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끼가 하루 유일한 식사인 분들을 위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6. 7.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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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 스님, 탑골공원 급식소 재개 1년 원각사 무료 급식소 이어받아 끊길 뻔한 '22년 밥줄' 다시 살려 200여명 어르신께 매일 점심 대접 "부처님 자비처럼 그저 할 따름"

"저기 줄 보세요. 어떤 분들은 새벽 6시부터 와서 기다리십니다."

28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 원각사 무료 급식소. 원경 스님(서울 심곡암 주지)은 탑골공원 울타리를 따라 줄지어 선 노인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1년 365일 쉬지 않고 150~200명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한다. 1993년 보리 스님이 공원에서 급식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해 초 보리 스님 건강이 악화되면서 문 닫을 위기를 맞았으나 원경 스님이 인수해 작년 4월부터 급식을 재개했다.

오전 11시 30분 건물 2층 법당에서 식사 시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렸다. 예불을 드리던 법당은 이미 앉은뱅이 밥상이 줄지어 펴진 식당으로 변신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검정 비닐봉지에 신발을 담아 입장하면서 한 그릇씩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꽉 끼어 앉아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30명. 그 시각 서울 기온은 28.5도였다. 간밤에 흩뿌린 비는 습도만 잔뜩 올려놓아 땀이 줄줄 흘렀다. 그 무더위에도 어르신 100여명은 탑골공원 울타리를 따라 줄지어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원경 스님은 "제가 이 일을 맡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스님은 원래 불교계에서 문화 포교로 유명했다. 1998년 서울 정릉 북한산 심곡암 주지로 부임한 이후 산사음악회를 봄가을로 개최했고, 찬불가 가사를 짓고 작곡도 하면서 문화 포교에 앞장섰다. 그는 원각사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게 됐다는 뉴스(본지 2015년 2월 5일자 보도)를 보고도 "누군가 하겠지" 했다고 한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고 무료 급식소가 문 닫을 지경이 되자 심곡암 신도이자 10여년간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해온 강위동(현 원각복지회 후원회장)씨가 스님을 찾아왔다. "우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상 현장을 찾아보니 기가 막혔다. 급식소는 이미 카페가 들어오기로 계약까지 된 상태였다. 심곡암 식구들은 위약금을 물어주고 급식소를 다시 인수했다. 내부를 깨끗이 리모델링하고 작년 4월 1일 신도들과 함께 '오늘부터 다시 급식 시작한다'고 적은 피켓을 들고 탑골공원을 돌았다. 스님은 "식사를 못해 시들어가던 눈빛에 반딧불만 한 불빛이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 사태 때는 휘청했다. 다른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평소의 두세 배인 400~500명이 원각사로 몰렸는데 자원봉사자는 오히려 급감했다. 응급 처방으로 비빔밥 대신 주먹밥을 나눴다. 위기를 넘기면서 이젠 37개 단체가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를 나온다. "우리는 대부분 배고픈 설움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드시는 한 끼가 하루에 유일한 식사인 분도 많지요. 얼른 드시고 다시 줄 서서 식사하는 분도 있습니다."

스님은 서류상 자녀가 있어 국가의 지원도 못 받고, 자식 봉양도 못 받는 분들의 자녀가 돼 드리겠다는 각오로 어르신들을 모신다. 설에는 떡국, 추석엔 송편을 내놓는다. 어버이날엔 카네이션도 달아 드린다. 스님은 "단순히 밥 한 끼를 넘어 정서적 갈증도 충족시켜 드리고 싶다"고 했다. 목욕 시설과 세탁 시설도 갖추고 싶은 이유다.

후원자와 봉사자 가운데는 자기 생일날 어르신들을 위해 떡을 20만~30만원어치씩 해 와서 나누는 이도 있다. 법명이 대륜심(98), 금선화(94), 명진화(89)로 20년 이상 봉사해온 노보살들은 "하루라도 안 와보면 궁금해진다"며 요즘도 전철 타고 원각사로 출근한다. 반면 썩기 직전의 쌀을 보시하는 사람도 있다. 원경 스님은 "그런 쌀을 좀 일찍 보시하면 얼마나 좋겠나"하고 안타까워했다. "문화가 부처님 지혜를 삶으로 체현한 것이라면, 복지는 부처님의 자비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자비, 이 두 가지는 불교의 전부 아닙니까? 타산을 따지면 못합니다. 그저 할 따름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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