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응급실 의사의 고백

송지혜 기자 2016. 7. 2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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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각을 다툰다. 종합병원 응급실은 초 단위마저 쪼개 움직이는 곳이다. 가벼운 복통이나 얕은 열상처럼 비교적 사소한 증상에서 교통사고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면 찾는 곳이 응급실이다. 환자는 밤낮 없이 산부인과·내과·외과 가리지 않고 아프고 불편한 상태에서 이곳을 찾는다. 응급실은 대다수에게 낯설고 예외적인 시·공간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씨에게는 피 튀기는 순간도 일상이다.

2010년 남궁씨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를 시작했다. 인턴 실습을 하면서 3개월간 맛본 응급의학과에 매료됐다. '응급실에는 극단적인 비참함과 슬픔이 있다. 의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개입해 이들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뒤섞이고 싶었다.' 24시간 근무하는 동안 환자 150∼200명이 응급실을 찾았다. 그날 상주하는 의사는 지휘자처럼 간호사·조무사 수십명에게 ‘오더’를 내렸다. 하루 동안 그의 앞에는 ‘○○약물 투여하세요’ ‘○㎖만큼 투여하세요’ ‘퇴원 시키세요’ 따위 선택지가 500개가량 놓여 있었다. 옳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당연한 책임감은 강박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시사IN 윤무영 :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는 남궁인씨(사진)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4년 동안 경험한 일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그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ihn.namkoong)에 가면 의료와 삶에 관한 여러 글을 볼 수 있다.

남궁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고, 또 누군가는 죽고 싶어 했다. 응급실에선 아무도 죽지 않는, 그런 평범한 날이 거의 없었다. 사망선고는 의사의 몫이었다. 과학적으로 살고 죽은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남궁씨는 죽음을 공표했다. 그 순간, 가족은 환자의 죽음을 정확하게 인지했다. 응급실 안 공기는 금세 싸늘하게 변했다. 유가족들은 울분과 슬픔을 토해내며 시신에 매달리고 끌어안았다.

남궁씨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개입하고 관찰한 내용을 신간 <만약은 없다>(문학동네, 2016)에 담았다. 레지던트 4년 동안 경험한 일을 모티브 삼아 재가공했다. 레지던트 당시 짧게 기록해둔 글을 2014년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들췄다. 다시 손대는 게 쉽지는 않았다. 바빠서, 무뎌져서 넘겨버렸던 순간의 감정은 고스란히 마음에 박혀 있었다. 기억을 돌이킬 때마다 뒤늦게 슬픔이 찾아왔다. 글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떼쓰는 사람들

응급실은 상상보다 열 배 이상 극적이었다. 자살을 시도한 이들의 응급실행은 의사 처지에서 그러려니 할 정도로 평범한 일이다. 자살을 시도한 과정도 대개 비슷비슷했다. 약을 먹은 이들은 이튿날 깨어나면 퇴원시켜달라고 사정했다. 의사는 형식적인 면담을 하고 병원 밖으로 보낸다. '한 50대 남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그는 깨어나자마자 ‘괜찮다’며 의연히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려 하고, 의료진도 안심하며 퇴원을 허락했다. 그런데 그가 두 시간 만에 다시 응급실로 왔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음에 성공한 채로.' 한 번 실패한 죽음을 확실히 마무리한 그를 보며 남궁씨는 환자를 죽게 방치한, 무책임한 의사라고 자책했다.

ⓒ시사IN 자료 : 일반인에게 낯선 공간인 병원 응급실은 병원 밖의 사회적 상황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아이러니는 인간으로서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생활고를 비관한 한 할머니가 500원짜리 쥐약을 삼키고 쓰러졌다. 신장이 망가져 응급 투석을 해야 했다. 자살을 시도한 이의 치료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았다. 하루 투석을 하는 데 150만∼2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 투석을 해도 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어렵게 살아나더라도 빚더미에 나앉을 가능성이 컸다. '의사로서 치료하지 않을 여지는 없지만, 인간으로서 ‘사는 게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시달렸다.'

응급실은 병원 밖의 상황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았다.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나면 배에 탄 승객이, 무더위가 지속되면 일사병 환자가 실려 오는 식이었다. 특히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는 응급실의 ‘단골’ 환자였다. 그들은 정규 의료 체계에서 떨어져 있는 데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탓에 극심한 탈이 생겨서야 응급실을 찾았다. 어렵사리 응급실에 오더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경우도 흔했다. 치료비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자주 대하다 보니 사회 시스템을 고스란히 확인한다. 누가 사회안전망에서 열외가 되는지.'

응급의학과는 진료과 중에서도 ‘3D과’로 통한다. 2∼3년 전만 해도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지원자 수는 늘 미달이었다. 최근 들어 그나마 나아졌지만 의료진이 부족해 24시간 꼬박 근무하는 등 ‘험한’ 업무에 시달리기는 여전하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응급의학 전문의 2260여 명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현재 필요 인력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24시간 진료를 버텨내고 나면 그는 ‘죽음과 같은 잠’에 빠졌다. 깨어나면 ‘의지를 발휘해’ 글을 썼다. 글쓰기는 지친 심신을 달래는 마약 같은 쾌감이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밴 습관이었다. 공중보건의가 되고서 전보다 여유로워진 까닭에 한자리에 앉으면 짧게는 2시간, 많게는 10시간씩 내리 썼다. 한 편의 글은 하루에 완성하려 했다. 그렇게 쓴 글은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더 널리 읽혔다. 지금은 팬덤이 생겼을 정도다. 그가 쓴 말기암 환자의 생사를 다룬 <죽음에 관하여>는 2016년 1월,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남궁씨는 주로 응급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쓰지만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기도 한다. 홍대 앞에서 공연하는 연주자로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목소리를 냈고(그는 음악 밴드 활동도 하고 있다), 의사로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나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썼다. 딱딱한 문체로 설득하려 들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걸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어떤 이슈에도 인간의 실존적 고민이 담겨 있다. 나는 글로 전해지는 감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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