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오늘..가장 호화로운 '세기의 결혼식' 치러지다

박성대 기자 입력 2016. 7. 2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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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영국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왕세자비' 결혼

[머니투데이 박성대 기자] [[역사 속 오늘] 영국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왕세자비' 결혼]

1981년 찰스 왕세자(오른쪽)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35년 전 오늘(1981년 7월29일) 7m나 되는 실크 웨딩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수줍은 표정을 짓던 스무살을 갓 넘긴 유치원 보모 출신의 이 여성은 '다이애나 스펜서'였다. 그와 결혼하는 상대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였다.

무더운 날임에도 수많은 군중이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모였다. 유서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평범한 20대 삶을 살고 있던 여성이 차기 영국 왕과 결혼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놓칠 순 없었던 것.

결혼식 당일 런던에만 왕세자 부부의 마차 행진을 보기 위해 200만여명이 모였다. 언론매체들은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펼쳤다. '세기의 결혼식' '동화 속 결혼식'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7억5000만명이 이 행사를 TV로 지켜봤다.

영국 왕실 결혼식인 만큼 행사는 호화롭게 꾸며졌다. 결혼식 행사에만 쓰인 비용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억1100만달러(약 1250억원)에 달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쓴 왕관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입은 웨딩드레스를 비롯해 수많은 보석진주와 장신구 가격도 당시 가치로 2억원으로 추정된다.

마차에 내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 품에 안겼다. 이들 부부는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왕실 최초로 공개 키스를 나누며 세기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동화같은 결혼을 했지만, 동화 속 주인공 같은 결말은 없었다. 찰스 왕세자가 결혼 후에도 과거 연인이었던 유부녀 카밀라 파커볼스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다이애나는 남편의 불륜에도 두 아들 윌리엄·해리 왕자를 키우며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왕실생활의 압박감, 시어머니인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냉대에 고통받다 자살까지 시도한다.

그러던 중 그는 1992년 자신의 결혼생활을 낱낱이 폭로한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을 발간하고 찰스와의 별거를 선언한다. 이어 꾸준히 왕실과 갈등을 겪다 1996년 8월 이혼한다. 왕족의 지위를 잃은 그는 약 220억원의 위자료, 두 아들의 양육권을 얻는다.

무엇보다 자유를 얻은 다이애나는 지뢰 퇴치와 에이즈 예방운동에 앞장서는 등 봉사활동을 펼치며 새 삶을 시작한다. 뛰어난 미모와 패션센스, 복잡한 사생활은 그를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했다. 주변엔 파파라치가 항상 따라다녔다.

결국 다이애나는 1997년 8월31일 연인이던 이집트 재벌 2세 도디 알 파예드와 파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이들을 쫓던 파파라치를 피하다 교통사고로 숨진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장례식 추도사에서 다이애나를 '국민의 공주'(People's Princess)로 칭하며 애도했다.

박성대 기자 spar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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