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가 인비 안아줄때, 골프 처음 보는데도 짠하네요
박인비(28)가 금메달을 따낸 21일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최종일 경기에는 '명장면'이 많았다. 경쟁자들의 추격 의지를 꺾은 5번홀 롱 퍼트 성공, 평소에 비해 무척 화려했던 '두 팔 번쩍' 세리머니…. 그중에서도 이번 대회 대표팀 감독으로 나선 박세리(39)가 눈물을 흘리며 후배 박인비와 포옹하는 장면은 TV로 경기를 지켜본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8년 전 골프가 온 국민의 가슴을 울린 '맨발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이던 스물한 살의 박세리가 US여자오픈 연장전 도중 골프화와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간 1998년 7월 7일. 시커멓게 탄 종아리 아래로 드러낸 새하얀 맨발이 지독한 훈련량을 짐작하게 했다. 볼을 성공적으로 빼낸 박세리는 두 홀 더 연장전을 치른 끝에 우승컵을 들었다. 외신들은 "여자 골프에 새 영웅이 탄생했다"며 흥분했지만 박세리는 "IMF 사태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용기를 드렸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박세리의 '맨발 샷'에 감동해 골프채를 손에 쥔 '세리키즈'들이 LPGA 투어를 점령했고 116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까지 일궈냈다. 이번 박인비의 금메달은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한국 골프 최대 사건으로 평가된다. 박인비가 부상과 부담감을 이겨내고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인 이번 올림픽이 18년 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맨발 투혼'과 마찬가지로 골프라는 스포츠의 매력과 감동을 대중에게 깊이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강풍과 폭우가 예보되면서 챔피언조의 티오프 시간이 한국 시각 기준 토요일 저녁으로 앞당겨져 더 많은 시청자가 골프 경기를 볼 수 있었다(지상파 3사 합계 시청률 23.9%). 경기 후 포털 인기 검색어 랭킹에는 '박인비'는 물론 '박세리'도 함께 상위에 올랐다. 인터넷에선 '박인비 만세 후 박세리 감독도 울고 나도 울고' '박인비 선수도 멋있었고 박세리 감독이 함께 있어 더 감동이었네요' '박세리 LPGA 25승 그 당시 거의 유일무이 한국 선수. 자기를 보고 자란 세리키즈 데리고 감독으로 금메달까지. 진짜 나라에서 교과서에 실어줘야 함' 같은 댓글이 쏟아졌다.
국내에서 골프는 소수만이 즐기는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날 경기엔 골수 골프팬들만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골프 태어나서 처음 봤는데 재미있네요. 박세리는 선수일 때나 감독일 때나 우리 국민에게 감동과 힘을 준다는 게 너무 고마워요' '골프의 '골'자도 모르지만 박인비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는 알 것 같아요' 같은 반응이 많았다.
일부 골프팬은 "김연경을 '배구계의 호날두'라고 하듯 박인비를 '골프계의 우사인 볼트'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2위를 5타 차이로 따돌리며 우승한 건 볼트가 트랙에서 다른 선수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했다.
'박인비 표정 변화' 사진도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박인비가 기쁠 때, 슬플 때, 초조할 때, 열 받을 때, 버디 성공, 벙커 빠짐 등 모든 경우 똑같은 무표정을 유지하다가 우승을 확정하고 난 뒤 아주 희미한 미소를 띠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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