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게임.. '소프트 파워' 넘보는 中國자본
일제시대 위안부 소녀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은 지난 3월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했다. 초청자는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완다그룹. 이 그룹 문화사업 담당 최고경영자는 조 감독과 함께 '귀향'을 감상한 뒤 "우리가 보유한 시나리오가 많은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조 감독은 차기작 준비로 곤란하다고 했지만 완다는 계속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부동산 재벌인 완다그룹은 최근 전 세계 영화·콘텐츠 시장에 집중적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완다그룹뿐만 아니다. 알리바바·텐센트 같은 중국 거대 IT 기업들도 앞다퉈 문화 콘텐츠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2004년부터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주도해 전 세계에 세운 '공자학원'과 달리 이번엔 막대한 자본을 가진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중국 문화 굴기(崛起) 2.0'이란 점에서 더 위협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완다·알리바바·텐센트의 '문화 굴기'
완다는 최근 미국(AMC·카마이크)·유럽(오데온)·호주(호이츠)의 최대 규모 극장 체인을 사들여 전 세계 영화 유통망 장악에 나서고 있다. 올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전혜정 집행위원장은 "영화산업에선 배급권자가 최고 '갑(甲)'"이라며 "이렇게 중국 기업들이 배급망을 장악해가면 앞으로 제작사들은 중국이 싫어할 만한 내용은 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완다는 지난 1월 '배트맨'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레전더리픽처스도 손에 넣었고, 또 다른 할리우드 제작사 파라마운트 인수도 추진 중이다. 레전더리픽처스는 최근 전 세계 돌풍 중인 게임 '포켓몬GO'의 실사 영화를 만들면서 중국 촬영을 계획 중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알리바바그룹은 최근 영화·미디어·스포츠를 아우르는 문화 제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 2014년 홍콩의 드라마·영화 제작사 차이나비전을 인수해 알리바바픽처스로 바꿔 영화사업을 시작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최대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유쿠투더우 지분 전체를 인수했다. 알리바바픽처스의 2대 주주인 자오웨이 배우 겸 감독은 올 초 국내 영화음악 권위자인 조영욱 음악감독의 경기 파주 헤이리 집으로 직접 찾아가 자신의 차기작을 위한 음악 감독을 요청했다고 한다. 조 감독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알리바바픽처스가 투자하고 자오웨이가 감독하는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거대 자본을 지닌 중국은 최근 재능 있는 한국 감독·PD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며 "그들이 가진 능력을 자신들 것으로 빠르게 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메신저 '위챗'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운영하는 텐센트는 전 세계 게임업계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6월 모바일 게임 세계 1위인 핀란드 기업 슈퍼셀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게임 개발과 유통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슈퍼셀은 한국 시장에서 가수 김창완을 내세워 자사 게임의 TV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카카오·넷마블게임즈·파티게임즈 등 국내 게임 관련 업체의 지분도 갖고 있다.
◇"공산품에 이어 문화 수출"
저가의 공산품을 수출하던 중국이 휴대폰·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선 데 이어 문화 상품을 본격 수출하면 한류(韓流)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시대에서 최근 한류(韓流)로 넘어왔는데, 중국이 우리 한류를 벤치마킹해 미국과 대등한 문화 강국이 되려고 한다"며 "한국의 문화산업이 거대 자본 앞에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때일수록 중국의 자본을 잘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기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돈으로 문화와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 시대에 가능하지 않고, 중국 기업들도 인수한 해외 기업에 곧바로 중국 방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면서 "우리는 중국 자본을 적절히 활용해 우리만의 문화적 매력과 역량을 꾸준히 개발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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