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는' 김과장, 회식하고 야근했더니 'S등급'

이미영 기자 입력 2016. 8. 2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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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더이슈] '업무 성과' 평가한다더니.."능력보다 성실·충성"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이슈더이슈] '업무 성과' 평가한다더니…"능력보다 성실·충성"]

#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김 대리(35·여)는 최근 과장 승진에서 물을 먹었다. 김 대리는 마케팅 실적도 상위권에 속했고, 부서원들에게도 평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워 인사 담당 부장에게 항의하자 "김 대리의 업무 성과는 인정하지만 조직과 잘 융화되지 못한 점이 걸려 점수를 낮게 줬다"는 소리를 들었다.

# 김 과장은 상사가 만든 술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석한다. 술자리 '분위기 메이커'로 소문난 김 과장은 부장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부하직원이다. 하지만 김 과장 부하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 과장이 술 때문에 회사에 자주 지각하고 숙취 때문에 업무를 정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지 못해 후배들에게 넘기고 술자리로 직행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의 성과평가는 '반전'이었다. 부서에서 가장 높은 S등급을 받은 것. 직원들은 '결국 능력보다 아부가 성과의 잣대가 됐다'며 씁쓸해했다.

최근 OECD가 발표한 고용동향에서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2112시간으로 회원국 중 2번째로 길었다. 평균 임금은 3만3110달러로 OECD 평균의 80%였다. 우리나라 근로자들 대부분이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하지만 시간대비 효율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까지도 발벗고 '성과제도'를 도입해 업무효율을 높이겠다고 발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성과제 자체로는 우리나라의 업무효율을 높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는 기업 내 조직문화가 변화하지 않는 한 성과제도가 직원의 업무결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구조 탓이다.

권 혁 부산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성과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직원들의 업무 결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70·80년대 제조업 중심의 조직문화에 정체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성과제도가 도입되면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문화 중심의 직원 평가가 계속되면 상사의 주관적인 평가가 성과평가 결과에 가장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개개인의 업무 결과보다 상사와의 친밀도, 업무태도 등 '겉모습'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올해 직장 생활 10년차인 장모씨(34·금융업 종사)는 "상사들은 대체로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평가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보는 것 같다"며 "업무를 평가할 만한 객관적 지표나 자신의 업무 결과를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보니 결국 상사에게 잘보이는 사람이 연봉을 잘 받고 승진도 잘한다"고 말했다.

A 기업 인사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성과제도를 도입하는데 급급해 성과제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며 "선진 기업들은 직원들의 구체적인 목표를 경영진과 함께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지 여부에 따라서 성과를 매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상사의 평가가 가장 입김이 세다"고 말했다.

많은 취업정보기관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도 이같은 경향성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직원 성장가능성이나 업무에 대한 열정보다 지원자의 성실함, 조직과의 조화를 상당히 비중 있는 항목으로 평가한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직장생활에서 성실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고분고분함'을, 즉 조직에 충성하고 조직의 규율을 잘 따르는 것을 뜻한다"며 "결국 사무실에서 '물리적'으로 오래 일한 사람이, 회사에 오래 있는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성과제도 도입이 곧 업무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상사의 주관적 평가가 아닌 업무에 적합한 평가를 내릴 때 근로자들도 자율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성과제도가 직원들이 좋은 업무 환경에서 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모색돼야 한다"며 "현재 조직문화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성과제도만 도입한다면 개인의 역량에 집중하기보다 상사눈치만 더 보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기자 my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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