끝에 있는 알베르게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이다. 이 곳은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인데 다행히 침대가 있다. 샤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산 위의 고성을 보러 길을 나섰다. 친구는 피곤하다며 침대에서 쉬고 싶다고 한다.

산 위의 고성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른다. 위로 오를수록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평화로운 마을과 파란 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구름, 성에 올라오길 잘 했다. 성을 오르는 길 옆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정상에 오르니 성이 한눈에 보이고 성 위에는 몇몇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성 일부는 낡아 무너져 있다. 그런데 완전한 모습 보다 이런 모습이 더 운치가 있다. 성 꼭대기에 올라 서니 시야가 확 트여 장관을 연출한다.

마을로 내려와 바에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썼다. 이 알베르게는 취침 전에 은은한 성가가 작은 소리로 흘러 나오는데 정말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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