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위용]누리꾼 '벼락' 대응에 담긴 뜻

2016. 7.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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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위용 오피니언 차장
여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화산 분출과 같은 사건을 만난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지만 뉴스의 홍수 속에 묻혀 버리기도 한다. 권력형 비리에다 롯데 등 대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휘몰아치는 요즘이 그렇다.

지난달 초 인터넷을 달군 전남 신안군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도 그렇게 흘려보냈다. 이 사건 뉴스를 접한 검경과 위정자들은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성폭행 사건은 전국에서 하루 평균 80건(경찰청 통계) 넘게 일어나는데 왜 하필 이 사건만 크게 떠올랐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검색어 빈도를 보여주는 네이버트렌드에서 보면 이 사건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의 검색 빈도는 그 뒤에 일어난 ‘부산 경찰과 여고생의 성관계’ 사건보다 훨씬 더 많았다. 지난달 4∼10일 네이버 주간 클릭 1∼4위가 이 사건이다. 또 연관어를 추가해 검색해 보면 그 앞에 일어났던 ‘서울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회적 통념이나 법률 기준으로 볼 때 경찰관의 비행이나 살인 행위가 결코 가볍지 않은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

누가 여교사 성폭행 사건의 폭발력을 키웠을까. 인터넷에서 확인하면 물론 누리꾼이다. 댓글을 달며 이 사건 보도를 퍼 날랐으니까. 첫 보도가 나왔을 때 1시간도 되지 않아 댓글이 1000개를 넘어섰다.

뉴미디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뉴스의 폭발력을 소셜미디어 활용법에서 찾는다. 제니퍼 아커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개발한 ‘잠자리 효과’ 모델이 그런 예다. 여기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 집중(focus), 시선 끌기(grab attention), 몰입(engage), 실행(take action) 등 네 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결합되면 잠자리가 네 날개를 달고 날 듯 큰 부양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최근의 다른 사건과 확실히 다르다. 우선 이 뉴스의 촉발점은 침착했던 피해자가 목포경찰서에 신고한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피해자의 남자 친구다. 그의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파급력이 커졌다. 지방에서 암장(暗葬)될 뻔한 사건이 떠올랐다는 인상과 더불어. “사람이 죽지도 않았는데”라는 지역의 해명은 오히려 파문을 더 키우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 시선이 더욱 집중되자 지역여행 상품 불매 운동(실행)까지 곧장 이어졌다.

이처럼 ‘어마무시한’ 벼락 대응은 모든 문제를 불합리한 기준에 따라 처리하려는 데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일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사회를 바꿀 가능성도 엿보인다.

문제는 어느 사건이 무슨 계기로 벼락 대응을 낳을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진화 방식으로는 손을 쓸 수 없다는 점이다. 누리꾼들은 인터넷 연결망에서 ‘중무장’하고 속사포를 쏘는데, 당국은 거의 ‘무방비’로 허둥대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능력 차이 정도로 여겨졌던 정보격차(디지털 디바이드)가 이젠 소통의 병목이 돼 사회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익명성 뒤에 숨은 누리꾼은 언제나 선한 모습이 아니다. 이들 중 일부가 1인 미디어 시대를 맞아 ‘여성 혐오’나 ‘지진’ 괴담을 마구 퍼뜨리는데 당국은 대응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누리꾼의 악행과 무기력한 대응의 조합은 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불쑥불쑥 나오는 벼락 반응을 더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날마다 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맞게 새로운 사회 소통 방법을 마련하고 갈등 해소 전략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정위용 오피니언 차장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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