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어쩌면]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범죄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2016. 8. 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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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병우 민정수석이 요즘 화제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우병우를 경질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최근 개각에서도 우병우의 이름은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검은 구석이 있거나 위법·탈법을 했을 것이라는 국민 정서에 터 잡아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과연 우 수석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①우 수석의 처가에서 얼마 전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을 통해 넥슨에 부동산을 매각하며 1300억원대의 돈을 챙겼다. 이후 넥슨이 이 부동산을 큰 손해를 보면서 팔았기에 ‘우 수석 측에 특혜를 준 매각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②‘도나도나’라는 회사에서 돼지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가 원금도 돌려주지 않은 사기사건이 있었다. 우 수석은 선임계를 쓰지 않고 몰래 변론을 했고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③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을 했는데, 50억원에 이르는 변호사 비용을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때도 우 수석은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④우병우씨의 아들이 군대에 갔다. 아들이 ‘꽃보직’이라는 서울청 운전병에 발탁됐다. 특혜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우 수석은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면 아직은 죄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검은 구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게다가 이 의혹을 확인하려면 검찰수사가 필요한데, 민정수석 신분으로 검사 앞에 서는 건 서로 껄끄럽다. 혹시 우 수석이 민정수석 역할을 아주 잘해서 그를 대신할 적임자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우 수석이 진경준 검사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비리를 일부러 누락시켰다는 혐의까지 받는 걸 보면 그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우 수석을 경질하기는커녕 그를 조사한 감찰관에게 화를 내고 있다.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이 협조를 안해 감찰을 제대로 못했다’고 푸념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걸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것이다.

3년 전 화제가 됐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경우를 보자. 다들 알다시피 국정원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직원들에게 골방에 틀어박혀 댓글을 달게 했다가 발각되고 만다. 소위 ‘국정원 댓글사건’이다. 한 나라의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위법이기에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결국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채 전 총장이 이끌던 검찰은 보기 드물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한다. 채 전 총장의 내연녀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는 TV조선으로부터 430만원을 받고 ‘내연녀의 집에 채 전 총장이 자주 찾아왔다’는 인터뷰를 하고, 청와대 행정관은 혼외 아들로 지목된 어린이의 인적사항을 열람한다. 민·관·언론이 서로 도와가며 우리 사회의 도덕을 지켜가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했고, 일제히 입을 모아 채 전 총장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의혹이 확산되자 박 대통령은 “사생활과 관련된 도덕성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해 스스로 진실을 밝히라”며 채 전 총장을 압박, 사퇴하게 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사태를 ‘채동욱 찍어내기’라 불렀다.

윤창중은 주위의 반대에도 대통령이 직접 대변인으로 발탁한 인재였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동행해 여자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본인은 격려차 허리를 툭 친 것에 불과하다며 성추문 의혹을 부인했지만,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윤 대변인을 전격 경질한다. 대통령께서 믿고 쓴 인재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에서 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나쁜 범죄는 성추문이다. 하지만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을 바로 내치지 않은 걸 보면 대통령은 ‘미국 국적을 가진 여성에 대한 성추문’을 가장 큰 범죄로 규정하는 듯하다. 두 번째로 나쁜 범죄는 내연녀를 두고 자식까지 낳는 일로, 이 둘은 반드시 경질해야 하는 중대 사유다.

반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특혜를 누리는 것은 대통령이 볼 때 전혀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야말로 대통령을 뒤흔드는 범죄자다. 한술 더 떠서 이들의 비리사실을 언론에 폭로하는 사람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악질적인 범죄자라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제 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성범죄는 일단 조심하자. 특히 상대가 미국 여성일 때는 더 조심하라. 자기 일은 대충 해도 된다. 그 대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할 수 있는 한 이득을 취하라. 그러면 대통령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남은 1년 반 동안 무탈하게 공직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게 박근혜 치하 헬조선에서 공직자가 살아남는 법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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