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뿅' 한 판에 추억과 웃음, 친구들

2016. 8. 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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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라이프
‘멸종’ 전자오락실·아케이드게임에 관심 증가…커뮤니티 기능에 주목

4일 서울 서촌 옥인오락실에서 아이들과 20대 여성 손님이 오락을 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7월29일 개최한 ‘구글플레이 오락실’ 행사에서 아이들이 ‘무한의 계단’ 게임을 하고 있다. 행사는 24일까지다. 입장료 무료. 이정국 기자

아케이드 게임장, 이른바 전자오락실(오락실)은 현재 멸종 상태나 다름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 게임백서’를 보면, 2000년 2만5천여개이던 전국의 오락실은 현재 460여곳이다. 이마저도 성인 오락실을 제외하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진짜 오락실은 극히 소수라고 보면 된다. 전체 게임시장 매출을 봐도 오락실 점유율은 0.3%에 불과하다.

30대 남성에 오락기·고전게임 인기
모바일서 즐길 수 있는 앱도 나와
‘핫플레이스’ 옥인동 오락실은
연인들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

추억과 복고의 합작품 ‘오락실’

1988년 서울 도봉구 미아6동. 당시 미아6동에만 3개의 오락실이 있었다. 문방구 지하에 있던 ‘팔팔 오락실’, 육교 근처의 ‘육교 오락실’. 그리고 만둣집 옆에 있던 ‘호돌이 오락실’이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오락실이 3개나 있었지만, 3곳 모두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전 중국집에서 볼 수 있었던 ‘발’을 젖히고 들어가면, 메케한 담배 연기가 코를 찔렀다.

폐회로티브이(CCTV)가 없던 시절, ‘판옵티콘’(원형 감옥)처럼 오락실 내부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벽 가운데 자리엔 동전을 바꿔주던 할아버지(또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아크릴판을 반달 모양으로 파놓은 동전교환대 구멍에 100원을 들이밀면 할아버지는 말없이 50원짜리 2개를 내밀었다.

‘갤러그’, ‘제비우스’, ‘너구리’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기 앞에선 언제나 웃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넘쳐났지만, 동전교환대 옆은 침묵과 담배 연기만 자욱했다. 어른들이 하는 고스톱, 포커, 마작 등의 게임이 있는 곳이었다. 가끔 ‘나쁜 형’들한테 ‘삥’도 뜯겼다.

하지만 오락실은 동네 커뮤니티이기도 했다. 주산학원 가기 전에 친구와 만나는 약속 장소였고, 퇴근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오락을 잘하는 법부터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하는 시시콜콜한 얘기도 공유됐다.

이런 오락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몇년 새 계속되는 복고 유행 덕분으로 보이는데, 호응이 적지 않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오락기’를 치면 과거 오락실에서 하던 오락기들이 검색된다. 모니터 크기 등에 따라 10만~40만원대다. 포털사이트의 쇼핑 정보를 보면 오락기의 주요 구매층은 30대 남성이다. 오락기 안엔 과거 유행했던 오락이 600여 가지나 들어 있다.

꼭 오락기가 아니어도, 스마트폰이나 피시(PC)에서도 옛날 오락실 게임 모음 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다. 복잡하고 돈이 드는 ‘요즘 게임’의 정반대 쪽에서, 단순히 피하고, 쏘고, 때리는 고전 게임이 다시 각광을 받는 셈이다.

‘구글플레이 오락실’ 행사 전경. 구글 제공

최첨단 IT기업 행사도 ‘오락실’

최근 열린 구글의 ‘구글플레이 오락실’ 행사는 이름부터 매우 흥미롭다. 이미 생명이 끊긴 전자오락실에 ‘확인사살’을 한 것과 다름없는 모바일 게임 행사 이름이 ‘오락실’이라니!

지난 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알림터엔 이 모바일 게임 행사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그들은 손에 쥔 스마트폰이 아닌, 대형 화면을 보며 게임을 즐겼다. 오락을 하면서 코인을 모으고 모은 코인으로 경품을 바꿔갈 수 있도록 해서인지, 사람들은 게임에 꽤 열중했다. ‘캔디크러쉬소다’, ‘붐비치’, ‘스톤 에이지’ 같은 최신 모바일 게임도 있지만, ‘건버드2’ 같은 추억의 오락실 게임도 모바일 게임으로 부활해 있었다. 커다란 화면으로 게임을 하는데도, 그래픽의 해상도 저하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냉장고만한 오락기의 크기는 손바닥만해졌지만 성능은 더욱 높아진 것이다.

이런 행사가 왜 ‘오락실’일까? 구글 관계자는 “오락실은 누구나 갖고 있는 어렸을 때의 추억이다. 단순히 게임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동네 커뮤니티의 역할도 했던 곳”이라며 “모바일 게임도 그저 개인이 즐기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모여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네 오락실 부활할 수 있을까

인기 웹툰 작가 ‘기안84’는 지난달 <문화방송>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오락실에서 격투게임인 ‘철권’을 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말했다. ‘철권’과 함께 당시 화제가 된 건 그가 게임을 하는 오락실. 집요한 누리꾼들은 포털사이트에서 ‘기안84 오락실 위치’가 자동완성 검색어가 될 정도로 ‘좌표 추적’을 펼쳤고, 결국 그곳이 경기도 수원의 한 오락실임을 찾아냈다.

‘오락실 추적 사건’은 유명인이 간 곳이라 생긴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동네 오락실이 희귀해진 탓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서울에서 가장 뜬다는 동네인 서촌 한가운데에 말 그대로 동네 오락실이 있다. ‘옥인오락실’이다. 생긴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지난 4일 찾아간 옥인오락실 입구엔 ‘개추움’이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더위에 지친 행인들이 그 문구를 보고 웃더니 “춥대”, “신기하다”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원하긴 했지만 춥지는 않았다.)

안에는 1988년에 보던 옛날 오락기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너구리’, ‘보글보글’, ‘테트리스’, ‘스트리트파이터 2’, ‘갤러그’ 등. 그 앞에서 아이들은 물론 연인들도 오락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고 나, 오락실은 꽤 붐볐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있던 동전교환대 위치도 그대로였다. 비록 동전 교환은 전기 동전교환기가 대신했지만. 오락은 한 판에 500원이었다. 10배가 오른 셈이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옥인오락실’ 전경. 이정국 기자

이곳 대표인 설재우씨는 “오락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니 당황스럽더라고요. ‘부활’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추억의 복원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을 기점으로 동네 오락실이 다시 생겨나길 바란다. “오락실이 사라진 이유를 저는 환경 탓으로 보고 있어요. 담배 연기 자욱하고, 어른들이 도박게임 하는 곳이 오래갈 수가 없죠. 당연히 정책적으로도 규제의 대상이고요. 전 아이들과 여성들이 마음 놓고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그의 말마따나 옥인오락실 곳곳엔 ‘빵 터지는’ 문구들을 붙여놓는 등, 과거 탈선의 온상이라고 ‘모함’받았던 오락실을 정말로 ‘오락’을 하는 곳으로 바꾸려는 흔적이 보였다. 오락실 구석 방에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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