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노후 경유차 폐차해라".."지원 예산 없으니 내년에 와라"

최재영 기자 입력 2016. 8. 18. 07:25 수정 2016. 8. 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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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폐차 지원금 예산 소진돼 올 사업 중단 위기


정부는 내년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수도권에서 노후 경유차를 운행하면 '단속'하기로 했습니다. 노후 경유차가 미세먼지를 많이 내뿜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이지만 사유재산인 개인 차량의 운행을 제한단다는 점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원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하면 보조금을 주고, 저소득층은 장착비용 100%를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고 자동차 검사에서 합격하면 단속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런데, 차량이 너무 오래돼서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개발되지 않는 등 달고 싶어도 달 수 없는 노후 경유차들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수도권에 등록된 노후 경유차 중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달 수 없는 경유차는 약 22만 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차들의 소유주는 내년부터는 수도권에서 차량을 운행하면 과태료를 물게 생겼습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 중고차로 팔던지 그냥 집에 세워두던지, 폐차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습니다. 정부는 조기폐차지원금을 주면서 폐차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조기폐차 지원금은 해당 차종의 노후화에 따라 보험개발원에서 산정한 차량가액의 80~100%를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입니다. 지원금 대상이 7년이 넘은 노후 경유차들이다 보니 차량 가액은 100~200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3.5톤 이하는 150만 원, 3.5톤이 넘는 대형버스나 트럭은 700만 원까지 상한액도 설정돼 있습니다.  조기폐차지원금 규모는 많이 타고 다는 SUV나 생계형 소형 트럭 기준으로 100만 원 정도입니다. 

오래된 차를 운행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불만입니다. 얼마 전 취재에서 만난 노후 경유차 소유주의 이야기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이 노후된 차를 타겠습니까? 에어컨도 잘 안 되지 창문도 안 되지, 차 불편하지. 노후돼서 언제 차가 고장 날지 모르고... 그런데 100만 원, 200만 원 지원해준다고 해서 바꿀 정도 되면 그게 뭐 생계형 입니까 생계형도 아니지. 부자지.”

정부가 노후 경유차 타지 말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폐차장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조기폐차보조금이 이미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28개시 중에서 21개시의 예산이 동이나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예산은 수요 예측을 통해 배정됩니다.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적절한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정부가 하는 일입니다. 물론 예측이기 때문에 100%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예산은 부족하거나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의 절반 정도 지났는데 예산이 동이 났다면, 분명 정부는 수요예측에 실패한 겁니다. 그럼 그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특히, 조기폐차지원금은 사적 재산권까지 제한하는 '규제'에 대한 일종의 보완적 정책인만큼  더 적극적인 정책 의지가 필요합니다.

수도권 통행 제한 경유차를 보유한 사람들은 규제대책에 대해 귀책사유가 없습니다. 대상자들은 정부가 판매를 허용한 경유차를 사서 단지 오래 탔을 뿐입니다. 특히,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없어서 달고 싶어도 달수 없는 대상자들은 정부의 정책으로 개인재산을 강제로 처분해야합니다. 

당장 내년부터 단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단속 전에 대상자들의 지원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정부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담당부처인 환경부의 대응은 여유롭습니다.

감사원은 지난 5월, 환경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지적사항에는 배출가스 저감장치 사업과 조기폐차 지원 사업을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환경부가 상대적으로 효과가 적은 매연 저감장치 부착 지원 사업에 과도하게 투자했고, 효과가 높은 조기폐차 사업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는 조기폐차 지원금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되자,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작 지원 사업 예산을 가져다 쓰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항목이라 그냥 가져다 쓰면 된다는 편안한 소리를 합니다.

단순히 생각해도 사업 대상이 달라 과연 그렇게 예산을 쓸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예산을 사용하려면 해당 장치를 달아야 지원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급한 사람들은 차에 맞는 배출가스 저감장치 자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장치를 달지도 않았는데, 장치를 부착했다고 예산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걸까요. 그냥 항목이 노후 경유차 지원이니 지자체가 알아서 예산을 돌려쓰면 된다는 것일까요.

예산은 정확히 해당 사업이 있습니다. 해당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건 기본 상식 아닐까요. 환경부의 이런 이야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예산이 바닥이 나서 더 이상 올해 조기폐차 지원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공문이 발송되고 있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 행정인지 아니면 말 실수를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아예 올해는 조기폐차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걸까요. 가능성은 낮은 것 같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 조기폐차 지원금 80억 원 정도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80억 원 정도 예산이 확보돼 사업이 다시 진행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지자체가 80억 원이라는 돈을 마련해야 예산이 집행됩니다. 조기폐차지원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의 '매칭사업'입니다. 매칭상업은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예산의 절반을 부담해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중앙정부에서 예산이 배정이 되면, 지자체가 그 절반의 예산을 확보해합니다. 그래야지만 중앙정부의 예산까지 가져다 쓸 수 있는 겁니다.

현재 지자체들의 재정형편은 형편없습니다. 하반기에 추가로 80억 원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경기도의 재정자립도는 55.2%, 특히 경기 북부는 33.9%에 불과합니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걷어 들이는 세입으로 전체 필요한 예산의 절반 혹은 1/3만 충당할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중앙정부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지자체가 그만큼의 예산을 확보해야 하반기에 다시 조기폐차 지원 사업이 재개될 수 있습니다. 현실은 넘어야 할 큰 고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올해 사업이 끝났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기폐차를 해야 하는 노후 경유차의 소유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부가 판매를 허가한 차를 정당하게 샀습니다. 그동안 잘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운행을 하면 단속하겠다고 합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달면 되지만, 장치가 없어서 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폐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시 차를 사려면 수천만 원이 들겠지만 환경을 파괴한다고 하니 큰 맘 먹고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산이 다 떨어져서 그나마 나오는 지원금도 지금은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화가 납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경유차를 타라”
“미세먼지가 너무 많이 나오니 이제는 타지마라”
“그리고 폐차하면 지원금 줄 테니 폐차해라”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 내년에 다시 와라”
“그리고 그동안은 웬만하면 타지 마라”

마치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납니다. 지금 노후 경유차를 운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재영 기자stillyo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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