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문콕 사태.. 손끝이 후덜덜 떨렸다

이준수 입력 2016. 7. 2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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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저질러 놓고 망설였던 나.. 뜻밖의 반전이 펼쳐졌다

[오마이뉴스 글:이준수, 편집:김지현]

 문콕 당시 차량 주차 상황
ⓒ 이준수
"오빠 나 사고 쳤어... 방금 '문콕' 했어."

주차장을 막 빠져나오려던 찰나, 아내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시로 차문을 담벼락과 나무에 쾅쾅 박아대는 아내의 손버릇(?)을 잘 알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주차에 신경 썼다. 더군다나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더 넉넉하게 배려했다. 일부러 문콕을 하려 해도 어려운 위치였다. 전에도 비슷한 장난을 친 적이 있어 난 농담으로 받아쳤다.

"아아~, 그러셨?요?"
"이번에는 진짜야."

아내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뭔가 야단이 났구나 싶었다. 급한 주차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큰소리는 안 들렸으니까 세게 박지는 않았을 거라고 위로하면서도 자꾸 심장이 뛰었다. 왜냐하면 차에서 내릴 때 옆을 봤는데, 알파벳 'V'자가 겹쳐져 'W'처럼 보이는 폭스바겐 엠블럼을 봤기 때문이다. 실수해서 놀란 아내를 달랠 생각은 않고 돈 걱정이 앞섰다.

'아 큰일이네. 다음 달에 연우 돌잔치하려면 이것저것 나갈 것 많은데….'

지난해 11월부터 우리 집은 외벌이였다. 아내가 육아 때문에 일을 쉬게 되면서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다. 집에 돈 많이 못 갖다 주는 선생 남편은 괜히 못난 상상이나 했다. 차에 도착해서 보니 문콕이 확실했다. 폭스바겐 제타 차량 검은색 문짝 위에 흰색 페인트가 선명했다. 우리 차 뒷문을 열어 천천히 당겨보니 위치가 정확히 일치한다. 시쳇말로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한다의 줄임말)다.

고백합니다, 도망갈 생각을 했습니다

 빨간 동그라미가 문콕 지점이다.
ⓒ 이준수
"얼마나 세게 열었으면 이렇게 떨어진 차를 박는 거야!"

긴장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서 있던 아내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절대로 말싸움에서 안 지는 아내가 대꾸도 않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찰칵, 찰칵! 문콕 지점과 운전석 앞유리에 부착된 연락처를 찍었다. 무슨 심리였을까?

난 순간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우측 벤치에 앉아있는 아주머니 두 분은 대화에 바쁘시고, 차량 앞 뒤로 다른 차들 꽉 막혔고, 들어올 때 후방 주차했으니까…. 그럼 블랙박스 안 잡히겠네!? 정말이지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여기서 빠져나갈 구멍부터 떠올렸다. 더 가관은 그럴싸한 핑계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차도 문콕 당해서 페인트 까지고, 철판 보이는데 범인 못 잡았잖아! 얼마 긁지도 않았는데, 이런 걸로 문제 삼으면 쓰나? 애기 있는 집이 그럴 수 있지. 차주가 모를 수도 있는데 괜히 일 키우지 말고 조용히 덮자.'

도덕 시간에 입술 부르트도록 '정직하라'고 가르친 주제에, 사건과 마주하고 든 첫 사리판단이 이랬다. 사악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등짝을 툭 쳤다.

"빨리 차주한테 전화 안 하고 뭐해?"
"어, 그래 그래야지. 보자…, 몇 번이지?"

010….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려서 지웠다 입력했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당황하니까 쉬운 동작도 잘 안 됐다. 전화번호를 다 치고 막상 차주에게 연락하려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명색 선생이라는 인간이 잠깐이나마 뺑소니를 기획하다니 부끄러웠다. 숨 한 번 크게 쉬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연결음도 없이 바로 들리는 목소리.

"전원이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화... "죄송합니다"

 차주에게 보낸 문자.
ⓒ 이준수
전화 끊고, 문자를 남겼다. 문제가 되는 부위와 차량 위치를 사진으로 찍어 첨부했다. 얼마가 들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면 속 시원할 텐데 연락이 닿지 않으니 불안했다. 찔리는 데가 있는 아내는 자꾸 내 휴대전화를 들춰봤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외제차는 문짝 도색 수리비만 50만 원이라고 했다. 머리를 맞대고 대물 배상으로 보험 처리할지, 할증을 우려하여 현금 배상을 할지 의논했다.

"수리비로 20만 원 이상 요구하면 보험 처리하고, 그 이하면 현금으로. 오케이?"

적정선에서 합의를 본 우리는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건 있는 법이라며 다 잊고 산책이나 가자고 했다. 강변 따라 걷다가, 아까 잠시 도망칠 생각을 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내는 대번에 어리석은 판단이라 했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의 뇌물 수수에 분개하고, 옥시와 3M의 비도덕적인 영업행위에 흥분하는 양반이 무슨 소리냐고 했다. 구구절절 옳았다.

생활에서 멀리 떨어진 이슈에는 그렇게 꼬장꼬장한 척을 해놓고 당장 내게 닥친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해졌다. 기껏 해야 50만 원 안쪽의 금액을 두고 양심이 흔들렸다. 유명 연예인의 탈세나 먹튀 문콕이나 다를 바가 뭘까. 한편 원칙대로 차주에게 연락하길 참 잘했다고 위로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설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제타 차주였다. 중년의 가장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는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직접 와서 문콕 자리 봤는데 심각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겠단다. 하얀 페인트 자국이 떠올라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괜찮다고 오히려 따뜻하게 말해줬다. 인심이 후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짧은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두고 속일 생각이나 하다니. 아내와 약속 하나 했다. 누가 우리 차 문콕해서 미안하다고 연락 오면 그땐 망설이지 말고 괜찮다고 하자고. 사소하고 당연한 일에 잔꾀 쓰지 말자고 했다. 아! 물론 다음부터는 아내가 내릴 때 차가 없는 곳에 주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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