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④ 런민공원, 상하이의 이색 결혼시장

2016. 8.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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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특징 중 하나는 도심에 공원이 많다는 점이다. 황푸강을 따라 조성된 빈쟝공원(濱江公園)도 있고, 상하이의 센트럴 파크라는 스지공원(世紀公園), 프랑스식 정원을 본뜬 푸싱공원(復興公園), 해외 조각 작품을 전시한 징안 조각공원(靜安雕塑公園)도 있다. 공원 개방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특이하다. 보통은 오전 6시께 문을 열고, 해질녘에 닫는다.
상하이의 공원은 노인들의 놀이터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공원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다. 평일에는 손주를 보행기에 태워 그늘 아래서 간식을 먹이고, 주말에는 삼삼오오 모여 장기나 마작을 둔다. 아마 맞벌이하는 아들딸 대신 아이를 키워주고 주말에 짬을 내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이리라.
이른 아침에 지나는 길에는 태극권을 하는 사람을 자주 봤고, 루쉰공원(魯迅公園)에서는 광장무(廣場舞)도 봤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누군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행인들이 하나둘 모여, 나중엔 광장을 가득 채우는 군무가 된다. 마치 세포 분열을 하듯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제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런민공원(人民公園)의 결혼시장이었다.
상하이 런민공원의 결혼시장 풍경.
결혼시장은 중국어로 ‘샹친쟈오(相親角)’라고 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중국 대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부모가 아들딸의 프로필을 들고 나와 공원에서 직접 홍보하는 것이다. 프로필에는 아주 적나라하게 ‘스펙’을 적는다. 나이와 직업, 출신 학교는 기본이고 키, 부모의 직업, 호구(戶口), 동네 위치까지 적는다. 이런 프로필을 우산 위에 붙여 활짝 펼쳐두기 때문에 주말이면 런민공원은 스펙 우산이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적어도 100명은 족히 넘는 노인들이 나와서 아들딸의 프로필을 홍보하고, 마음에 드는 사윗감, 며느릿감 프로필을 골라 열띤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은 쏙 빠진 상견례나 다름없다.
영국 배우 이언맥켈런도 결혼 시장에서 공개구혼에 나섰다. [사진 주중영국대사관문화교육처 웨이보]
10년 이상 이어진 런민공원 결혼 시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다른 지역에서 구경을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영국 배우 이언 맥켈런(Ian McKellen)이 런민공원에서 A4 한 장짜리 프로필을 들고 공개 구혼해 화제가 됐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오고, 런던에 집이 있고, 키가 180㎝이고, 심지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최고의 마법사 간달프였던 맥켈런도 소용 없었다. 그가 1939년생 할아버지여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호구’에 있었다. 상하이 호구가 없는 사람은 런민공원 결혼시장에서 100% 퇴짜를 맞는다.
스펙을 써붙인 우산을 펼쳐놓는다.
한국의 주민등록에 해당하는 중국의 호구는 크게 농촌 호구와 도시 호구로 나뉘는데, 타고난 호구는 쉽게 바꿀 수 없다. 한국에서 서울 시민이 되고 싶으면 이사한 후 전입 신고를 하면 되지만, 중국은 농민의 도시 유입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 도시 호구를 얻는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그러니까 상하이 시민이라는 호구는 결혼 스펙의 최고봉인 셈이다. 여기에 푸동 신도시에 집이 있다면 최고의 신랑감이 된다.
자녀들의 결혼상대를 찾기 위해 부모가 발벗고 나섰다.
노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대부분 팔불출 자식 자랑이다. 명문 대학을 나와 어떤 직장을 다니며 연봉은 얼마인지 등등. 이야기를 하다가 파투가 나도 별로 아쉬운 기색은 없다. 즐거이 다음 사람을 찾아 말을 건다. 어쩌면 이것도 태극권이나 마작처럼 상하이 노인들의 독특한 취미 생활이 아닐까 싶었다.

런민공원을 다녀온 며칠 뒤, 난징동루(南京東路)의 한 마사지숍에 갔다. 나를 담당한 #70(그가 또 찾아오라며 명함에 적어준 이름)은 6년 경력의 베테랑 안마사라고 했다. 그의 왼쪽 가슴팍에 놓인 빨간별 2개가 그의 말을 뒷받침해줬다. 시안(西安) 근처의 시골에서 태어난 #70은 중학교 졸업 후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상하이에 왔다. 방 한 칸을 사서 장가 들고 상하이에 정착하는 게 그의 꿈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농민공(農民工)에게 이 꿈은 절대 녹록지 않다. 6년째 돈을 모으고 있지만 제자리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상하이의 주택은 평당 380만원대이고 스타벅스 카페라떼 한잔은 4500원이다. 집값은 중국에서 제일 높고, 물가는 서울과 비슷한데 월 최저임금은 36만4000원이다. 상하이에 근사한 레스토랑이 이토록 많은데도 그는 거의 외식을 못해봤다고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물었다.

“그냥 상하이를 떠나는 게 어때요? 왜 이렇게 비싼 도시에서 힘들게 살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상하이만큼 멋진 도시가 없는걸요.”

마사지룸의 어두운 불빛 때문이었을까. 아직 앳된 티가 나는 그의 얼굴에서 무거운 피로가 느껴졌다. 하지만 목소리는 담담했다. 런민공원에서 본 스펙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스쳐갔다. 관광객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풍경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찬란하고도 잔인한 금수저의 물결이었다. #70이 주말 런민공원에는 가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이 도시가 멋져도 그런 현실은 좀 버거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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