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잃은 캥거루, 사고로 다친 왈라비.. 호주 토종동물 보호소 체험기

한국일보 2016. 8. 5. 16: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2편

왈라비, 캥거루 새끼들이 분유를 먹고 있다.

지난 한 달간 호주 퀸즐랜드주 북쪽에 위치한 ‘브린들 크릭 생추어리(Brindle Creek Sanctuary)’에서 호주의 대표적인 동물인 캥거루, 왈라루, 왈라비들과 함께 생활했다. 호주에는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일반인들이 많다. 이들을 케어러(carer)라고 부르는데, 이 생추어리도 그 중 한 명이 운영하는 곳이다. 어미를 잃거나 다친 캥거루들이 이곳으로 온다. 생추어리는 캥거루 서식지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야생으로 돌아가기 전 적응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구조된 캥거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오전 7시에 야생 왈라비들에게 ‘루푸드(Roo Food)’라는 전용 사료를 주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지금 호주는 겨울이라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건기다. 건기에는 특히 풀이 많이 자라지 않아 배고픈 왈라비들이 많다. 한 때는 100마리 이상이 찾아왔었다고 한다. 일반인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으면 가능하다. 새끼들에게는 분유를 준다. 한국의 야생동물인 고라니처럼 캥거루들은 소젖의 락토오스(lactose)를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없기 때문에 일반 우유를 주면 설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료 회사에서 캥거루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분유를 사용한다. 연령별로 분유 농도와 주는 양도 다르다.

동물들이 야생으로 가기 전, 적응을 위해 머무르는 간이 방사장의 모습.

그 후 펜(pen)을 청소한다. 이 곳은 동물들이 야생으로 가기 전, 적응을 위해 머무르는 간이 방사장이다. 한 쪽에는 방이 세 개 있고 이곳을 육아실(nursery)이라고 부르는데, 태어난 지 1년 전후가 된 조금 더 큰 새끼들이 밤에 자는 곳이다. 성체들은 어미의 주머니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땅 위에서 자지만 새끼들은 주머니 안에서 잠을 잔다.

앞쪽에 구멍을 뚫어 만든 가방에 새끼를 넣어 어미의 주머니를 대신한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놀랐던 점은 주머니가 눈앞에 있으면 거의 무조건 들어가려고 하는 새끼들 모습이었다. 대부분 야생동물들은 주머니를 보면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줄 알고 도망치는데 도대체 어떤 유전자가 캥거루에게 이런 본능을 심었는지, 역시 유대류다웠다. 유대류는 어미의 몸에 있는 주머니(육아낭이라고도 한다)에서 새끼를 키우는 동물들을 말한다. 이렇게 특별히 진화한 동물로는 코알라, 움벳, 밴디쿳, 포섬 등이 있다. 유대류는 주로 호주에 있지만 아메리카대륙에도 남아있다.

새끼 왈라비가 어미의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다.
새끼들이 천으로 만든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다.

새끼는 자라면서 점차 주머니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고 주변을 탐색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캥거루들이 놀라면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데, 발을 특정한 박자로 구르며 달려가 주위 무리에게 위험을 알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자칫 새끼가 주머니 밖에 있으면 어미를 잃을 수 있다. 어미와 새끼는 냄새와 소리로 서로를 찾을 수 있지만, 못 찾을 때도 있다. 또 폭풍이 몰아칠 때, 어미가 개에 물려 죽거나 차에 치이는 등 사고가 날 때도 새끼는 고아가 된다.

매년 1만500마리의 새끼 캥거루가 구조되는데, 그 중 5분의 2가 살아남고 성체로 크는 경우는 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캥거루는 코알라와 함께 호주의 대표적인 동물로 꼽힌다. 코알라 같은 멸종위기종은 정부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곳곳에 보호센터를 만들어 놓은 반면, 캥거루는 비교적 개체수가 많기 때문에 더 적은 관심을 받는 듯했다.

차에 치여 죽은 어미 왈라비.

다행히 몇몇 사람들이 사비를 들여 캥거루를 보호하고 있지만 그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와 양에게 풀을 먹이려는 농부들에게 풀을 찾아다니는 캥거루는 단지 방해꾼일 뿐이다.

유명한 관광지역에서는 여전히 캥거루 가죽을 팔고 있고 심지어 고환으로는 주머니를, 앞발로는 등 긁는 도구를 만들어 진열해 놓았다. 호주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하루에도 서너 마리씩 죽은 캥거루를 볼 수 있었다. 치울 책임이 있는 사람은 없다. 도로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그 곳에 살던 야생동물은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

생추어리를 운영하는 대럴 로우(Darryl Low)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캥거루 사냥을 가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총에 맞은 어미의 주머니 안에서 새끼를 발견한 이후, 오랫동안 캥거루를 돌봐왔다. 그는 캥거루를 연구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고 정부의 지원도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캥거루 한 마리 한 마리를 살리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멸종위기종이 아니라서 또는 개체수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생명의 가치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이미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소중한 야생동물들을 잃지 않았는가.

글.사진=양효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 동그람이 페이스북 바로가기(https://www.facebook.com/animalandhuman/)

▶ 동그람이 카카오채널 바로가기(https://story.kakao.com/ch/animalandhuman)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